1991년 1차 섬 탐사…그믈에 걸리고, 스크류 고장나고, 군부대 불려가며

[공감신문=이섬 섬 탐험가] 1990년도 여름에 건조된 2톤의 등대호를 타고 일주일에 한 번 전남 완도군 노화도 주변의 14개 섬을 다닌 경험이 전국 섬을 순회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필자가 잘 아는 사람은 이 배가 몇 달도 안 되어 파선할 것이라고 말 할 정도로 위험의 경고를 보냈다. 그것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배를 건조해 주고 후원해 주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시작할 때 어려움이 많았다.

그때 큰 사고가 한번 날 뻔 했는데 어느 배가 우리 배를 충돌하여 거의 넘어질 뻔한 일이 있다. 배에 있는 물건들이 바다로 빠질 정도 기울었는데 극적으로 복원되어 배는 침몰 위기에서 살아났다.

한번은 횡간도 라는 조그만 섬에 사는 전도사 부부를 저녁에 여객선이 없어서 우리 배로 싣고 가던 중에 안개를 만서 하루 밤을 김양식 부표를 붙들고 보낸 적이 있다. 이때 해경에 신고하고 찾고 난리가 났지만 아침에 들어오는 바람에 동네에서 난리가 난 적이 있다. 바다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안개다. 안개가 끼면 육지도 마찬가지로 까막눈이 된다. 고속도로 특히 서해대교의 사고는 대부분 안개 때문에 수십 충돌로 인해 사망과 부상자가 속출한다. 안개가 얼마나 무서운지 바다에서 안개로 가장 많은 사고가 난다.

이런 저런 경험을 2년 동안 하면서 섬의 어려운 점들을 하나씩 알고 섬에 대한 책자를 남기고 싶었다. 전국의 섬 순회는 모두 반대했지만 어릴 때부터 배를 타고 다니면서 바다에 익숙하고, 2년 정도 등대호를 타고 다니면서 실질적인 항해술을 익혔다.

 

1991년 겨울부터 조도 지방을 시작으로 등대호 타고서 혼자서 전국의 섬을 순회하였다. 그때 풍랑주의보에 걸려서 3박4일 조도에 잡혀있었다. 그 당시 가족은 물론 저의 소속 단체도 다 반대하였지만 이 일은 반드시 누군가가 한번쯤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혼자서 배를 타고 다녔다.

먼 바다에 있는 섬들은 객선을 타고 다녔다. 울릉도와 제주도 외의 부속섬들, 흑산도와 전북의 어청도, 충남의 외연도, 강화군의 민통선에 있는 보름도 등은 객선을 타고 갔다.

혼자서 배를 타고 섬에 배를 대고 섬사람들을 만난다. 그때 만난 사람은 주로 일반 주민들과 교인들을 만난다. 섬에서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서 섬에 대한 상황을 물어본다. 가장 기초적인 전기, 물 사정, 학교, 보건소, 여객선, 인물, 교회와 사찰, 주업, 당산제 등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물어보면서 그 지역을 답사한다. 이렇게 봄, 여름, 가을을 보통 제가 배를 타고 다니면서 답사를 하였다. 경비는 아주 극히 일부분이 보조금으로 들어오고 방문하는 교회에서 식사와 잠자리를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그 분들이 단군 이래로 전국 섬을 순회하면서 교회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섬의 책을 만들어 한 권씩 나누어 주려고 계획을 하였는데, 오히려 그 분들이 봉투를 주며 많은 격려를 해주었다.

가장 어려운 일은 스크류에 줄이 자주 감기는 것이었다. 또 혼자 다니기에 두려움이 조금 있었다. 그 당시는 해도만 존재하여 바다 속에 숨은 암초를 만나면 배가 파선되어 배를 잃고 목숨도 위험에 빠진다.

지금은 GPS가 나와서 해도가 필요 없지만 그 당시에 해도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어디에 암초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동해는 바다가 깊어 가는 방향을 알려주지만 서남해는 섬들이 많고 수심이 얕고 갯벌들이 많아서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2013년 가거도 탐사

1차 탐사 때 대모도 섬을 돌아보고 오던 중에 큰 사고가 날뻔 하였다.

소안도 근처의 암초가 많기로 이름난 곳이다. 여기에서 해도를 보면서 아슬아슬하게 배가 달려오다가 그만 멸치잡이 그물인 난장만 그물을 올라가서 그물을 스크류에 감아버렸다.

어렵게 낫으로 잘라 내고 오는데 그물이 감기면 속도는 절반 이하로 줄어버린다. 1시간 거리를 두 시간 걸려서 천천히 오는데 며칠 전에 왔던 그 길에 바다의 암초가 막 물위에 모습을 나타냈다. 깜짝 놀랐는데 만약에 그 자리를 빠른 속도로 달려왔으면 그 암초위에 올라가서 배가 파선 되었을 것이다. 이건 거의 100% 였다.

그 암초 위에서 몇 년전에 장을 보러 부딪쳐서 여럿이 죽었다. 평생에 잊지 못할 순간을 그때 한 번 당한 일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그물 임자를 찾아서 그물 값을 물어주어야 하는데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도망가도 되는데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렵게 주인을 찾았는데 그물 값으로 100만원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어렵게 사정하고 아는 사람들을 동원하여 그 당시에 60만원에 합의를 본 적이 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이 그물에 걸린 탓에 배가 파선에서 살아났기 때문에 전화위복의 계기를 맞이하였다.

2차 사고는 1993년 여름 신안군 하의도에서 스크류 고장으로 사리 때인 일곱물에 하루 밤을 세우면서 바다에서 밀려다니면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

신안군 장산도에서 목포 쪽으로 밀려가는데 시야도 등대위까지 밀려갔다. 다시 밀려 내려오는데 진도 울둘목 방향으로 배를 조정하였다. 율도란 섬에 도착하여 배를 걸려서 다시 순수 수리를 하고 무사히 일을 마치다.

혼자서 다니기에 두려움과 식사는 육지에서 하기 때문에 이 때 배고픔에 시달리며 배에는 아무 준비 없이 다니는 무모한 나의 모습에 원망스러웠다.

배에는 야간 항해를 하지 않기 때문에 전기 불도 없어서 지나가는 배에 충돌 위험이 많았는데 그때 수없이 지나가는 배들이 저의 배를 비켜가기에 그 이유를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레이다에 나타난 저의 배를 보고 피해 갔다.

3차 사고는 충남 안면도 영목항 앞에 원산도라는 큰 섬이 있는데 순회 중에 해도를 잘못보고 그만 암초 위로 올라가서 다시 한 번 스크류가 상하고 사우드가 굽어버렸다. 아주 천천히 배를 몰고 영목항에 들어와 밤 물에 배를 육지로 걸고 오전에 스크류와 사우드를 빼서 차를 빌려 태안읍으로 가서 수리하고 다시 하고 인천으로 올라 간 적이 있다.

4차 사고는 인천의 소이작도 해군 부대시설에 배를 몰고 들어가서 부대에 불려가서 혼이 난 일이 있다. 모르고 들어간 것이다. 그 지역에 살지 않으니 그 지역 사정을 몰라서 그런 것이다.

1993년도 초에 다시 여수로 와서 여수 주위에 14개 섬을 순회하였다. 여기서는 추도라는 작은 섬에 사는 조종남씨의 가족을 만나게 해준 일이 생생하다. 전국 순회를 마치고 나서 후원자를 만나지 못하고 출판이 지연되다가 1996년도에 ‘낙도선교’ 라는 책을 냈다. 2판까지 나왔다가 지금은 절판되었다. 이 책은 1. 섬의 개괄. 2 유래와 실태. 3. 선교적 상황 순서로 역었다. 이 책은 시중에도 나왔으며 전국의 섬 교회에 약 한 권씩 보내 주었다.

 

(이글은 2015년 11월 27~27일 강원도 삼척문화원에서 「2015 이사부 장군 울릉도 정벌항로 고증 및 전선 선형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이섬씨가 발표한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편집자주)

 

이재언(필명 이섬)
▲전남 여수시 ▲현) 국립 목포대학교 도서(섬) 문화연구원 ▲포털 사이트 네이버 재정 후원 작가 ▲ 전남일보 섬 전문 기자 ▲저서:‘한국의 섬’ 8권 출간, 2016년 5월까지 8권 출판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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