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고도의 하나…실크로드의 기점

[임권택 아주로드 편집국장] 중국 서안은 아테네, 로마, 카이로와 함께 세계 4대 고도(古都)로 손꼽히는 도시로 동양과 서양의 문화 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실크로드의 기점이기도 했다. 기원전 11세기부터 서기 10세기까지 13개의 왕조나 정권이 서안에 도읍을 정하거나 정권을 세웠다. 서안 1100여년의 역사 속에서 서주(西周),진(秦),서한(西漢),당(唐)이 가장 흥성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서안은 중화고대문명의 진귀한 유적들이 보존되어 있으니 ‘오천 년의 중국역사를 서안에서 볼 수 있다’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중국을 여행할 때 서안을 필수 코스로 잡는 것도 당연하다.

 

중국의 오악(五岳) 중 하나인 화산

화산은 옛날에는 태화산(太華山)이라고 불렸었다. 해발 2200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며 중국 국가급풍경구로 지정되어있다.

화산은 중국의 유명한 오악(五岳) 중에 하나로 산세가 험한 편이다. 구불구불 굽어진 12km길이의 등산로는 도처에 깍아 지른 듯한 절벽들이 있어 예로부터 화산에는 하나의 길만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화산에는 명승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사당, 누각, 암벽조각 등은 산 이곳 저곳에서 볼 수 있으며, 화산에서 비교적 유명한 고적들로는 옥천원(玉泉院)과 진무궁(眞武宮), 금천궁(金天宮/백제사) 등이 있다. 화산에서 북쪽으로 7km떨어져 있는 서악묘(西岳廟)는 옛날 서악화산(西岳華山)의 신에게 제사 지내던 사당이다.

화산
죽은 진시황을 지키는 진시황 병마용

병마용이란 흙으로 빚어 구운 병사와 말을 가리키는데, 불멸의 생을 꿈꿨던 진시황이 사후에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어마어마한 규모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힐 만큼 거대한 규모와 정교함을 갖추고 있다. 이곳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74년 중국의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했고, 그제서야 세상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현재에도 발굴이 진행중이다. 현재까지 3개의 갱이 발견되었으며, 700여개의 실물 크기의 도용(陶俑)과 100개가 넘는 전차, 40여필의 말, 10만여개의 병기가 발굴되었다. 병기들 대부분이 실제무기이며 현재는 창고에 보관 중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도용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자세와 표정, 복장, 헤어 스타일을 갖고 있어 그 섬세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병마용갱은 총 3개의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1호갱은 당시 농민이 처음 발견한 것이고, 후에 2, 3호갱이 발견되었다. 현재까지도 발굴 작업이 진행중이다. 학자들은 발견된 3개의 갱 외에도 진시황릉 근처에 아직 발굴되지 않은 더 많은 병마용갱이 묻혀 있을 거라고 보고있다.

병마용
가장 보전이 완벽한 명대의 건축, 종루

종루(鐘樓)는 서안중심에 위치한 동서남북 사방이 연결되어 있는 교통중심지역이다. 우리나라의 동대문이나 남대문과 비슷한 위치로 총 높이가 36미터, 총 면적이 1377.4 평방미터다. 서안의 종루는 중국에 남아있는 수많은 종루 중에서 제일 크고 보존이 완벽하여 서안의 상징적인 건축물일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종루는 명태조 주원장 홍무제 17년인 1384년에 시간을 알리기 위해 건설된 것으로, 외관 3층, 내부 2층 정방형의 누각형태다. 처음 건축되었을 때는 지금의 서안시 광제가(廣濟街) 입구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명나라 만력 10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이 건물의 특징은 못을 사용하지 않고 건물을 올렸다는 것인데, 사면에 회랑이 둘러져 있고 내부에 계단이 있어서 올라가 서안시내를 둘러볼 수 있게 해 놓았다. 또한 누각 안에 보전되어 있는 종은 고대시대 때 아침을 깨우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서, 새벽에 종이 울리면 종루의 문을 열고 저녁에 종이 울리면 종루의 문을 닫았다고 한다.

종루가 서안 중심에 위치해 있고, 종루를 기준으로 교통이 4방으로 통하기 때문에 이 주변에는 크고 작은 상점과 먹거리 장터가 열려 있다.

종루
양귀비와 현종이 겨울을 보내던 화청지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규모의 당나라 왕실 원림이다. 고대부터 수려한 풍경과 질 좋은 지하 온천수 때문에 역대 제왕들의 관심을 받아왔던 장소이다. 화청지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는데, 일찍이 서주(西周)시기, 주유왕(周幽王) 이 곳에서 려궁(驪宮)을 지었으며, 후에 진시황과 한 무제도 이곳에서 행궁(行宮)을 건립하였다. 특히, 당 현종 천보년간에 건설한 궁전누각이 가장 회려하며, 이 때 정식으로 화청궁(華淸宮)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당시(唐詩) 중에는 화청지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는 시가 비일비재할 정도로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했다

화청지 동쪽구역에는 정말약(郭沫若)이 쓴 "화청지" 금자편액이 걸려있으며, 구역 내에는 하화각, 비하각, 오간정(1936년 서안사변 당시 장개석이 머물던 곳) 등의 건축물이 있다. 그 중 온천석벽에 있는 온천송비(溫泉頌碑)는 중국 비석예술 중에서도 우수한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중앙구역에는 당 화청궁 어탕유적박물관이 있으며 연화탕, 해당탕, 태자탕, 상식탕, 성진탕 등의 당나라때 현종과 양귀비가 온천을 즐기던 탕과 문물 진열실이 있다.

화청지 온천의 수질은 매우 깨끗하며, 수온은 항상 43℃를 유지한다. 다량의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어서 관절염, 신경통 등에 효과가 있다. 또한 매일 육각정 무대 앞에서는 당나라 시기를 재현한 공연이 열린다

화청지
중국 최대 규모의 건축물, 고루

서안시내 중심에 위치한 종루에서 45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서안 고루는 종루보다 4년 먼저 건축된 명대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북경의 자금성, 명 13릉 다음으로 당시 건축기술과 미학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종루가 종을 쳐 시간을 알리는 누각이라면 고루는 북을 쳐 시간을 알리는 곳이었는데, 새벽부터 저녁까지는 종을 치고, 밤 시간에는 북을 쳤다고 한다. 약 10-10분 정도 진행되는 공연이 매일 열려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고 있는 명소이기도 하다

고루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진시황릉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 진시황이 여기에 묻혀 있다. 능묘는 37년간이 걸려 완공되었는데, 무덤의 둘레가 6㎞, 높이는 40m에 달한다. 무덤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야산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내부는 개발이 되지 않아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고 해도 내부는 볼 수가 없다. 진시황이 무덤을 설계할 때 훗날의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서 수은 등을 이용한 여러 가지 함정들을 설치해 두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그 비밀을 풀 수 없어 과학이 조금 더 발전하여 그 비밀을 풀 수 있을 때 발굴 한다고 한다. 따라서 진시황릉까지 간다고 해도 내부에는 들어갈 수 없고, 밖에서 사진 촬영을 하거나 릉 위에 오르는 정도의 관광을 할 수 있다. 요새는 릉 주변을 아름다운 공원으로 만들어 미니 전동카나 마차로 릉 주위를 돌거나 공원 주변에 전시해 놓은 옛 유물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진시황릉
높고 두터운 서안역사의 상징

서안성벽은 중국에서 보전하고 있는 건축물 중에서 가장 완전한 고성중의 하나다. 전체 길이가 13.6km, 높이가 12m, 폭이 15m로 높고 두터운 고성벽이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성벽은 명나라 홍무제 3년에서 11년까지에 걸쳐 건설되었으며, 그 역사가 이미 600년에 이른다. 고대 전쟁사를 보면, 이 성벽은 유일한 출입통로로서 통치자에게 있어서는 방어를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성벽은 동서남북의 4개문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고, 주변에는 넓고 깊은 호성하(護城河)가 흐르고 정문에서 시작되는 정로를 가로지르는 조교(弔橋)가 놓여있다. 1982년 7월에는 섬서성 정부의 주창아래 서안시민 몇 십만 명이 힘을 합쳐 독특한 풍격의 환성공원(環城公圓)을 조성했는데, 성 정상부분에는 조그마한 화원을 여러 개 만들어 놓았다. 서안성벽은 단지 역사적인 건축물의 의미를 넘어서 공원과 성, 길, 물이 어우러진 공원이 조성되어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서안성벽은 입장료를 받고 오를 수 있게 되어 있으며, 넓은 성을 둘러보게 하기 위해 모형전동차도 운행한다. 더운 여름 저녁에는 이곳에서 더위를 식히는 서안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한다.

서안 성벽
환상적인 야경으로 빠져드는 곳, 대당부용원

부용원은 본래 오랜 세월 동안 명성을 떨친 황가의 어원으로서 천 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 서안(西安)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안탑(大雁塔)에서 가깝다. 수(隋)나라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약 1300년에 이르는 유서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어서인지 고풍스럽고, 깊이 있는 매력과 분위기가 물씬 풍기며 주변 환경의 아름다움도 일품이다.

대안탑

오늘날의 부용원은 당나라 부용원 유적 위에 지어진 것으로 중국 최초로 성당(盛唐: 당나라의 전성기)시기의 문화와 당대 시대상 및 생활상을 전방위적으로 속속들이 재현해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조선시대를 재현한 민속촌과 같은 위상을 지닌 곳이다. 볼거리도 많거니와 단순히 오락으로 즐기고 넘기는 눈요기 거리가 아니라 역사를 배우고, 현재와 미래를 사색할 수 있게 도와주는 즐거운 학습장으로 매우 유익한 관광지라 할 수 있다.

부용원 안에는 자운루(紫雲樓), 사녀관(仕女館), 어연궁(御宴宮), 방림원(芳林園), 황명구천극장(凰鳴九天劇場), 행원(杏園), 육익차두(陸翼茶杜), 당시(唐市), 곡강류음(曲江流飮) 등의 관람관들이 준비되어 있으며 다채로운 구성으로 "오감"(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체험을 할 수 있어 중국 서북 지역에서 단연 손꼽히는 테마공원이다. 특히 매력적인 야경으로 최근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밤 어스름이 찾아올 때면 부용원 중앙에 위치한 호수에서 분수처럼 물이 뿜어져 올라오고, 그 위로 레이저가 쏘아지며, 수면 위에는 세계 최대규모의 수막(水幕)영화가 펼쳐진다.

-화려하고 몽환적인 야경은 관광객들에게 국제도시로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당나라시대로 돌아간 듯한 환상적인 체험을 선사한다. 참고로 이 곳을 배경으로 촬영된 중국 드라마 "대당부용원"은 국내에서도 방영된 바 있다.

부용원
서안의 먹거리: 교자

-우리가 보통 '만두'라 부르는 속이 들어간 전병쌈을 중국에서는 '교자'라 부르며, 정작 중국에서의 만두는 속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밀가루떡을 말한다. 토지가 비옥한 남방에서 쌀을 주식으로 먹는 반면, 척박하고 추운 기후의 북방에서는 밀로 만든 국수나 만두, 교자를 즐겨 먹었다. 지금은 지역에 상관없이 누구나 좋아하는 전통음식이면서도 별미가 되었는데, 중국인들은 춘절(설날)에 가족끼리 교자를 빚고 찌어 먹으면서 새해를 맞는다.

-돈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중국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교자라는 음식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반달형의 교자모습은 옛날 돈의 모습과 유사한데, 고대부터 돈을 좋아하던 중국인들이 음식을 돈의 모양처럼 만들어 먹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설날에 교자를 가족끼리 만들어 먹으면서 일부러 동전을 몇 개 넣어 두는데, 그 동전을 깨무는 사람에게 돈복이 온다고 믿는다고 한다.

-북경의 유명한 훈둔(만두국)부터 광동의 얌차에 이르기 까지 교자의 모습과 맛, 재료가 각양각색인데, 고기, 야채, 버섯 등의 다양한 재료와 물고기, 꽃, 나비 등의 다양한 모양의 교자를 찌거나, 삶거나, 굽거나, 튀겨서 내 놓는다. 이런 다양한 교자의 종류가 180여 종 이상이라고 하니, 역시 음식의 천국은 중국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서안 먹거리
서안의 볼거리:  서안 입성을 환영하는 북대문 입성식

서안으로의 입성을 환영하는 의미를 지니는 북대문 입성식은 과거의 입성식 절차를 재현하며, 또한 관광객들을 함께 참여하게 하여서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입성식 절차를 살펴보면, 먼저 북대문 도착해서 일렬로 서있으면 옛날 병사복을 입은 수문장들의 신호에 맞춰 성문이 열리고 뒤로 간소한 황실 행렬식이 열린다. 그러면 참여한 관광객들은 제공되는 작은 약술 한 잔을 마시고, 북대문을 통과하였다는 증명서와 함께 금색 열쇠를 받게 된다. 그리고 증명서를 들고 대문은 통과하고 나면 증표로 증명서에 도장을 찍어준다. 이어서 10여명 남짓한 무희들의 춤공연이 있고, 공연이 끝나면 함께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모여 단체 사진을 찍게 해준다. 만약 사진을 구입하고 싶으면 50元 정도 지불하면 된다.

 

[서안 여행 주의사항]

-우의상점이나 청진사 입구 등 시장에서 비단제품, 기념품 등을 살 수 있는데 외국인임을 눈치 채고 높은 가격을 부를 수 있으니 미리 흥정을 해야 한다.

-서안의 명승 고적들은 대충 한번 훑어 본다고 해도 1주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정도의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다. 만일 서안에서 하루밖에 시간이 없을 경우에는 진시황 병마용, 대안탑, 종루, 비림 등을 둘러 보도록 한다.

-진시황 병마용의 입장권은 카드식으로 입장 시에 카드를 기계에 통과시켜야 입장할 수 있다. 주의할 점은 제 2박물관에 들어갈 때 입장권을 한 번 더 검사하기 때문에 꼭 몸에 휴대하고 있어야 한다.

 

서안 국제공항 이용방법

-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의 공항은 서안시에서 서북쪽으로 약 70km 떨어진 함양시(咸?,션양) 동북방향에 위치하고 있다. 중국 4대공항 중 하나로 중국 내 60여개 크고 작은 도시와 한국, 일본 등지의 외국 여러 도시들과 항공편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천에서 아시아나(OZ)와 중국동방항공(MU) 직항이 운행되고, 부산에서 대한항공(KE)도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인천에서 서안까지의 비행시간은 약 3시간 정도이다.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 시에는 보통 약 1시간 단위로 출발하는 민항버스를 타고 서안기차역(1시간 정도 소요)에서 내려 가고자 하는 곳까지 택시를 이용한다. /자료제공:하나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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