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웃지 못할 핼러윈데이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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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웃지 못할 핼러윈데이 해프닝
  • 조병수 칼럼
  • 승인 2016.10.0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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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풍습,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차원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1990년대 초, 미국에서 근무한지 몇 개월 만에 처음 맞는 핼러윈데이(Halloween Day) 때였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10월 하순이면 호텔이나 백화점들이 핼러윈 복장이나 장식들을 많이 해두고, 여러 곳에서의 행사나 파티소식도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하지만 그 당시 그런 분위기를 처음 보는 이방인의 눈에는 ‘참 희한한 풍습’으로 비쳐졌다.

맨해턴 섬 서쪽 허드슨 강 건너에 있는 뉴저지 주 크레스킬(Cresskill)이라는 곳에 살고 있을 때인데, 낙엽이 쌓여가는 늦가을에 접어들면서 주택가 집집마다 창문이나 집 앞에 괴상하게 생긴 것들을 걸어놓고 있었다. 인간의 해골이나 뼈 모형, 드라큘라, 귀신복장 인형, 호박의 속을 파서 도깨비 얼굴을 새기고 양초를 넣어서 만든 호박등(Jack-o’Lantern) 같은 것들이 걸려있는 집들을 보면서, ‘괜히 음산하게, 왜들 이러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핼러윈데이의 기원이 1세기 중반까지 영국과 아일랜드지방을 지배했던 캘트족(the Celts)의 시대로 거슬러 간다고 하는데, 내가 런던에서 살던 1980년대 중반 때는 그다지 보거나 느낄 수 없었던 풍습과 전경이었다. 

그날이 마침 토요일이라 가족들과 시골길을 드라이브하며 늦가을의 정취를 즐기다가 저녁 무렵에 돌아왔다. 그런데 집 가까이에 이르러서야 옆에 앉아있던 아내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핼러윈데이에 동네 꼬마들이 문을 두드리면 사탕을 주어야 한다는데, 미리 사둔 것이 없다”고 했다.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까 사무실의 직원도 그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별생각 없이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러버렸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벌써 그 시간에는 슈퍼마켓은 모두 문을 닫을 시간이라서 방법이 없었다. “알았으면 미리 말하던지 아니면 사다 놓든가 해야지, 지금 와서 어쩌란 말인가!”라고 애꿎게 아내만 타박했다.

그리고는, ‘그래도 뭐 별일 있을라고? 우리 집이 외국인이 사는 줄 알 테니 누가 오겠나? 그리고 지금 모두 피곤하니 그냥 불 켜지 말고 자버리지 뭐. 그러면 집에 사람 없는 줄 알고 아무도 안 오겠지’라고 쉽게 생각해버렸다. 

‘준비가 안됐으면 그냥 바깥에서 식사나 하고 집에 늦게 들어가면 되겠지’하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차 타고 돌아다닌 탓에 피곤해서, 밥이고 뭐고 다 귀찮았다. 그저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그냥 그렇게 쉬운(?) 선택을 한 것이다. 

<미국 유아원에서의 핼러윈데이 행사>

집에 도착하자말자 모두들 방으로 들어가서 누웠다. 그러다 보니 금방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잠결에 아내가 “아, 앞집아이들이 오는 것 같다”고 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커튼 사이로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벌써 바깥은 어스름 황혼이 깔렸고, 건너편집 꼬마 둘이서 괴이한 흰색 복장을 하고 부모님들 배웅을 받으면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당황스런 그 순간에, 아내가 나직하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얘들아, 꼼짝하지 마라. 방에 불 켜지 말고 벨을 눌러도 일체 대꾸하지 마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엉겁결에 모두들 이불을 덮어쓰고 침대에 누워서 숨을 죽이고 있는데, 현관의 초인종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따르릉 따르릉···”, 계속 눌러대는 초인종 소리와 두런거리는 애들의 말소리를 들으면서 숨을 죽이고 있자니, 참으로 곤란한 지경이었다. 사탕도 사두지 못한 상태에서 순간의 선택으로 없는 척 했는데, 새삼스럽게 나가볼 수도 없었다. 

‘분명히 길 건너 집에서는 우리가 돌아오는 것을 보았거나 아니면 차가 있는 것을 보고 우리가 집안에 있는 것으로 알고 보냈을 텐데 이를 어쩌나···’ 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초지일관하자’고 또 한번 더 손쉬운 선택을 하였다. 

마냥 숨을 죽이고 한참을 있다가 보니, 잠시 두런두런하는 말소리와 함께 드디어 찰박찰박 걸어나가는 발걸음소리가 들렀다. 오! 그 시간이 왜 그리 길게 느껴졌는지…. 그렇게 그날 저녁 한참 동안 불도 못 켜고, 동네아이들 벨 누르는 소리에 간장을 녹였던 일을 떠올리면, 한동안 나도 모르게 가슴이 아려왔다. 

‘마냥 착하게 생긴 건너편 집 부부와 아이들에게 얼마나 실망을 안겨주었을까.'

‘아이들이 어려서 멀리는 못 보내고 부모들이 보이는 곳으로 보냈을 텐데, 이 무지한 외국인들이 그네들의 문화를 잘 몰라서 그런 것으로 이해나 해줄 수 있을지….’

정말 바보 같았던 얘기지만, 그 나라 문화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던 탓에 가슴 졸였던 추억이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현지직원에게 “지난 핼러윈데이에 이런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고 얘기했더니, “사탕이나 초콜릿이 아니라도 동전이나 1불짜리 돈으로 줘도 된다”고 하며 웃었다. 

핼러윈데이의 유래나, 귀신으로 분장한 꼬마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을 외치면, 어른들은 아이들이 가져온 자루에다 한줌의 과자 등을 넣어준다는 풍습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더라도, 그냥 문을 열고 직접 부딪치면서 사정을 얘기했었으면 우리 집을 찾은 애들이나 이웃에게도 실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그런 어처구니 없는 선택과 처신을 하게 되었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해면 괜히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중에 좀더 이웃들과 친숙하게 되면서 그 건너편 집에 가서 차도 마시고, 당시의 정황을 설명하면서 ‘변명 같은 사과’도 했다. 물론 다음 해부터는 사탕과 초콜릿을 미리 사두었고, 그것도 동이 나면 동전이라도 내밀었다. 

우리 아이들도 귀신복장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사탕 얻으러 나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기도 했다. 그 때 애들이 받아온 사탕과 초콜릿을 집에 쌓아두면, 한참 동안 간식거리가 되는 재미도 있었다. 

   

핼러윈데이 용품을 진열해놓은 미국 점포 /연합뉴스

핼러윈데이는 기원전 500년쯤 아일랜드 캘트족들의 풍습인 삼하인(Sahain)축제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시 캘트족들은 사람이 죽어도 그 영혼은 일년간 다른 사람들의 몸 속에 있다가 내세로 간다는 설을 믿었다. 

지금은 핼러윈데이라고 알려진 10월31일은 ‘그들의 새해’가 시작하기 전날로서, 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나서 1년간 머무를 상대를 선택하는 날로 여겼기에, 악귀들을 달래기 위해 여러 가지 괴이하고 재미있는 행사를 했었다고 한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아일랜드 원주민들은 악령을 쫓기 위해 가면이나 귀신 복장을 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음식을 달라고 요구하는 재미있는 전통을 만들게 되었고, 이것이 핼러윈의 대표적인 놀이인 ‘트릭 오어 트리팅’ 의 유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로마가 캘트족을 정복한 뒤 기독교가 널리 퍼지게 되면서, 이러한 아일랜드의 풍습을 성인들의 삶을 경축하는 날(All Hallow Day)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 전날인 10월31일을 (All Hallow’s Eve)로 했던 것이 핼러윈(Halloween)으로 바뀌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이후 1840년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기근으로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대거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미국에서도 핼러윈 축제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파티나 음식, 장식, 복장 등 여러 가지 핼러윈 관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히 유소년 시절에 귀신복장이나 독특한 복장을 하고 부모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르는 사람들의 집의 벨을 누르면서, ‘사탕을 내놓지 않으면 해롭게 하겠다’고 애교 섞인 협박(?) 이벤트로 재미있는 추억거리를 만들어 가는 그곳의 늦가을 문화도 제법 흥미로운 풍습이라고 여겨졌다. 

지금도 어디선가 핼러윈데이 얘기가 나오거나, 황금색 가을이 깊어가고 잘 익은 낙엽이 보도 위를 뒹굴 때면, 그때의 그 ‘몽매(蒙昧)함’이 생각나서 남 모를 미소를 떠올리곤 한다. 이럴 때 저절로 나오는 말이 바로, “아는 것이 힘이다”. 16세기후반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격언이다.

   

최근 들어 이런 ‘핼러윈데이 풍습’이 우리나라에도 젖어 들어서, 점차 익숙해지고 있는 분위기이다. 글로벌 시대에 외국의 풍습을 알고 이해하며 그런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과,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일 것이다. 

귀신 쫓는다는 얘기를 하다 보니, 어릴 적 어머니께서 끓여주시던 ‘동지팥죽’ 생각이 난다. 살다 보니 어쩌다가 ‘그날 그 맛’이 아득한 옛일이 되어버렸다. 물론 그 “액운을 쫓는다”, “새알심을 나이만큼 먹는다”는 동짓날의 풍습도 아주 옛날 중국의 풍습에서 유래되었다고는 하지만, 설날이나 추석같이 엄연한 우리의 세시풍속(歲時風俗)이다. 

기왕지사 쫓을 귀신이 있다면 ‘신토불이(身土不二)’아닌가? 물론 종교적인 시각을 떠나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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