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해수 칼럼니스트

[공감신문=지해수 칼럼니스트] 화가 났다가 어이가 없었다가 이젠 신기하기까지. 뭐랄까 어릴 때 즐겨보던 <토요 미스터리 극장> + <이야기 속으로> + <그것이 알고 싶다> 레젼드 편 몇 개 모아놓은 느낌이다. 오버하지 말라고? 아니 그건 어쨌든 TV에서 봤던 거고 이건 현실이잖아.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이 땅 한반도에서 벌어졌었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니. 다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지 알거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실들과 추측들, 그리고 정체 모를 찌라시들이 난무한다. 근데 설마가 사람 잡은 게 벌써 몇 가지나 되니 믿게 될 수밖에. 아니, 설마 보다 더 설마 같은 것들이 많았잖아?

나도 어쨌든 매체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다 보니, 그것이 얼마나 대단하지 않은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임을 알지만 또 그 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 줄 안다. 글은 칼만큼 힘이 있다.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지 않나. 영화에서 이강희(백윤식 분)는 ‘-한 것으로 보여 진다’와 ‘보인다’가 다르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말에는 굉장한 힘이 있는 것인데, 심지어 대통령의 연설문은 어떠할까. 한 국가의 원수가 하는 말이다. 그것을 고친 것으로 ‘보여 지는’ 이가 있었으니 한 나라를 주물주물 하고 있던 것으로 보여 지는 거지. 본인이 무슨 ‘비선실세’냐고? 그럼 어디까지가야 비선실세란 말인가.

 

그녀는 故 최태민의 딸이다. 그는 영생교의 창시자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천주교 신자로 알려졌지만, 영생교 신자인 것으로 ‘보여 진다’. 역대 대통령들의 종교를 보자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개신교,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무교였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개신교다.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주는 나라이다.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국교를 제정하거나 한 가지 종교를 강요하는 사회들도 있다. 현대에는 이슬람 국가들이 대표적으로 그러하다. 한반도에도 그런 나라들이 있었다. 신라의 국교는 불교였고 조선의 국교는 유교였다. 국민들도 그 종교를 믿었다. 그런데 마치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는 종교로 인한 ‘제정일치’ 사회에 살았던 기분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과 더불어 많은 정치인들이 정경유착의 장면들을 많이 보여주어 국민들을 실망시켰었다. 그런데 정경유착도 아니고 제정일치? 아니, 까다보니 이건 정경유착과 더불어 제정일치! 이건 너무 쇼킹하잖아. 물론 제정일치 사회라는 건 아니고, 그런 기분이 들었다는 거다. 내가 오늘 할 이야기는 종교 이야기다.

 

(제정일치 : 신(神)을 대변하는 제사장(祭司長)에 의해 다스려지는 국가 또는 정치체제. 즉, 종교와 정치적 권력이 분리되지 않고 한 사람에 의해 집중된 정치체제가 제정일치사회인 것이다. / 출처 : 한국민족대백과)

 

(드라마 <태조 왕건> 중에서, 궁예)

난 유신론자이다. 나는 개신교였으며 지금은 천주교 예비신자다. 초등학교 시절 나의 꿈은 수녀님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 따로 떨어져 살았던 나는, 성당에 가면 느낄 수 있는 수녀님들의 따뜻함을 사랑했다. 저렇게 온화한 어른이 되어서 나 같은 아이들을 보듬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수녀님이 입는 옷도 내 마음에 쏙 들었었다. 저 옷이면 평생 입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안엔 목사님도 계시고 엄마는 교회 음악을 만들었다.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하느님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하지만 난 내가 엄청나게 하느님을 사랑하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나에게 어쩌면 종교는 아주 흥미로운 주제 중에 하나인 것 같기도 하다.

신부님이 몇 주 전에 ‘천주교인’이 되는 것은 평생 바보로 살아가는 거라 하셨다. 남을 비방해서도 안 되고, 그저 예수님처럼 손해 보면서 바보 같이 사는 거라고. 그래서 6개월간 교육을 받아보고 평생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천주교인이 되는 거고, 아니면 말라고 하셨다. 성당에 다닌다고 다 천주교인이 아니랬다. 그냥 종교인도 있다고 하셨다. 종교 활동은 하는데 천주교인처럼, 그러니까 예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종교인인 거다. 솔직히 나는 거의 종교인에 가까운 것 같다.

얼마 전 어느 단편 영화를 촬영하는데 난 귀신을 연기했다. 게다가 대사에서 성경도 제 멋대로 바꾸는 이교도적인 짓을 했다. (물론 영화 속에 원래의 성경 구절이 나온다. 속이지는 않았음!) 난 분장을 하려고 내가 항상 차고 다니는 십자가 귀걸이를 뺄까요, 물었다. 감독님은 ‘해수 씨는 천주교 신자인데 이런 연기를 요청해서 갑자기 죄송하네요.’하셨다. 그러자 나를 좀 더 알고 있는 조감독님이 한 마디 하셨다.

‘무슨 소리세요, 해수 씨가 천주교 신자라니요! 해수 씨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 철학가에 가깝죠.’

난 이 말이 무지 마음에 들었다. 난 하느님에게 사랑을 받는다기보다, 내가 이런 저런 사유(思惟)를 하며 사는 인간이라는 것이 더 좋았다는 거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중에서)

가만 보면 종교가 있는 게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런 기운이 있다, ‘난 내 눈에 보이는 것만 믿어’할 것 같은 사람. 그리고 이상한 종교를 믿을 것 같은 사람도 있다. 그 사회가 인정해주는 것은 종교요, 그렇지 않은 것은 미신이다. (그래서 나는 최태민을 목사라 하지 않고 창시자 정도로 칭한 거다.) 사실 나는 미신도 어느 정도 믿는 것 같다. 예전에 아는 언니를 따라 신점을 보는 곳에 갔었는데 거기 계신 분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런 데(점집) 자주 오지 마라.’ 어찌 보면 고객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녀는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너는 종교를 가지는 게 좋다.’라고. 교회나 성당을 다니라고. 그래서 그러고 있다고 했더니, 칭찬을 받았다. 무당에게 교회를 다닌다고 칭찬을 받다니! 한국무신교총연합회에서는 최 씨 때문에 무속인들의 명예가 훼손되고 있다며 그녀를 지칭할 때 ‘무당’이란 말을 쓰지 못하도록 서명 운동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럴 만 한 것 같다. 그녀에 대해선 그저 프라다를 신는 ‘악마’정도라면 모를까.

 

무당은 창녀와 더불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 중에 하나다. 이전에 제사장이 있었다. 이 세상에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일들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종교가 생성되려면 보통 ‘신화’를 가진다. 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 타로카드나 주역 점은 칼 구스타프 융의 동시성의 원리로 설명된다고 한다. 우리가 모르는 정말 <인터스텔라>같은 세계가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간이 너무나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사실 설명할 수 있는데 우리가 아직 멍청한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계속 멍청했으면 좋겠다. 여기서 나의 종교관이 나오는데, 인간들은 아주 교만한 존재라서 구약 성경에 나오듯 저들이 신(神)인줄 알고 바벨탑을 쌓아올릴지 모르는 거다. 수많은 사이비 종교들에서 본인들이 구세주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사이비 종교 천국이다. 이 작은 나라에 새로 오신 구세주가 도대체 몇 명인지. 심지어 영생교의 논리는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통합한 것이라는데, 인간이 하나의 신이 되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하고 신비스러운 일인가. 심지어 요즘처럼 뭐만 하면 ‘인증샷’을 남기는 이 시대에! 인간은 대부분 누구나 그럴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사랑 역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린 누구나 사랑에 빠지니까. 종교는 거의 인류애에서 출발하는데,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인간 스스로 아주 불안정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 절대 불변의 것에 기대려는 거다.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은 너무도 나쁘다. 아주 나약한 멘탈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사기를 당하거나 사이비에 빠지기가 비교적 쉽다. 약간의 기적만 보여주면 이들은 믿어버리니까. 자신의 성공 신화, 혹은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다던가. 보이지 않는 것이 믿기는 힘들지만 한번 믿게 되면 그 파급력은 엄청나다. 지금 이 나라의 꼴을 보아라.

 

영화 <리플리>의 원래 제목은 <The Talented Mr. Ripley>이다. 재능 많은 리플리. 그의 재능은 남 흉내를 기가 막히게 낸다는 것. 어머니를 여읜 어린 딸에게 접근하여 어머니 목소리를 똑같이 내며 딸을 홀린 그. 그렇게 모든 게 시작된 거다.

 

신의 존재 유무에 대한 이야기는 많았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말했고, 리처드 도킨슨은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을 펴냈었다. (엥? 영생교야 말로 만들어진 신 아닌가?) 어쨌든 우리는 우리 의지는 아니었지만 세상에 태어났고 이 세상에서 살아나간다. 기독교의 논리대로라면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 하느님을 모르던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했기에 다 지옥에 갔던 거다. 우리는 원죄를 지었으므로. (사실 구약성경만 보자면 하느님은 인자하신 분은 아닌 것 같다.) 그런 논리를 믿던 안 믿던 당신의 자유다. 나에게 귀신 연기를 시킨 감독님의 아버지는 무교이시란다. 어느 날 감독님의 기독교인 친구가 아버지를 전도하려고 했나보다. 근데 해도 해도 안 되자 당연한 질문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나중에 천국가고 싶으세요, 지옥가고 싶으세요?”

“난 지옥.”

당연하지 않은 대답이었다!

“아, 장난치지 마시고요.”

“진짠데. 내 친구들은 다 지옥 갈걸? 나는 천국 가서 난생 처음 보는 예수랑 친하게 지내느니, 그냥 내 친구들이랑 지옥 가서 소주나 마실래.”

기독교인 친구가 더 이상 무슨 얘길 하겠는가. 그는 그렇게 살기로 결심한 거다, 그렇다고 그가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건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 더 나아가 사회를 조종한 것으로 보여 지는 이들은 어떤 벌을 받아야 마땅한 걸까.

 

사실 이상한 종교에 빠진 것으로 ‘보여 지는’ 대통령을 욕할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그런 성향이 다분한 거 같다. 며칠 전 동네 할아버지들이 소주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네에서 전도하려는 아주머니들에게 ‘개독’이라고 욕하시면서, “세계를 지배하는 대통령이야! 어린 나이에 엄마 아빠 잃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어?” 하셨다. 내 생각에 저 정도로 말씀하시는 거면 그 할아버지에게 박 대통령의 가족은 거의‘종교’구나 싶었다. 아직도 지지율이 저 정도라니, 언론 조작일거야 싶다가도 저런 이야기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였다. 하긴.... 우리 할머니도 우리 엄마를 맘에 들어 한 가장 큰 이유는 엄마의 이름 때문이었다, 그 이름은 ‘박정희’.

 

우리가 오해하는 것 중에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의 민간인들은 ‘IS’를 두려워하고 평화롭게 살고자한다. 왜 그들이 ‘종교’라는 이름하에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며 민간인들을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과연 신의 뜻이란 말인가?

대통령이 특정 종교를 믿던 안 믿던, 어쨌든 파문을 일으킨 건 잘못이다. 제발 그게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길 바란다. 양배추나 양파 같은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최 씨 모녀가 개입이 안 된 곳이 없더라. 이 사태가 전화위복이 되어 병든 한국 사회를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주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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