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사진 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사진 연합뉴스

 

[공감신문] 염보라 기자=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연내 테이퍼링(tapering·자산 매입 축소)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전망이 곳곳에서 나온다. 빠르면 올 가을 테이퍼링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는 모습이다.

연준이 이미 테이퍼링을 시작했다는 시각도 있다. 올해들어 역레포(역환매조건부약정) 한도를 늘리고 금리를 인상한 것 그리고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5월까지 만기가 돌아온 유동성 프로그램을 연장 없이 종료한 것 역시 테이퍼링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테이퍼 텐트릭 재현 안 돼’… 시장 살피는 파월

테이퍼링은 사전적 의미로 ‘끝이 뾰족해진’ ‘점점 적어지는’이라는 뜻을 가진다. 2013년 5월 당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양적완화 정책의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하겠다는 의미로 이 단어를 쓰면서 하나의 경제용어로 자리 잡았다. 

연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매월 국채 800억 달러, 주택저당증권(MBS) 400억 달러를 사들이는 양적완화를 통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테이퍼링을 한다는 건 국채와 MBS의 매입 규모를 매월 조금씩 줄여나간다는 의미다. 시장에 풀린 유동성을 천천히 거둬들이는 작업인 셈이다. 물을 세게 틀어놓은 후 수도꼭지를 조금씩 잠그는 모습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전 세계가 미 연준의 테이퍼링 시점을 예의주시 하는 이유는 2013년 발생한 ‘테이퍼 텐트럼(Taper tantrum·긴축발작)’의  기억 때문이다.

연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막대한 자금을 풀었다. 그리고 2013년 5월 시장에 풀린 유동성을 회수하기 위해 테이퍼링 게획을 발표했다.

결과는 끔찍했다. 인도·인도네시아·브라질·터키·남아공을 중심으로 신흥국 환율이 20%가량 하락하고, 자산 가격이 급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후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자산 매입 프로그램의 축소 가능성을 언급하자 당일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17bp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은 격하게 반응했다. 전 세계로 퍼져나간 유동성이 축소될 것이란 우려가 만든 발작이었다.

상황이 이렇자 연준은 두 손을 들었다. 테이퍼링 계획을 미뤘고, 이로 인해 연준은 기준금리를 제로로 인하한 2008년 12월 이후 7년이 지난 2015년 12월에야 금리 인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신환종 NH투자증권 FICC센터장 <인플레이션 이야기> 참고)

당시는 제롬 파월 현 의장이 연준 이사로 막 이름을 올린 시점이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파월 의장이 테이퍼링 발표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촬영 김세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워싱턴DC 본부 건물 전경. 2015년 3월 13일 촬영. 전경 본관 [사진= 연합뉴스]
촬영 김세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워싱턴DC 본부 건물 전경. 2015년 3월 13일 촬영. 전경 본관 [사진= 연합뉴스]

 

□ 연은 총재들, 가을 테이퍼링 언급… 이미 시작됐다는 분석도

신중한 입장을 견지 중인 연준 지도부와 달리, 시장은 연내 테이퍼링 가능성을 유력시 하는 분위기다. 6월에 이어 7월에도 고용지표가 좋았기 때문이다. ‘고용 회복’은 연준이 내걸은 테이퍼링 조건의 하나다.

미 노동부는 지난 6일(현지 시각) 7월 비농업 신규 고용이 94만3000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당초 예상치(87만명)를 크게 웃도는 규모다. 실업률 역시 5.4%로 16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증권사 평균 전망치는 이보다 높은 5.7%였다.

7월 고용지표가 나오자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은 8월 고용지표 내용에 따라 가을 테이퍼링이 가능할 것이란 생각을 언론에 흘렸다.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는 “(테이퍼링 시작 시점을) 10~12월로 생각하고 있지만 (8~9월) 고용지표가 7월과 비슷하거나 더 잘 나오면 앞서나가는 방안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고,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 연은 총재 역시 ”올해 가을 테이퍼링을 시작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연준의 테이퍼링이 현재진행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첫 번째 근거는 역레포 자금 규모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외신에 따르면 역레포 자금 규모는 8일(현지시간) 하루만에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연준이 2013년 역레포 제도를 도입한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역레포는 은행과 머니마켓펀드(MMF) 등에 미 국채를 빌려주는 대신 현금을 받는 형식으로, 당국이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역레포 자금 규모는 연준이 기관당 일일 한도를 300억 달러에서 800억 달러로 확대한 3월부터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면서 “연준은 이후 6월 역레포 금리를 기존 0%에서 0.05%로 인상하며 한 차례 더 문을 열어줬다. (역레포 자금 규모 확대가) 시장이 만든 결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연준이 유도했다고 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근거는 연준이 지난해 3월 신용경색 대응을 위해 5개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를 설립해 공급했던 긴급 유동성 프로그램을 연장 없이 시한 종료한 것이다.

정 본부장은 “팬더믹 국면에서 (연준의 양적완화 정책은) 채권·MMF 매입이 60%였고, 나머지 40%는 유동성 프로그램으로 공급했다”면서 “(유동성 프로그램의) 만료시한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차례로 돌아왔는데, 연장 없이 종료하며 그 통로의 유동성을 모두 정리했다. 이미 시장 유동성을 흡수하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미 연준 출신인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연준은 2013년 경험으로 (부작용을 최소화 하기 위해) 어떤 스텝이 필요한지 알고 있다”면서 “그때 배운걸 여러 스텝으로 나눠서 천천히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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