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퇴진 전제 국회추천 총리‘ 불가…국민의당 ”일단 총리 뽑아야“

[공감신문 박진종 기자]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입을 열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발의를 늦출 이유가 없다"며 탄핵절차의 조속한 착수를 촉구하며, "국회 추천 총리를 선출해야 한다. 나중에 대통령이 임명을 거부할지라도 일단 총리를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20일 최순실 등에 대한 검찰의 기소 이후 정치권은 빠르게 탄핵정국으로 전환하고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도 차라리 탄핵을 받아들이는 입장이고, 야당도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므로 탄핵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당론을 모았다. 국민의당은 탄핵을 당론으로 결정했고, 이어 더불어민주당도 단핵추진을 당론으로 의결했다.

문제는 국무총리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성사되더라도 다음 정권에 권력이 이양될때까지 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받아 집행하게 된다. 이 점에서 야당의 딜레마가 있다. 안철수 전대표가 탄핵을 서두르자고 하면서 우선 야당이 다수당인 국회추천 총리부터 지명하자고 한 것인 야권의 초조함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총리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에 의해 피의자 신분이 되었지만, 국정을 수행하는데 법적인 문제가 없다. 법적으로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유죄의 확정판결 시까지 죄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헌법에서 대통령에 대해 재직 중에 형사상 소추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어 박 대통령을 기소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박 대통령 측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공소사실에 대해 "어느 하나도 인정할 수 없다"며 검찰 조사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해 현 상황에서 박 대통령을 조사하기도 쉽지 않다. 특별검사가 박 대통령을 수사하는 데까지는 수개월이 걸리게 된다.

박 대통령이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버틸 경우, 방법이 없다.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 발표에도 불구하고 헌법상 대통령에게 주어진 책무를 다하겠다는 입장이 확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 /연합뉴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미묘한 발언을 했다. 그는 "야당은 대통령이 제안한 것과 다른 뜻으로 요구하고 있다"며 "조건이 좀 달라졌으니까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정 대변인은 취재진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 "야당의 주장에 일관성이 없으니 우리로서는 지켜볼 수밖에 없다"며 "박 대통령의 정세균 국회의장 방문 시 대통령이 총리권한에 대해 하신 말씀에 입장 변화가 없다. 야당과 대화를 통해 풀어가야 한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원안 고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연국 대변인이 나중에 완곡하게 말을 돌렸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여차하면 국회 추천 총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황교안 총리를 그대로 둔채 탄핵 절차를 밟겠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야권은 청와대가 국회 추천 총리' 문제와 관련해 '조건이 좀 달라졌으니까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언급한데 대해 발언의 진의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박 대통령 퇴진을 전제로 총리를 추천하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진 것이다.

특히 이대로 후임 총리 문제가 확실히 정리되지 않을 경우 자칫 '황교안 권한대행체제'로 탄핵정국을 맞을 수 있는 점이 야권으로서는 딜레마다.

야당이 과도내각 또는 거국중립 내각의 수장으로 새로운 총리를 세워야 한다는 논의를 하는 배경 중 하나는 박 대통령이 당장 퇴진하면 황교안 총리가 권한대행을 맡게 되는 상황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는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돼도 마찬가지다.

황 총리는 공안검사 출신으로 현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내며 통합진보당 해산을 이끌어냈고, 총리 취임 이후 국회의 대정부질문이나 현안질의에서도 야권의 공세에 흔들리지 않고 단호하게 대응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황교안 총리를 디딤돌로 삼아 국회가 자신의 퇴진을 전제로 야당이 총리를 추천하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또한, 박 대통령은 최악의 경우 야당이 탄핵안을 가결시키면 황 총리가 권한대행을 맡는 상황까지도 고려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야당이 대통령 퇴진을 전제로 한 초법적인 틀로 총리 추천 문제에 접근하면 결국 대통령 입장에서는 황 총리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권의 초조함은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의 발언에서 드러난다. 그는 "헌법상 박 대통령은 엄연히 대통령으로, 우리가 퇴진을 요구하더라도 총리를 대통령에게 추천해 임명을 받아야 하는 게 헌법적 절차"라고 운을 뗐다. 그는 "대통령이 탄핵을 원한다면 탄핵의 요건은 국회에서 의결정족수 200명도 확보될 수 있지만, 탄핵 절차에 대비하기 위해 선 총리 합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청와대는 여야 합의 총리가 추천되더라도 임명하지 않는 것을 검토하고 있고, 그러한 말을 흘리고 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다른 자리에서 "탄핵을 위해서도 선(先)총리가 돼야 한다. 안되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인데 이는 박근혜 정권의 연속"이라며 추 대표의 '선 퇴진·탄핵, 후(後) 거국내각 논의 발언'에 대해 "순서가 좀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 추천의 주체에 대해 "여당도 같이 해야 한다. 같이 안하면 (대통령 거부의) 구실을 주는 것"이라며 "대통령과 여야3당 대표의 4자 회동에서 논의해서 총리를 합의하면 대통령이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의 강경대응에 대해선 "우리가 덫에 걸렸다"고 말했다.

야권의 반발로 애매한 처지에 빠진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는 정치권이 총리 추천 문제를 놓고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정치권이 실기(失機)한 게 아닌가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김 내정자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당장 총리 추천 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는데 왜 이렇게 뒷전으로 미뤄 정국을 꼬이게 하는지 정치권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정치권은 문맥상 야당을 의미한다.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 /연합뉴스

'선(先) 총리 추천론'에 부정적이었던 민주당 주류로선 ‘황교안 딜레마'를 감안할 때 무작정 총리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는 게 고민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추미애 대표는 아직도 강경하다. 추미애 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황 총리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통령이 문제라니까…"라고 즉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앞서 이날 최고의 회의에서 "지금은 첫째도 퇴진, 둘째도 퇴진, 셋째도 퇴진이다. 그 기조 아래서 탄핵을 검토하고 적절한 시기에 과도내각 문제도 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민주당의 김부겸 의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이미 국민에게 신뢰를 잃은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가 상황을 수습한다면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며 "국회가 새 총리를 추천, 그 분이 책임총리가 돼 국정의 혼동을 안정시키는 절차를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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