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정치인·전문직 등 임금 줄여 청년 일자리 창출 선순환”

[공감신문] 염보라 기자=2012년 여의도를 떠들썩하게 한 책이 있다. 여의도로 출퇴근을 하는 이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 통했다. 정대영(사진) 송현경제연구소장이 집필한 <한국 경제의 미필적 고의>가 그 주인공이다. 

‘잘사는 나라에서 당신은 왜 가난한가’를 부제로 내건 이 책에서 정 소장은 경제문제의 해결책이 이미 존재함에도 정책 결정권의 고의 또는 과실로 경제시스템이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신랄한 비판과 실질적 대안 제시는 한줄한줄 밑줄을 치며 읽어야 할 만큼 값진 것이었다.

그런 정 소장이 이번에는 <성장과 일자리, 해법은 있다>라는 책을 통해 다시금 쓴소리를 내뱉었다. 

정 소장은 10일 공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정부의 성장정책들은 결정권자가 ‘나는 이게 중요해’라고 하는 부분에 초점 맞춰 만들어진 탓에 국민이 체감하는 정도의 성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잠재성장률을 구성하는 요소인 노동과 자본, 생산성에 공통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제를 잡아 성장정책을 만들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면서 그 ‘주제’로는 직업간 과도한 보상격차와 비싼 부동산 가격을 제안했다.

먼저, 직업간 과도한 보상격차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솔선수범해 급여를 낮추는 등 특권과 특혜를 없애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를 시작으로 국회의원, 의사, 변호사, 교수, 공무원 등 기득권층의 특혜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야 청년 일자리가 늘어나고,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노동자의 소득이 올라갈 수 있다”면서 “이걸 외면하고 언저리만 건드리면 개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는 “부동산 세제나 대출 완화부터 추진하는 건 성급한 결정”이라며 “(부동산) 공급을 늘려 (집값을) 확실하게 안정화한 뒤 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정 소장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 사진 염보라 기자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 사진 염보라 기자

 

Q. 잠재성장률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OECD·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1980년대 말 9% 내외에서 2000년대 초 5% 중반, 2020년 2%대로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 상태대로라면 곧 ‘제로퍼센트’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이 문제인가.

- 잠재성장률을 결정하는 기본 요소는 노동, 자본, 생산성이다. 한국은 이 세 가지가 모두 나빠지고 있다. 

노동의 경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 데다, 소위 말하는 ‘좋은’ 직장에만 구직자가 몰리는 노동시장 불균형으로 인해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다. 노동의 질도 평가가 쉽지는 않지만 썩 좋아 보이진 않는다.

자본 부분을 보면, 2012~2013년경 국내총생산(GDP) 대비 고정자산비율이 3.5배 정도 됐다. 선진국 수준이다. 자본이 많이 늘어나면서 수익성 있는 투자기회를 찾기 어려운 시기가 온 것이다. 신규 투자에 의한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가장 중요한 건 생산성이다. 생산성을 결정하는 요인은 기술, 혁신, 사회의 신뢰수준, 규제문제, 정책·제도의 투명성과 일관성 등 복합적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 모든 게 조금씩 부족하다. 통계상 생산성 수치가 점차 악화하는 원인이다.

종합해 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니, 거의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Q. 여·야 구분 없이 매 정부에서 성장정책을 추진했으나 실제 성과는 미미했다. 실패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동반성장, 공정성장, 포용성장, 창조경제, 녹색성장 등 수없이 많은 성장정책이 나왔다. 모두 잘못됐다, 틀렸다기보다는 ‘나는 이게 중요해’라고 생각하는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서 성장정책을 만들다 보니 국민이 체감하는 정도의 성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앞서 말씀드렸듯 잠재성장률을 결정하는 요인은 노동과 자본, 생산성이다. 그러니까 핵심은 성장률을 결정하는 여러 요인에 공통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제를 잡아서 성장정책을 써야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주제로 직업관 과다한 보상격차와 부동산 문제를 주목하고 있다.

Q. <성장과 일자리, 해법은 있다>에서도 잠재성장률 하락의 핵심 문제로 직업간 과도한 보상격차와 부동산 문제를 지적해주셨다. 먼저, 직업간 과도한 보상격차 문제부터 설명해달라.

-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직업은 공무원, 의사, 변호사, 교수, 금융권 종사자, 정치인 같은 것들이다. 공공부문이거나 공공부문 비슷한 직업이다. 예를 들어 의사는 공공부문은 아니지만 숫자나 업무범위를 법으로 정하고 의료수가로 소득을 보장한다. 금융기관도 신규 진입이 엄격하게 제안돼 사실상 공공기관화(化)돼 있다. 이런 직업은 높은 보수를 받는다. 

반면 민간 부분은 보수가 시장에서 결정되는 탓에 양극화돼 있다. 일부만 공공부문과 견줄 수 있는 수준이고 대부분은 낮다.

상황이 이러니 구직자가 공공부문으로 몰리고, 중소기업 등에는 찬바람이 날리는 등 노동시장의 불균형이 생기게 됐다. 또 노동시장 불균형은 노동 공급을 제약하고, 한국 경제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이는 다시 소비 부진으로 이어지고 투자를 감소시킨다. 걸리는 요인이 굉장히 많다는 생각이다.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 사진 염보라 기자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 사진 염보라 기자

 

Q. 책에서 기득권의 소득을 줄이고, 절약된 비용으로 청년층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자는 제안을 하셨다. 그 소신은 지금도 여전한가.

- 기득권의 보수를 낮춘다는 건 쉽지가 않은 문제다. 그러면 누군가가 솔선수범을 해야 한다. 결국은 성공한 정치인이 앞장서야 한다. 대통령, 국회의원, 장·차관, 공기업 사장 같은 분들이다. 이분들이 얼마를 받아야 할까를 생각하면 사실 답이 없는 문제다. 하지만 지금보다 절반 이하로 줄여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급여를 줄여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이) 되고자 사람은 충분히 많을 것이란 의미다. 그 돈을 절약해 신입을 많이 뽑으면 일자리 창출이 되는 거다. 

시간이 지나면 의사나 교수 등 (고소득) 전문직으로도 분위기를 확대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교수들은 보수 자체가 많은데 사외이사 등을 통한 부수입도 상당하다. 최대 3곳의 사외이사를 맡을 수 있는데, 수입은 1곳당 적으면 300만~400만원, 많으면 1500만~2000만원씩 된다고 한다. 이러한 특혜와 특권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Q. 교수 중에서도 정교수와 시간제 교수의 소득 격차가 상당하다.

- 책에도 썼는데, 대학에는 한국의 모든 문제가 농축돼 있다. 정 교수와 시간강사의 차이는 기업에서 정규직과 비정규 차이보다 더 크다. 교수들이 지금까지 누려온 특혜와 특권을 조금씩 줄인다면 사회가 조금은 더 공평해지고 상식에 맞게 변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책에서 소득세 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소득세 포괄주의 도입을 제안하셨다. 소득세 포괄주의란 무엇인가. 도입이 필요한 이유는.

- 조세 제도는 국민경제의 근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조세 제도가) 부실하다. 그중에서도 소득세 제도가 특히 부실하다. 우리나라는 소득세율이 낮은 나라가 아님에도 GDP 대비 소득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세금을 제대로 못걷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저소득층이 많은 영향도 있겠지만, 소득이 있음에도 안 걷히는 세금이 상당할 것이라 본다. 

그렇다면 세금이 제대로 안 걷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우리나라 소득세 제도가 근로소득제, 이자소득세, 배당소득세 등 열거형으로 돼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해당이 안 되는 소득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과거 에버랜드 전환사채로 돈을 엄청 벌었지지만 이에 대한 과세는 없었다. 비트코인으로 아파트값을 벌어도 과세가 안 됐다. 유튜브 소득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바뀌어 가는데 열거형으로 돼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구멍이 만들어진 거다.
 
그래서 제안한 게 소득세 포괄주의다. 소득세 포괄주의는 모든 납세자가 자신의 모든 재산과 쓴 돈에 대해 탈세가 없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어떤 형태의 소득이건 세금을 내야 한다. 훔친 돈이든 뇌물이든 세금을 내야 한다. 미국이 현재 그렇게 하고 있다. 유럽도 비슷하게 가고 있다. 소득세 포괄주의를 도입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소득세 포괄주의가 금융실명제와 비슷하다고 보는데, 19990년대 금융실명제 도입 당시 우리나라가 망할 거라고 했는데 실제는 오히려 더 좋아졌다. 우리나라도 검토해볼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Q. 경제정책 수립의 기본은 ‘통계’다. 그런데 한국 분배구조나 임금수준 통계의 신뢰성이 낮다고 지적하셨다. 무엇이 문제인가. 해결방법이 있다면.

- 분배구조 관련 통계로는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라는 게 있다. 원래 도시근로자 동향조사로 시작했다.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조사인 거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자영업자도 조사 대상에 포함했지만 뿌리가 도시근로자인 탓에 소득 격차가 실제보다 적게 나온다. 그마저도 설문조사 방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신뢰도가 낮다. 자꾸 지적을 받으니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다.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통계청이 함께 ‘가계금융복지조사’를 하려고 한 게 대표적이다. 다만 아직 신뢰도 측면에서는 부족한 게 현실이다.

사실 분배구조를 정확히 알기 위한 통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세청에서 전 국민의 세금을 걷고 있지 않나. 그러면 누가 세금을 많이 내는지, 순위를 도출할 수 있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개인 식별번호를 없애고 공표하면 끝날 문제다. 

Q. 그런데 왜 공개를 안 할까.

- 프라이버시 문제라고 하는데 모르겠다. 이미 시행 중인 스웨덴을 보면 이름, 주소, 전화번호까지 다 공개한다. 옆집 사람이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 다 알 수 있다. 그러니 탈세를 할 수가 없다. 옆집 사람이 분명 사치를 부리고 있는데 세금을 나보다 적게 냈다면, 당장 신고를 하는 거다. 스웨덴처럼은 못하더라도 개인 식별정보를 제거하고 공개하면 간단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분배와 평등 문제를 특히 신경 썼는데, 사실 이것만 발표해도 저절로 해결됐을 문제다.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사진 염보라 기자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사진 염보라 기자

 

Q. 이제 비싼 부동산 가격 문제를 이야기해보겠다. 책에서 ‘만악의 근원’이라고까지 표현했는데, 비싼 부동산 가격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좋은 지역에 부동산을 가진 사람과 건설업자·주택분양 종사자 등 소수를 제외하고 국민 대다수는 피해를 본다.

가장 큰 문제는 ‘누구는 아파트로 돈을 벌었다’라는 이야기가 들리니까 사람들의 노동력이 감퇴하고 경제 정의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또 부동산이라는 건 결국 돈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한 시장이지 않나. 부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빈곤의 대물림이 이뤄질 수 있다.

그리고 집값이 오르면 미국은 소비가 소폭 늘어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집이 있는 사람은 세금 부담 때문에,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사기 위해 저축을 하니까 소비가 위축되는 거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임대료가 오르고, 근로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하니까 산업 경쟁력이 악화하는 등 악순환이 일어난다. 이외에 가계부채 문제나 저출산 등 문제도 결국은 부동산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만악의 근원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Q. 책에서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을 ‘오락가락’ ‘땜질처방’으로 표현하셨는데, 참 와닿았다. 특히 문재인 정권에서는 20여차례 부동산 정책을 발표해 시장에 혼선을 빚었다. 왜 오락가락 정책이 나왔다고 보는가.

- (정부가) 말은 그렇게 안 하지만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부동산 경기를 죽이지 않으면서 집값을 안정화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해 도둑놈 심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를 보면 물가를 먼저 잡고 그 다음에 성장을 보겠다고 하지 않나.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려고 하니 땜질처방이 나오고, 때에 따라 오락가락하게 되는 거다.

이렇게 함으로써 국민을 속이는 것도 같다. (다주택자에게) 규제나 세금을 많이 부과한 듯 보이는데, 실상을 보면 새로 집을 사려는 사람들을 오히려 더 힘들게 만들었다. 

Q. 부동산 개혁의 기본 방향으로 특혜 축소와 세제·규제의 단순 투명화를 제안하셨다. 간략히 설명해달라.

- 돈이 가장 많이 흘러들어가야 할 곳은 생산적인 투자다. 다음이 금융자산이고, 부동산은 마지막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돈이 모두 부동산으로 간다. 여러 가지 혜택이 많기 때문이다. 평소에 “부동산 투자를 안 하는 건 어마어마한 도덕적 자제심이 있지 않은 이상 힘든 일”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만큼 혜택이 많다.

부동산에 쏠리는 돈이 금융자산, 생산적 투자로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특혜를 줄여야 한다. 개선해야 할 특혜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실거래 가격이 아닌 공시가격으로 과세하는 것이다. 공시가격은 실거래가에 크게 못미치기 때문에 고스란히 특혜로 작용한다. 두 번째는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문제다. 임대소득은 대표적인 근로소득이자 이미 실현된 소득임에도 우리나라는 과세를 안 한다. 특히 문 정부에서는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면 너무 많은 혜택을 줬다. 이해할 수 없는 조치다. 세 번째는 1주택자에 대한 혜택을 굉장히 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1주택자보다는 무주택자·세입자의 혜택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 때 땜질처방을 하다 보니 세제가 굉장히 복잡해졌다. 일반인들은 고지서를 받기 전에 자신이 내야 할 양도소득세나 보유세 등을 예측할 수 없다. 세무사들조차 상담을 하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다.

Q. 책에서는 1주택자 대상 혜택을 줄이는 대신 납부이연제 도입을 제안하셨다. 납부이연제 도입이 왜 필요하다고 보는가.

- 보유세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이기 때문에 반발이 있을 수 있다. 또 집값이 빠르게 오르면서 은퇴자 입장에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납부이연제는 집을 팔거나 상속 또는 증여를 할 때 세금을 한 번에 내게 하자는 거다. 대신 세율은 지금보다 많이 가져가야 한다. 좋은 집에 살았고, 집값이 많이 올라 수익 실현을 했으니 반발도 적을 것이다. 정부가 받아야 할 세금이 10~20년 뒤로 이연되는 만큼 미래 재정에 보탬이 된다는 장점도 있다.

정대영(왼쪽) 송현경제연구소장과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염보라 기자
정대영(왼쪽) 송현경제연구소장과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염보라 기자

 

Q. 집값이 비싸다 보니 가계 보유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책에서는 외화자산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하셨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 한국은 보유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70~80%를 차지한다. 우리는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비정상이다. 미국이나 일본은 30~40%에 불과하다. 유럽도 50% 수준이다.

부동산만 가진 상태에서 나라가 고령화되면 어려움이 커진다. 부동산은 국내에서 임대료만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외화수입이 없는 거다. 우리나라 같은 자원 빈국은 수출이 충분치 않을 때 식량이나 에너지를 수입할 재원이 부족할 수 있다. 

사람이 은퇴를 대비해 자산을 쌓아놓듯 나라도 은퇴에 대비해 투자 자산을 비축해놔야 한다. 일본을 보면 10여 년 전부터 상품수지와 서비스수지가 나쁘지만 경상수지 흑자가 유지되고 있다. 해외투자가 많아서 그렇다. 이걸 소득수지라고 한다.

지금처럼 모두가 국내 부동산만 갖고 있으면 미래에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다. 그래서 외화자산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데, 사실 쉽지는 않다. 외국에 대한 정보가 없고, 또 부동산처럼 사놓으면 그냥 오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Q. 지난해 12월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이 종료됐다. 그런 측면에서 보더라도 개인이 외화자산을 어느 정도 보유해놓고 있는 건 국가 차원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인가.

- 그렇다. 나는 ‘풀뿌리 외환보유’라고 표현한다. 개개인이 보유한 외화자산은 나중에 나라가 위급할 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일본의 경제가 탄탄하다고 하는 것이다. 국민이 달러나 유로, 위안화 등의 자산을 갖고 있으면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Q. 취약계층 지원도 중요한 문제다. 특히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영세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 문제가 새 정부 화두로 떠오른 모습이다. 관련해 제언을 해주신다면.

- 2년 정도 코로나 팬데믹이 지속되면서 가장 피해를 입은 게 영세 자영업자였다. 1차적으로는 경제주체 간에 손실을 분담하고 고통을 나누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임대료 문제다. 문재인 정부는 착한 임대인 운동을 했는데, 경제는 착하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임대료를 강제 재조정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있다.
 
Q. 임대료 강제 재조정이라고 하니 와닿지 않는다.

- 코로나 사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천재지변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임대차 계약을 다시 할 수 있게 해주는 거다. 기존 임대차 계약이 끝나지 않았어도 계약조건을 변경할 수 있게 해주는 거다. 계약조건이 맞지 않아 해지하고 싶을 때는 위약금이나 패널티를 묻지 않아야 한다.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풀 수 있는 문제다. 

경제정책은 누구에게나 좋은 정책일 수 없다. 누군가는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그렇게 했다면 정부의 지원금 규모도 많이 줄일 수 있었을 거라 본다. 자영업자 구조조정도 자연스럽게 가능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경제주체간에 고통을 분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 재정 지원은 그 다음에 가져가야 할 2차적 문제다.

Q. 공교롭게도 인터뷰날(10일) 새 정부가 출범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제언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아까 말씀드린 대로, 한국의 성장과 일자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직업간 보상 격차를 줄이는 거다.

국회의원, 의사, 변호사, 교수, 공무원 등 기득권층의 특혜를 줄여야만 일자리가 늘어나고, 그다음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노동자의 소득도 올라갈 수 있다. 이걸 외면하고 언저리만 건드리려고 하면 개혁이 될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이 하신 말씀 중에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이 있다.

여론 주도층인 사람들에게 칼질을 하는 건데, 그렇게 개혁을 하면 ‘사즉생’(죽고자하면 산다)이 될 것이고, 문재인 정부처럼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고 최저임금 인상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주변 문제만 떠돌다 보면 ‘생즉사’(살고자 하면 죽는다)가 될 수 있다.

물론 기득권에 대한 특혜를 줄이는 작업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대통령이 급여를 반으로 줄이는 등 솔선수범으로 나서주면 좋을 것 같다. 그러고 나면 장·차관,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공기업 사장들에게도 독려할 수 있을 것이다. 공기업 사장의 경우 연봉 3억~4억원을 받는다. 절반만 줘도 할 사람은 많다. 그것부터 시작하면 사회 분위기가 크게 바뀔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부동산 문제의 경우 유리컵이나 병아리를 만지듯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문재인 정부 막바지에 부동산 가격이 조금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공급 확대에 속도를 내서 집값이 확실하게 안정된 것을 확인한 뒤, 부동산 세제를 완화, 대출 확대 등을 추진하는 것이 답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대담= 전규열 대표이사 겸 발행인
정리= 염보라 기자

※ 이번 인터뷰는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진행했습니다.

정대영 소장 프로필
- 송현경제연구소장
-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주임교수
- 한국은행 프랑크푸르트 사무소장
- 한국은행 금융안정분석국장
-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서울대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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