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 '천일의 수도, 부산'을 말하다

[공감신문] 염보라 기자=“부산은 ‘어머니’입니다.”

부산을 한 마디로 정의해 달라는 물음에 <천일의 수도, 부산> 저자 김동현 씨(이하 저자)는 이같이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산은 한국전쟁 1,129일 중 무려 1,023일 동안 두 차례나 임시 수도로서 역할을 하며 수많은 피난민을 제 품으로 안고 눈물을 닦아줬던 도시다.

모든 자식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부산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사람도 구분없이 포용하고 지지해준 역사가 있다.

저자에게도 부산은 ‘어머니’ 그 자체다. 고등학생(명문 부산고) 시절 3년간만 부산에 머물렀으니 어찌보면 ‘찰나’의 인연일 뿐이지만, 그에게 부산은 질풍노도의 시기 혈혈단신으로 낯선 도시를 찾은 10대 학생을 포근하게 안아준 도시로 기억돼 있다.

신간 <천일의 수도, 부산>은 그에 대한 보답의 마음으로 써내려간 책이다.

24일 공감신문 사무실에서 1시간 가량 이어진 인터뷰에서 저자는 역사 속 부산의 상징성은 물론, ‘아는 사람만 안다’는 여행 명소, 부산이 다양한 1호 시도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천일의 수도, 부산' 저자 김동현 씨
'천일의 수도, 부산' 저자 김동현 씨

 

Q. 고향은 경남 하동이고, 부산에서는 고등학교 시절 3년간 유학생활을 하신 걸로 알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 <천일의 수도, 부산>을 쓰게 되신 건지 궁금하다.

-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에서 대학·직장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부산을 자주 찾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일제강점기 때 부산에 머물러 있다가 광복 후 한국을 떠난) 일본인과 다른 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면서 신세를 진 도시이고, 내 인생의 디딤돌이자 울타리였는데 말이다.

그때부터 부산에 대해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책도 보고 자료 조사도 하고, 부산 사람들의 얘기도 많이 청취했다. 연구를 하다 보니 재미있는 숨은 이야기가 많더라. 예를 들어 <태종실록>을 보면 ‘부산’의 ‘부’가 ‘富’(부자 부)로 돼 있는데, <성종실록>부터는 ‘釜’(가마솥 부)로 바뀐다. 좌천동에 있는 증산이 가마솥처럼 생겨서 그렇다는 설도 있고, 부산 초량에서 큰 솥을 걸어놓고 소금을 구웠다고 해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이런 건 부산 토박이도 잘 모른다. 이런 것들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Q. 실제로 몰랐던 내용이 책이 많이 담겨 있어 흥미로웠다.

- 평생 살아오면서 다짐하는 게 있다. 남에게 말할 때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지 말고, 글을 쓸 때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을 쓰지 말자는 거다. 그런 뜻에서 부산 토박이조차 생소한 내용을 다루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부산에) 제대로 보답할 수 있지 않겠는가.

Q. 부산이라는 도시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는 이곳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제식민지 시절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도약하기까지, 부산이라는 도시의 상정성과 아픔, 역할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신다면.

- 과거 부산은 일본의 대륙 침략을 위한 전진기지로 이용되는 아픔을 겪었다. 국가 존망의 위기였던 6·25 때에는 피난 수도로서 역할을 했다. 한국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버팀목이 돼주고 기사회생의 산실 역할을 해온 곳이 바로 부산인 것이다.

해양문화와 대륙문화가 만나는 접점에서 일찌감치 외국문물을 받아 들인 열린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은행·병원 등 우리나라 ‘1호’ 타이틀을 대거 가지고 있다.

광복 이후에는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온 시민운동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특히 1987년 ‘박종철 학생 물고문 치사사건’은 6월 항쟁의 시발점이자 현대사의 분수령이 됐다. 보통 ‘시민운동’ 하면 ‘광주’만 생각하지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부산 시민들의 노력도 상당했다. ‘미문화원 방화사건’(1982년). ‘동의대 사건’(1989년), ‘학림 사건’(1981년·부림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Q. 관련해 추천하고 여행지나 음식을 추천해 주신다면.

- 6·25 전쟁과 관련한 대표적인 여행지로는 유엔 기념공원이 있다. 일제시대를 보려면 가덕도를 추천한다. 당시의 진지가 그대로 남아있다. 음식 중에서는 밀면이 좋겠다. 밀면은 6·25 전쟁을 전후해 만들어진 음식이다. 일종의 부산식 냉면인데, 당시 메밀이 없으니 미국에서 원조 받은 밀가루로 대신 만들어 먹던 요리가 출발점이 됐다. 돼지국밥 역시 전형적인 피난 음식이다. 지금은 모두 부산시민의 소울푸드로 자리잡았다.

'천일의 수도, 부산' 저자 김동현 씨
'천일의 수도, 부산' 저자 김동현 씨

 

Q. 책을 읽다 보니 부산에 우리나라 1호 타이틀이 굉장히 많더라. 몇 가지 소개해달라.

- 아무래도 부산은 대륙문화와 해양문화가 만나는 접점에 있다 보니 외국문화가 들어오는 시발점이 됐다. 이를테면 ‘연말 바겐세일’이라는 걸 최초로 시도했다. ▲양조장(후쿠다 양조장) ▲공중목욕탕 ▲은행(일본제일은행 부산지점) ▲병원(근대식 서양 의료기관 재생의원) ▲영화제(부일영화상) ▲우체국(일본관리청에서 우편국 개설) ▲민간상업방송(부산문화방송) 등도 부산에서 처음 탄생했다.

최초로 영화를 상영한 곳도, 초창기 한국야구의 성지도 부산이었다. 송도해수욕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설 해수욕장이다. 부산역은 서울역보다 무려 15년 먼저 설립됐다. 국권을 회복하자는  ‘국채보상운동’이 가장 먼저 일어난 고도 바로 부산이다. 내가 찾은 1호 타이틀만 30가지가 넘는다. 그렇다 보니 당시 소설 배경에는 부산이 자주 등장했다. 신여성, 신학문, 신사회를 그리기에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다. 

Q.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다. 여름철 관광 코스를 추천해주신다면.

- 여름에는 역시 바다다. 부산에서는 경관이 좋은 곳에 ‘대’를 붙인다. 20개 정도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해운대·태종대·몰운대·이기대·신선대가 5대 여행지로 꼽힌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곳 중에서는 기장에 위치한 ‘아홉산숲’을 추천하고 싶다. 남평문씨들이 집성촌을 만들어 400년 동안 9대에 걸쳐 조림을 해온 곳인데, 최근 대중에 오픈했다. 5,000원 입장료를 받긴 하지만 코스가 20개 정도 있어 힐링코스로 좋다.

영도에 갔다면 ‘흰여울문화마을’을 추천한다. 본래 피난민들이 살던 곳인데, 지금은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린다. 바다를 내려다 보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Q. 시대가 변화면서 여행의 트렌드도 바뀌어 가는 모습이다. 요즘 관광지로서 부산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 요새는 ‘호캉스’(호텔+바캉스)를 많이 즐기는 듯하다. 긍정적인 점은, 부산이 호캉스하기에 제격인 도시라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곳은 ‘파라다이스호텔’이다. 해변에 붙어 있어서 뷰가 너무 좋다. 기장에 있는 ‘아난티’도 좋다. 최근 만든 호텔 중에서는 송도에 ‘메리어트호텔’이 있는데, 모든 방이 스위트룸으로 꾸며져 있다. 송도 자체가 굉장히 아름다운 지역인 데다, 23층에 올라가면 대마도도 볼 수 있다. 

Q. 부산 관광 이야기를 하면서 국제엑스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어떻게 바라보는가.

- 국가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런던·파리·뉴욕이 세계적인 도시로 올라설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게 바로 세계박람회(국제엑스포)였다. 중국도 상해에서 세계박람회를 개최한 것을 기점으로 ‘G2’ 반영에 오를 수 있었다. 부산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위상이 달라질 거다. 그건 확실하다. 단순히 수치상으로만 보면 160여개국에서 5000만명 이상이 참가해 경제적 생산유발효과 약 43조원, 부가가치 유발효과 약 18조원이 기대된다고 한다. 고용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한국이 부산 국제엑스포 유치에 성공한다면, 3대 빅 이벤트(올림픽·월드컵·엑스포)를 모두 개최해본 세계 7번째 나라가 된다. 이건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다.

'천일의 수도, 부산' 김동현(오른쪽) 저자와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일의 수도, 부산' 김동현(오른쪽) 저자와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Q. 부산의 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하다. 부산에 맞는 해결방법을 제안해 주신다면.

- 인구 유입의 가장 좋은 방법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부산에 부지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1·2차 산업은 안 된다. 개인적으로는 ‘마이스산업’(기업회의, 포상관광, 컨벤션, 이벤트, 박람전시회를 융합한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는 방향이 맞다고 본다. 국제엑스포 유치는 그 일환이다. 4차 산업에 맞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이 외에 가덕도 신공항 설립, 부·울·경 메가시티 조성을 조기 추진하는 방향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Q. 마지막으로 ’부산은 ○○○이다‘에서 빈 칸을 채워주신다면.

- 부산은 ‘어머니’다. 과거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기자들이 카터의 어머니에게 “아들이 자랑스럽겠습니다” 했더니 그 어머니가 “어느 아들 이야기냐” 하고 되물었다는 일화가 있다. 어머니에게는 모든 자식이 소중하고, 자랑스럽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부산이 그렇다. 부산은 과거 피난민들을 열린 마음으로 포용했다. 피난민들이 부산에서 핍박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부산은 텃세가 없고 모두를 포용하며 다같이 어울리는 그런 도시다.

또 의미가 있는 게, 부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바다 아닌가. ‘바다 해’(海)를 보면 ‘어미 모’(母)가 들어있다. 어머니처럼 품고 있는 것이다. 부산은 그런 도시다. 못 된 자식, 잘 된 자식 구분하지 않고 안아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대담= 전규열 대표이사 겸 발행인
정리·사진= 염보라 기자

김동현 저자 프로필

- 1970년대 중반 동아일보 기자로서 유신 군부독재와 화합하지 못하고 해직된 뒤 30여 년 간 기업과 광고업계에 종사하며, 틈틈이 대학에서 광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기도 했다. 한국광고단체연합회 상근부회장을 역임했으며,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철탑산업훈장’, ‘민주화운동 유공자’, ‘중앙언론문화상’, ‘보이스카웃 훈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칼럼집 <21세기 신 유목시대를 가다>와 <광고로 창의교육하기> 등 다수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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