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 자금 풍부해야 나쁜 돈 유혹 벗어날 수 있어...실리콘밸리식 접근 필요” 

[공감신문] 염보라 기자=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는 말이 있다.

헨리 매클라우드라는 영국 경제학자가 1858년 자기 책에서 토머스 그레셤의 말로 소개했기에, ‘그레셤의 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여기에서 ‘화’는 화폐(돈)를 가리킨다. ‘악화’는 나쁜 돈, ‘양화’는 질 좋은 돈이다. 구축은 몰아내 쫒아낸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즉, 나쁜 돈이 질 좋은 돈을 몰아낸다는 것으로, 뒤집으면 좋은 돈이 많으면 나쁜 돈을 몰아낼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박희덕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이 법칙이 스타트업 업계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양질의 돈이 많이 돌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양화가 악화를 몰아내는 실리콘밸리 환경과 달리, 우리나라는 벤처캐피탈(VC) 시장 자금이 부족해 스타트업들이 나쁜 돈을 투자 받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면서 “시리즈 A·B단계에서 좋은 투자처를 만나는 것이 (창업) 성공의 핵심인 만큼, 악화가 양화로 인해 튕겨나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박희덕 대표는 KTB네트워크,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옛 CJ창투) 등에서 활약한 1세대 벤처캐피탈리스트다. 2016년 미국 벤처캐피탈(VC)인 트랜스링크캐미탈과 손잡고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는 ‘마켓컬리’ 초기 투자자로 유명세를 떨쳤다.

박 대표는 1세대 벤처캐피탈리스트로서 건강한 스타트업·VC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국회 등을 찾아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음은 22일 공감신문과 진행한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박희덕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대표
박희덕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대표

Q. 최근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와 금리인상 등 거시 환경 불안으로 주식투자시장이 좋지 않다. 벤처캐피탈 업계 분위기는 어떤가?

- 아무래도 (주식시장 등) 여의도식 금융이 흔들리면 VC 시장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다만 실리콘밸리적인 시각에서 보면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다. VC는 어차피 10년을 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기업의 벨류에이션(가치)이 내려간다는 건 그만큼 투자 기회가 많아진다는 의미일 수 있다.

Q. 현 상황에서 스타트업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 무조건 자본을 확보해야 한다. 그 다음은 비용을 줄여야 한다. 보통 미국은 1년~1년 반 정도의 준비자금을 가지고 시작한다. 그런데 지금은 3년 정도 유지할 수 있을 정도 자금을 만들어놔야 한다고 본다. 3년이면 현재의 불확실성이 회복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다. 투자를 받기 위해 벨류에이션을 낮출 필요는 없다. 실리콘밸리는 1000억원이 500억원으로 낮아지면 투자가 이뤄지지만, 한국은 진폭이 큰 시장이라 100억원으로 낮춰도 잘 안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Q. 대한상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3년차 스타트업 생존율은 약 41%, 5년차 생존율은 29.2%로 집계됐다. 대다수 스타트업이 데스밸리 극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미일텐데, 무엇이 문제라고 보는가?

- 반대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모든 스타트업이 성공해야 할까? 시리즈 A·B단계를 거치면서 기업이 걸러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보통 시리즈 A단계는 ‘코어’가 만들어지는 시기다. 그 다음 B단계는 만든 코어를 시장과 다양한 타깃에 맞춰보는 과정이다. 그 다음이 C단계다. 코어의 시장성을 확인했기에 돈을 넣으면 무조건 성공한다. 이때 엄청난 자본이 들어간다. 죽더라도 건질 게 있어서다. 반대로 A·B단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회사는 끌고갈 수 없다.

한국에는 (스타트업) 양적팽창을 위한 여러 제도가 있는데, 각 (투자) 단계별로 갖춰야 할 자격요건을 신경쓰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니 생존율만 신경쓰는 거다. 이런 식이면 마치 어른 아이처럼 덩치는 커졌는데 실질적인 힘은 없는 스타트업이 넘쳐나게 된다.

Q. 정책적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 우리나라는 스타트업 정책을 중소기업 정책과 함께 가져간다. 그런데 중소기업 정책이 일종의 융단폭격이라면 스타트업 정책은 정밀타격을 하는 토마호크 미사일이 필요하다. 성장 가능성 있는 기업을 선별해 쭉 성장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융단폭격, 즉 뿌리는 정책과 보호정책을 열심히 펼쳤지만 회사를 타깃해서 성장시키는 정책은 부족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재도전 펀드를 설계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실 필요 없다. 시리즈 C·D 단계로 못 간 원인이 있는 거다. (창업)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는 건 코어를 만든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지, 재무적 실패를 회복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전형적인 여의도식 사고방식이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맞는 접근이 필요하다.
 

박희덕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대표
박희덕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대표

 

Q. 업계에 따르면 올해 말 183개 벤처펀드가 만기 도래한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10~20년 만기 벤처펀드 도입의 필요성을 이야기 하는데.

- 실리콘밸리는 기본적으로 10년이다. 실리콘밸리 수준에 맞춰 (펀드 만기를) 늘릴 필요는 있다고 본다. 더 넘어가면 세컨더리시장(2차 시장)을 활성화 해 풀어야 한다. 세컨더리시장은 VC가 투자했던 것들을 파는 시장, 그러니까 지분을 파는 시장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제 조금씩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Q. 세컨더리시장은 정부 주도로 만들어야 할까?

- 평가의 문제가 있어서 쉽지 않을 것 같다. 정부는 평가의 객관성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세컨더리시장은 여의도식 금융과 VC의 중간 역할을 해야 한다. 이곳에서는 A·B·C단계를 거치면서 생존 가능성을 인정받은 스타트업만 유통될 거다. 다만 생존이라는 개념이 재무제표로 평가하는 여의도식 시각으로 보기에 애매하고, VC의 시각으로 봐도 애매하다. 중간의 시각으로 보는 시장이 존재하는 거다. 미국은 이 시장이 엄청 크다.

Q. 최근 국회 세미나에서 “국내 LP들은 글로벌 기준과 거리가 있다. ‘좋은 투자처인 것은 알겠는데 내부 승인이 안 난다’와 같은 ‘그들만의 논리’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의미인가.

- 스타트업이 잘 되려면 VC가 잘해야 하고, VC가 잘 하려면 LP가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리스크 할당 비용이나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등 제도상의 걸림돌이 있다. 더 큰 문제는 인력이다. LP 최고투자책임자(CIO) 대부분이 여의도에서 주식·채권·부동산을 운용한 분들이다. 그렇다 보니 LP의 자산운용 배분을 보면 90%이상이 주식·채권·부동산이다. VC는 대체투자 파트에 해당하는데, 이쪽 전문가가 없다. 예를 들어 부동산 하던 사람이 대체파트를 책임진다. 잘 모르니까 과거 데이터만 보고 VC를 평가한다. 과거에 잘했던 VC의 인재는 이미 다른 VC로 넘어갔는데 말이다.

Q. 많은 전문가들이 LP들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회수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당연하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거래소를 활성화하는 것과 해외로 나가는 것,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본다. 일단 우리나라 거래소를 성장시키려면 좋은 기업이 많이 들어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 나스닥처럼 상장의 책임을 주관사가 가져가게 해야 한다. (미국 나스닥은) 5만원에 상장했는데 4만원으로 떨어지면 주관사가 책임을 진다. 실패할 것 같으면 애초에 5만원에 안내보낸다. 기업 가치를 열심히 들여다 보는거다.

반면 우리나라는 거래소가 감 놔라 배 놔라 하니 주관사의 선택권이 없다. 거래소가 지시하는 것만 해결하면 상장에 성공하고 수수료를 받을 수 있으니 회사의 가치를 제대로 들여다 볼 필요가 없다. 이런 관계가 바뀌지 않으면 거래소 활성화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박희덕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대표
박희덕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대표

 

Q. 건강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지원하는 글로벌 국가 순위를 의미하는 드레이퍼 혁신지수에 의하면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은 24위에 그쳤다. 순위 제고를 위해 필요한 정책이나 지원이 있다면 제언을 부탁드린다.

- 사실 국가 경쟁력 순위나 이런 것을 보면 8-12위정도는 나와야 정상이다. 미안하지만 VC나 LP가 글로벌 기준에 못 미친다는 의미다. 요즘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했던 친구들이 국내 시장이 많이 진입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에 맞춰 VC에도 글로벌 시각을 가진 사람이 들어오고, LP들도 글로벌 투자금융시장에서 활동한 사람들이 양성되는 선순환사이클이 만들어져야 한다. 

Q. 결국 인력이 핵심이라는 것인가?

- 그렇다. 지금 공제회나 연기금 등을 보면 대부분 10~15명 정도가 조 단위 자금을 운용한다. 어떤 곳은 순환보직 공무원이 10조원이 넘는 돈을 굴린다. 금융은 사람이 핵심이다.  글로벌 수준에서 훈련 받은, 건강한 사고방식을 가진 인재가 뛰어들게 해야 한다. 물론 VC 시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게 불과 10~15년이라 제대로된 운용 인력이 없을 수밖에 없다. 다만 우리는 자본과 기술이 있으니까 5~10년 안에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본다. 싱가포르 테마섹은 국민연금보다 적은 금액을 굴리지만 세계 시장에서 훨씬 큰 영향력을 미친다. 글로벌 시장에서 인재들을 데려왔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Q.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규제가 많아서 기업이 혁신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대표님이 생각하시기에 개선이 시급한 규제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 스타트업 생태계만 바라보면 규제는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규제에 묶여 성장하지 못할 기업은 죽는다. 1조원 이상 수익을 내는 기업으로 성장해 제도권에 편입되면 당연히 그에 맞는 규제를 받아야 한다. 공정거래법이나 노동법을 안 지키고 기업을 운영할 수는 없다. 그건 악덕기업이다. 벤처기업이라는 이유로 혜택을 받다가 대기업 범주에 들어와 규제를 문제 삼으면 그런 마인드를 가진 창업자가 문제라고 보는 게 맞다. 다만 금융적인 면에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특히 투자금융 부문에서 규제를 글로벌 수준에 맞출 필요가 있다. 

Q. 타다 이슈는 어떻게 보는가.

- 새 기술을 통해 그 시대에 맞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실리콘밸리식 사고방식이다. 타다 이슈의 중심에는 공급자(택시기사·법인)와 소비자가 있다. 소비자들이 택시를 타는 것에 대해 불안과 불편을 호소했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게 ‘타다’ 같은 모델이었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 국회, 언론 등이) 타다를 플랫폼의 독점 문제로 보고 원천적으로 막아버렸다. 사실 어느 정도 문화가 바뀔 때까지 여러 회사가 등장하게 만들어줬어야 했다고 본다. 이후 독점이 되면 그때 정치적으로 입법화 해서 규제하거나 수수료를 조정하면 될 일이다.

물론 타다도 문제가 있었다. 플랫폼을 설계할 때 핵심은 상호적인 개념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공급자와 소비자 양쪽에 모두 이익이 돼야 한다. 그게 플랫폼 기업과 독점기업의 차이다.  돈으로 밀어부칠 게 아니라 기술을 가지고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마음을 보여주고 공급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박희덕(오른쪽)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대표와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박희덕(오른쪽)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대표와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Q. 중요한 지적이다.

- 창업가의 마인드가 굉장히 중요하다. 실리콘밸리에서 창업가로 성공한 사람들은 사회를 바꾸는 데 보람을 느낀다. 반면 우리나라는 규모의 경제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여전히 재벌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벤처기업은 사회 시스템을 통해 돈을 번다. 거기에 대해 ‘페이 포워딩’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실리콘밸리의 핵심인데, 우리나라는 그런 점에서 부족하다. 언제든 후발주자가 나올 수 있다는 걸 명심하고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한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

-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현재 실리콘밸리는 양화가 악화를 밀어내는 현상이 자리해 있다. 전세계에서 돈이 모이니 나쁜 돈이 튕겨 나가는 거다. 우리나라는 아직 거기까지 못 갔다. (시장에) 돈이 부족하다 보니 가치를 높게 쳐주면 좋아한다. 돈이 썩는 역할을 한다는 걸 잘 모른다. 돈이 적으니까 사기꾼한테 줄을 선다. 보통 A·B단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 이 시기에는 좋은 투자처를 만나는 것이 (창업) 성공의 핵심인 만큼, 악화가 양화로 인해 튕겨나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나아가 글로벌 스탠다드, 실리콘밸리 수준을 정착해야 한다. 기업이 커져서 해외로 나가려면 결국 제도가 비슷해야 한다. 기업이 자연스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야지, 우리나라 시장에서만 놀면 성장 속도도 느리고 성장하더라도 대기업병을 못 벗어나는 한계가 남는다.

마지막으로, 투자금융 사이클에서 한쪽 파트가 무너지면 반대로 이익이 되는 파트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반대 방향을 향하지만 둘이 합쳐 1이 되는 ‘사인·코사인’ 곡선처럼 말이다. 그래야 나라 전체적으로 상보적인 효과가 발생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여의도식 금융만 존재한다. 한쪽 파트만 발달해 있다 보니 진폭이 크다. 여의도식 금융이 흔들리면 VC도 같이 흔들린다. 이 부분에 대한 정책 입안자들의 관심과 고민이 필요하다.

대담= 전규열 대표이사  겸 발행인
정리·사진= 염보라 기자

박희덕 대표 프로필

-현)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대표
-주요경력: KTB네트워크·KT·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
-한양대 전자공학과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