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염보라 기자=증시가 얼어붙고 벤처캐피탈(VC) 시장이 주춤하는 상황에서도 창업 열기로 뜨거운 곳이 있다. 바로 대학가다.

대학에서 학생 창업가들을 마주하고 있는 오정석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특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성장의 자산으로 삼는 ‘요즘 학생’들의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요즘 학생들은 한 가지 아이템을 성공시키기 위해 목을 매는 게 아니라, 3~4개 (창업) 프로젝트에 동시에 참여합니다. 이 중 하나라도 성공하면 좋은 거고, 실패하더라도 경험과 네트워크를 한 번에 흡수할 수 있는 기회로 삼더라고요.” 오 교수의 설명이다.

물론 실패확률을 줄이는 스마트함은 필요하다. 오 교수가 제안하는 방법은 간접경험을 많이 쌓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도 강조했다. 투자자금을 초기 개발 리소스에 올인(All-in)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창업은 스마트하게 해야 합니다. 여기서 스마트하게 한다는 건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다음 피 끓는 열정으로 부딪히는 거죠.”

다음은 오 교수와의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오정석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
오정석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

 

Q. 글로벌 경기침체, 공급망 붕괴 등으로 경영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대학 내 창업 열기는 어떤가.

-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는 확실히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 여파가 대학 스타트업까지 오지는 않은 것 같다. 학생들이 창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의지하는 자금이 나라가 지원하는 공적자금인데, 일단 그 규모가 줄지 않았다. 나중에 시장이 아주 급격히 위축되거나 정책 변화로 인해 지원 자금이 줄어든다면 모르겠지만, 아직은 (창업) 열기가 줄었다고 볼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Q. 창업 후 실패하는 사례도 많지 않나. 실패를 받아들이는 학생들의 태도는 어떤가.

- 최근 2~3년 사이에 굉장히 좋아졌다. 요즘 학생들은 인맥이 중요하다는 걸 너무 잘 안다. 네트워크를 만들고 내공 있는 사람에게 배우려는 자세가 돼 있다 보니, 창업 실패 사례가 레퍼런스로 쌓이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기업도 창업 경력을 긍정적으로 본다. 창업을 해서 어느 단계까지 가봤다는 게 취업 과정에서 굉장한 플러스(+) 요인이 된다. 그렇다 보니 한 가지 아이템을 성공시키기 위해 목을 매는 게 아니라, 3~4개 (창업) 프로젝트에 동시에 참여한다. 이 중 하나라도 성공하면 좋은 거고, 실패하더라도 경험과 네트워크를 한 번에 흡수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거다. 그런 걸 보면 요새 학생들이 참 똑똑하다는 생각이 든다.

Q. 창업에 성공한 선배들의 사례가 대학 내 창업 열기를 뜨겁게 만든 것일까. 

- 그게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서울대 학생들, 특히 경영대 학생들은 전통적으로 리스크를 싫어한다. 그래서 고시를 준비하거나 금융계통 공기업으로 가는 경우가 다수였다. 벤처 붐이 일어난 건 체감상 3~4년 정도에 불과하다. 20년 전 서울대 출신이 아니라, 몇 년 전에 창업한 선배가 스타트업 시장에서 시리즈 A·B단계 펀딩에 성공하는 사례를 눈으로 보니 (열정의) 피가 끓는 것이다.

Q. 미국에서 대학생활을 하셨다. 그곳의 분위기는 어떤가.

- 미국 보스턴 지역이나 실리콘밸리는 1960년대부터 학교 학생들이 창업을 하고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만드는 사례들이 존재했다. (제가) 스탠포드대학에 있을 때에는 창업으로 대박을 친 사람들이 빌딩을 세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우리 학생들이 현재 느끼는 피 끓는 경험을 수십 년 전부터 느껴온 셈이다.

Q. 벤처 창업을 계획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조언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 되도록 간접경험을 많이 하라는 것이다. 앞서 창업을 해본 분이나 업계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볼 수도 있고, 창업진흥센터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학교에서 하는 창업교육을 적극적으로 찾아 듣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간접경험을 많이하는 것과 실제 부딪히는 것, 이 두 가지 경험이 조합될 때 좋은 창업 습관을 익히고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이는 학생뿐 아니라 창업을 준비하는 일반인, 교수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오정석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
오정석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

 

Q. 벤처 창업을 준비 중이거나, 이미 시작한 학생들이 입을 모아 호소하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 개발 리소스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와 아이템으로 예비 패키지를 통과하면 5000만원 정도를 받는다. 이후 모바일 앱을 개발하고 시장 테스트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많은 친구들이 시장 테스트 전 앱 개발 단계에서 그 비용을 다 쓴다. 시장 반응을 보면서 앱을 수정해 나가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두 손 두 발 다 든다. 그때부터 멤버들 간에 갈등이 생기고, 팀이 공중분해 되는 경우도 상당하다.

그래서 창업교육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최소한의 리소스를 쓰면서 시장 반응을 보라는 것이다. 최고 전문가에게 (개발을) 맡겨 처음부터 완성도 높은 서비스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렇게 (기회를) 날려버리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잘 하는 팀들을 보면 전공과 관련없이 팀원들이 직접 코딩을 한다. 아니면 아는 공대 친구에게 소정의 비용만 지불하고 부탁할 수도 있다. 처음에 중요한 건 서비스의 완벽함이 아니다. 만들고자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이 혹할 만한 것인지 반응을 보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처음에는 그 정도만 서비스를 구현하면 된다.

Q. 벤처 창업 측면에서 융합교육이 중요할 것 같은데, 어떤가.

- 지도학생 중 로보어드바이저(비대면 자산관리) 솔루션을 개발한 친구가 있다. 2학년 때 경영 수업에서 파이낸스 최신 논문을 활용해 계량모델을 만들고, 이후 전산과 복수전공을 선택해 금융 빅데이터를 끌어다 붙이는 작업을 했다. 나중에 잘 나가는 스타트업이 관련 부서를 만들어 이 친구를 팀장으로 스카우트 해갔다. 현재 금융 스타트업 쪽에서 굉장히 주목받는 인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친구를 보면 융합교육은 너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모든 커리큐럼을 융합교육화(化)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본다. 서울대의 경우 자유전공학부를 운영 중이고, 복수전공과 부전공도 굉장히 활성화 돼 있다. 이런 식으로 옵션을 만들어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Q. 과거 ‘혁신에 매진하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장려되고 유입돼야 한다’고 쓰신 시론을 봤다. 그 뒤로 10년 정도가 지났는데, 혁신 측면에서 현재 상황을 평가해주신다면.

- 엄청난 발전이 있었다고 본다. 지금 대기업이 민첩하게 움직이고 고객을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는 스타트업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불특정 다수의 스타트업이 생기면서 대기업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선점해 들어갔고, 메기 효과를 일으켰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재계 순위가 많이 바뀌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기업이 많이 올라섰다. 그러니 (기존 기업은)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뿐 아니라 기존 기업들도 혁신을 고민해야 하는 환경이 자연스레 만들어진 것이다.

Q. 혁신에 매진하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기 위해서는 실패를 사회의 자산으로 보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 당연히 필요하다. 다만 옥석은 분명하게 가려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옥석을 가릴만한 선구안이나 시스템이 충분치 않다. 개인적으로는 VC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제대로된 컨센서스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부분에 대해 성의 있게 관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역작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업계 자정 노력, 정부의 관리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오정석(오른쪽)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오정석(오른쪽)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Q. 요즘 기업가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우리나라 창업 기업이 꼭 갖춰야 할 기업가 정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역지사지의 자세다. 창업은 기본적으로 고객이 중요하다. 고객에게 가치를 만들어줬는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럼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확률이 훨씬 높아지게 된다. 

펀딩하는 사람과 소통할 때도 역지사지 자세가 필요하다. '이건 좋은 기술입니다. 사회에 이바지할 기술입니다' 하는 것은 본인의 생각이다. 펀딩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회수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최소한 그 사람의 입장이 돼야 설득전략을 세울 수 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 창업은 스마트하게 해야 한다. 여기서 스마트하게 한다는 건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간접경험을 많이 하고, 먼저 창업을 해본 사람들 혹은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들으면서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피 끓는 열정으로 부딪혀 보는 거다. 

대담= 전규열 대표이사 겸 발행인
정리·사진= 염보라 기자

오정석 교수 프로필

- 현)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
- 현) LG디스플레이 사외이사
-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조교수
- 현대제철 사외이사
-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경영과학 석사·박사
- 미국 MIT 경영과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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