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과거 식민지 통치·왕조의 공간
...용산 이전, 합당한 결정”
“광화문, 정치적 상징성 탈각… 사색·사유 공간으로 재탄생”
“용산, 잠재적 가치 충분, 세계적인 브랜드 도약 기대”

[공감신문] 염보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74년 청와대 시대를 마감하고 ‘용산 시대’를 새로이 열었다. 그렇게 청와대는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27일 공감신문과 만난 진희선 연세대 도시공학과 특임교수(전 서울시 행정2부시장)는 “합당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일단, 청와대는 과거 조선총독부 관저가 있었던 식민지 통치 공간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경복궁의 후원이었다. 민주주의 시대에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이 직무를 보는 공간으로서는 아이러니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서울 면적이 확대되면서 중심 지역이 광화문 일대에서 용산으로 이동한 점도 용산 시대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근거다. 

진 교수는 그의 세 번째 역저인 『권력이 탐한 공간』에서 청와대→용산 시대로의 흐름을 ‘권력’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그리고 용산은 이제 권력이 탐한 공간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공간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시민에게 돌아온 청와대를 둘러싼 광화문 일대는 사유와 사색, 휴식의 공간으로 탈바꿈될 것이라고 했다.

진 교수는 연세대 건축공학과 졸업 후 1987년 기술고시(건축직)에 합격, 서울시에서 32년간 근무했다. 뉴타운사업과 재건축·재개발을 통한 주택공급, 세계도시로 성장하는 도시계획과 관리, 그리고 사람중심의 시대를 맞이해 도시재생에 이르기까지, 도시·건축·주택을 아우르는 정책 수립과 실행의 현장 중심에 있었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진희선 연세대 도시공학과 특임교수
진희선 연세대 도시공학과 특임교수

 

Q. 신간 『권력이 탐한 공간』을 펴낸 특별한 이유는.

- 서울시에 있을 때 광화문광장 사업을 오랫동안 주도했다. 많은 애착을 느꼈던 사업이기에 관련 책을 한 번 집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광화문(光化門)은 임금의 교지가 경복궁을 출발해 광화문을 통과하는 순간 세상에 밝은 빛이 되어 만백성을 편안케 하라는 의미를 가진다. 굉장히 민본주의(民本主義·백성을 근본으로 하는 정치사상)의 정신이 담긴 공간인 것이다. 

독립협회 등이 나서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한 곳도, 해방 이후 이승만 독재에 대항해 4·19혁명이 일어난 곳도, 이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곳도,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6월 시민항쟁으로 6·29 대통령 직선제를 끌어낸 곳도 바로 이 광화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든 응원의 진원지도 이곳이었다.

광화문광장이 새롭게 개장하는 일정에 맞춰서 책을 내려고 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에 대통령 집무실을 마련하면서 용산에 대한 내용까지 추가로 담게 됐다.

Q. 서울의 핵심공간을 ‘권력의 욕망’이라는 속성으로 풀어낸 점이 흥미로웠다. 

- 역사적으로 보면 고려는 한반도 남쪽 지방의 통치기반을 확고히 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남경’(현재의 서울 강북지역) 설치를 추진했다. 1056년 문종 때 남경을 설치해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궁궐을 짓고 주변의 백성들을 남경으로 이주시켰다. 몇 명이 왔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당시 도시조직을 추적해 보면 당시 수도였던 ‘개경’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고 하니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남경의 도시 기반 위에 한양 도읍지를 건설하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이 식민지 통치를 위한 공간으로 만든다. 독립 후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면서는 굉장히 권위적인 공간으로 변화한다. 그 과정을 보면서 ‘권력이 탐한 공간’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됐다.

Q. 말씀 주신 것처럼 광화문 일대는 천년의 세월 동안 권력이 탐한 공간이었다. 왜 하필 광화문이었을까.

- 풍수지리 전문가는 아니지만, 역사적 사료를 토대로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보면 한반도의 정기가 만나는 ‘명당 중의 명당’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도를 보면 유라시아 대륙의 ‘양의 기운’은 한반도가 시작되는 백두산을 정점으로 모여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다 금강산에서 우측으로 꺾이고, 한북정맥을 타고 와서는 북한산에 떨어진다. 반대로 태평양의 ‘음의 기운’은 제주 한라산에 모여 내륙으로 들어와 지리산을 딛고 백두대간을 거슬러 올라가 속리산, 관악산으로 이어진다.

북한산에 모인 양의 기운과 관악산에 모인 음의 기운은 북안산 아래 광화문에서 합쳐지는데,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해보면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 속 많은 권력이 이곳을 탐낸 게 아니었을까.
 

진 교수의 세 번째 역저 『권력이 탐한 공간』 표지
진 교수의 세 번째 역저 『권력이 탐한 공간』 표지

 

Q. 윤석열 대통령이 74년 청와대 시대를 마감하고 ‘용산 시대’를 새로이 열었다. 도시공학 전문가로서 평가를 해주신다면.

- 나름대로 합당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1966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을 보면 행정부를 용산으로 옮겨야 한다는 내용이 이미 담겨있다. 서울시청도 용산으로 옮기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었다. 지난 100년간 서울의 면적은 38배, 인구는 100배 늘었다. 그러면서 서울의 중심은 용산으로 옮겨졌다. 미군 때문에 중심성이 광화문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을 뿐이다. 다만 너무 성급하게 갔기 때문에 차후에 준비해야 할 일도 꽤 있을 것 같기는 하다.

Q.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 대통령 집무실은 한 나라의 국격을 나타낸다. 품격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전반적인 배치 계획과 건물 리모델링 계획을 세우고,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개인적으로는 영빈관 논란도 너무 아쉬웠다. 영빈관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외빈을 만나는 공간이다. ‘예산 낭비’ 논란으로 비하될 문제가 아니다.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민의 공간으로 돌아온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를 어떤 공간으로 꾸미는 것이 좋을지 시민들에게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하는 등 다양한 공론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Q. 용산 시대 개막이 도시구조 측면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보시는지?

- 미군기지가 빠져나가면 용산의 잠재적 가치들이 마음껏 발휘될 것이라 본다. 지금 강남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됐다. 하지만 용산은 잘 모른다. 대한민국 국민일지라도 서울에 사는 분이 아니라면 집값 비싼 곳, 기차 타는 곳, 미군기지가 있는 곳 정도로만 용산을 떠올릴 뿐이다.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용산을 제대로 가꾸고 나면 이곳은 강남을 잇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도약하게 될 것이다. 권력이 탐한 공간에서, 충분히 세계가 부러워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BTS 소속사인 ‘하이브’는 벌써 사옥을 용산으로 옮겼다.

Q.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동한 단 하나의 이유가 큰 변화를 만들어낸 셈인데.

- 그래서 책에서는 ‘나비효과’를 언급했다. 용산 시대 개막으로 광화문 일대는 집회와 시위로 시끄러웠던 공간에서 사색과 사유, 휴식의 공간으로 탈바꿈되고, 용산은 미래 서울의 중심으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Q. 용산 시대 개막으로 광화문 일대는 사색과 사유, 휴식의 공간이 될 거라고 하셨는데, 조금 더 설명해달라.

- 청와대가 개방됨에 따라 광화문광장부터 경복궁을 거쳐 백악마루(북악산 정상)까지 도보로 걸을 수 있게 됐다. 현대적인 비즈니스 몰이 있는 광화문, 천년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경복궁을 지나 북악산의 아름다운 자연의 공간까지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이런 코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좌우로는 북촌과 서촌이라는 전통마을이 있고, 곳곳에 맛집과 게스트하우스가 분포돼 있다. 사색, 사유, 휴식의 공간으로서 충분히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생각이다. 

특히 백악마루에서는 경복궁과 광화문, 청와대를 내려다볼 수 있다. 지금까지 올려다봐야 했던 공간을 이제는 내려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곳에 오면 ‘내가 이 나라의 주인이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될 것이다.
 

진희선(왼쪽) 교수와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27일 인터뷰를 갖고 있다.
진희선(왼쪽) 교수와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27일 인터뷰를 갖고 있다.

 

Q.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청와대 시대에서 광화문은 정치집회의 성지였다. 용산 시대에서 광화문의 역할을 하게 될 곳은 어디일까?

- 이제 집회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한다. 지난 100년 동안 광화문이라는 공간은 대단했다. 만민공동회로 시작해서 촛불 시위로 대통령 탄핵까지 이끌어낸 공간이다. 하지만 그 이후 열리는 집회·시위들을 보면 국민적 호응을 거의 못 얻고 있다. 민주노총, 태극기부대 모두 마찬가지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광화문광장을 재개장하면서 집회·시위를 제한하겠다고 했는데, 옳은 결정이었다고 본다.

Q. 윤석열 대통령 전에도 많은 대통령이 청와대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왜 그런걸까?

- 청와대는 과거 조선총독부 관저가 있었던 식민지 통치 공간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경복궁의 후원이었다. 왕조 공간, 식민지 통치 공간이 민주화 시대 대통령 관저로 쓰였다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 않나. 그런 문제의식들이 있었던 거다.

Q. 용산 대통령실이 또다시 불통과 권력의 상징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제언하고 싶은 말씀은?

- 재단장을 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한 공간이 국방부 청사다. 그렇다 보니 국가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엄격한 위계질서의 느낌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런 곳에 민주공화국가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들어가 있다는 건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다.

민주주의 시대에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이 직무를 보는 공간이라는 이미지에 맞게 반드시 건물 내부와 외부를 새롭게 리모델링하고, 용산공원과 어우러져 대통령 집무실 전반에 대한 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또 그 과정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충분히 얻어가면 좋겠다.

Q. 퇴임 이후 벌써 3권의 책을 내셨다. 앞으로의 계획은.

- 1987년도에 고시 합격을 하고, 1988년부터 2020년까지 서울시에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세계 도시로 성장하기까지의 30년 역사를 책으로 써보면 어떨까 고민하고 있다.

대담= 전규열 대표이사  겸 발행인
정리·사진= 염보라 기자

진희선 교수 프로필

-연세대 건축과 학사
-아이오와주립대 대학원 도시계획 석사
-연세대 대학원 도시공학과 박사
-서울시 행정2부시장
-現 연세대 도시공학과 특임교수
-홍조근정훈장 수상
-<대한민국 부동산 트렌드> <블랙홀강남 아파트나라> <권력이 탐한 공간>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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