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 1%p 상승 시 기금 고갈 시기 8년 늦출 수 있어”

[공감신문] 염보라 기자=“보험료율 인상과 같은 모수개혁도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기금 운용 개혁이 시급합니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9일 공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주문했다.

기금 운용 수익률을 1%포인트(p)만 높여도 기금 고갈 시기를 8년가량 늦출 수 있다는 게 전 이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2%p 상승 시 16년이 아니라, 그 이상의 연장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연구원 등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국민연금의 연평균 운용 수익률은 4.99%다. 운용 자산 규모가 비슷한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9.58%)의 절반 수준이다. 보수적인 운용으로 유명한 일본 공적자금(5.30%)보다도 낮다.

전 이사장은 “(보험료율 인상 등) 모수개혁에는 상당한 저항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개혁에 성공한다고 해도 점진적인 조정이기 때문에 효과는 크지 않다”라며 “궁극적으로는 수익률을 높이려는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익률을 높이는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수익률을 높이려는 노력은 안 하면서 국민에게 보험료를 더 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는 직무유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 이사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고, 미시간주립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한 뒤 세계은행에서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국제금융 전문가다. 외환 위기 직후인 1998년 경제부총리 특보로 기용되면서 한국으로 터를 옮겼으며, 이후 국제금융대사, 초대 금융위원장 등을 지냈다. 

특히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내며 기금운용의 꽃을 피웠다. 대체투자 비중을 늘리고 투자 대상을 국내외 자산으로 확대하는 등 선제적이면서도 공격적인 기금운용을 통해 2010·2011년 2년 연속 두자릿수 수익률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임기 4년간 만든 기금 운용 수익은 89조원으로,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순이익(대략 67조원)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전 이사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연금개혁 방향, 운용 수익률 제고를 위한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인터뷰 내용은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Q. 경기둔화와 경기침체를 놓고 전문가 간 의견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올해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 상당히 어렵다고 보지만, 변수가 많은 상황이다. 세계적인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노벨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더이상의 금리인상은 안 된다. 오히려 빨리 낮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을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아주 심각한 침체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또다른 쪽에서는 “금리를 더 올려서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상승)을 빠리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흔히 “경기 예측은 어렵다. 특히 미래에 관해 그렇다”고 이야기 한다. 그만큼 변수가 많다는 의미다. 그런데 현재 (변수의) 스펙트럼이 제가 과거에 경험한 것에 비해 훨씬 넓다. 작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경제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을 예고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보스포럼에서 “우려했던 것보다 괜찮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가장 큰 배경은 중국의 리오프닝(경제 재개)이었다. 소비, 투자, 생산이 살아나면서 중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란 진단이었다. 게다가 12월 통계를 보니 유럽의 경제상황이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았다. 겨울철 가스 가격이 폭등해 엄청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온난화 덕에 그 부담이 확 줄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장률 하향 조정) 변수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중국 리오프닝은 호재이면서 악재일 수 있다. 집단면역을 기대하지만 새로운 변이가 확산돼 경제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미국-중국 등 지정학적 문제도 여전히 활화산 같다. 

한국만 하더라도 컨센서스는 1%대 중반이지만, 노무라는 마이너스(-) 성장을 이야기 한다. 하반기에 경기가 반등하는 ‘상저하고’를 기대하지만, 안개가 상당히 짙다.

Q. 중국 리오프닝이 인플레이션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맞다. 어떻게 보면 양날의 검이다. 중국발(發) 인플레이션 재확산이 현실화하면 악순환의 고리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더 올려야 한다. 그래서 JP모건 제이미 다이먼 회장 같은 인물은 (미국 연방준비제도 정책금리를) 6% 이상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아주 얇은 얼음판을 걸어가는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

Q. 2021년 말 공감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차기 정권(현 윤석열 정부)에 제언하고 싶은 내용으로 ‘부채 감축과 기업 역동성 회복을 통한 경제 체질개선’을 언급하셨다.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현 정부의 추진 방향에 대한 의견은?

- 튼튼한 국가재정은 한국과 같은 비(非)기축통화국 입장에서 최후의 보류다. 과거 IMF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과감한 재정 집행 덕분이었다. 그 실탄은 모두 국가재정에서 나온 거다. 그런데 지난 정부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급속도로 늘었다. 빠른 재정 악화 속도에 경고음도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가 재정 건전성 회복이라는 아젠다를 선택한 것은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재정 건전성 회복은 단칼에 이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또 경기가 악화된 상황에서는 취약계층이나 한계기업에 대한 일정 부분 재정 투입이 필요하기 때문에 성과에 대한 평가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 민간 경제 활성화를 통해 우리나라의 잠재 성장률을 높이겠다는 것이 현 정부가 추구하는 방향인데, 이는 제가 평소 생각했던 맥락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개혁, 규제개혁이 필요하다. 지난번 물류연대 파업 때 정부가 법과 원칙으로 대응했는데, 노동개혁 성공의 실마리를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Q. 당시 연금개혁의 중요성도 강조하셨다. 연금개혁이 왜 필요한가.

- 이대로 가면 우리 미래세대가 세금 폭탄을 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가 굉장히 빠르면서 출산율은 꼴찌다. (보험료를) 낼 사람은 줄어들고 있는데, 받아야 할 사람은 많을 뿐 아니라 오래 받아야 하는 구조가 되고 있는 거다. 특히 보험료율 현실화가 굉장히 시급한 과제다. 우리나라의 보험료율은 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8%)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Q. 국민연금은 5차 장기 재정추계 결과 연금 기금 소진 시점이 2055년으로 예측됐다고 발표했다. 이 시기 국민연금 수령자격이 생기는 1990년생부터는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인가?

-못 받는 게 아니라, 엄청난 세금을 내야 하는 구조다. 연금제도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기금을 쌓아서 연금으로 돌려주는 ‘적립식 연금제도’다. 또다른 하나는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세금을 받아서 연금으로 돌려주는 ‘부과식 연금제도’다. 역사적인 흐름으로 보면 적립식으로 시작했던 나라들이 어느 단계가 지나면 부과식 또는 혼합형(적립식+부과식)으로 옮겨가게 된다. 우리가 지금 개혁을 안 하고 놔두면 2055년 기금이 제로(0)가 된다. 그 다음은 마이너스(-)다. 이 시기에 (국민연금공단이) 약속한 연금을 주려면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 소득의 30%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소프트랜딩(연착륙)의 관점에서 보험료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거다. 고갈 시기를 계속 늦춰 나가야 한다.

Q. 연금개혁을 위해서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지만, 아직은 그 부분이 약해 보인다.

- 본래 개혁은 어렵다. 혁명보다 어렵다고 한다. 혁명은 새벽에 한 방으로 가능하지만, 개혁은 전방위로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 저항도 워낙 많다. 특히 연금개혁은 개혁 중에서도 가장 골치 아픈 개혁이다. 국민적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어렵다. 젊은 사람일수록 저항이 훨씬 크다. 연금개혁 하면 보통 ‘더 내고 덜 받아야 한다’고 한다. 산술적으로 맞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접근은 젊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 수 없다. 다른 측면의 대안이 필요한 이유다.

Q. 일각에서는 보험료율 상향 조정과 함께 소득대체율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견해는.

- 현재 국민연금 2000만 가입자들이 받는 평균 수령액이 50~60만원 정도라고 한다. 노후 보장이 되는 수준이 아니다. 그런데 더 줄인다? 말이 안 된다. 보험료율을 높이려면, 그만큼 국민이 지금보다 더 나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디자인해야 한다. 그래야 젊은층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열리지 않겠나.

Q. 그렇다면 이사장님은 한국 상황에 가장 적절한 연금개혁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숫자로 조정하는 모수개혁도 필요하지만, 상당한 저항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점진적으로 올리니 효과가 별로 없다. 저는 모수개혁 못지 않게 기금운용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 최근 10년간 국민연금공단의 연평균 운용 수익률이 4.99%다. 운용자산 규모가 비슷한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9.58%)의 절반 수준이다. 운용 수익률을 1%p 높이면 기금 고갈 시기를 약 8년 늦출 수 있다고 한다. 2%p를 높이면 16년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연장 효과가 있다. 물론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수익률을 높이려는 노력은 안 하면서 국민에게 보험료를 더 내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이게 바로 직무유기다.
 

전광우(오른쪽)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과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가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광우(오른쪽)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과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가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Q. 수익률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 수익률 경쟁은 이를테면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전쟁이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프로가 뛰어야 한다. 실력 있는 전문가를 불러 모아야 한다. 일부에서는 민간에서 전문가를 부르면 위험 투자만 할 것이라고 우려하는데, 제가 이야기 하는 건 진짜 프로다. 위험 관리를 잘 하면서 평균 수익률을 높이는 프로를 써야 한다는 의미다. 

사실 소관부서인 보건복지부부터 (수익률 제고에) 적극적이지 않다. 기금운용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금운용위원회라고 있다. 복지부를 비롯해 고용노동부, 농림축산식품부,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이 참석한다. 따지고 보면 국민연금공단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가장 큰 손이다. 그런데 금융위원회는 (기금운용위원회에) 안 들어온다. 20~30년 전에 만들어진 시스템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게다가 국민연금공단의 기금운용본부는 전주로 내려가 있다. 과거 매우 정치적인 이유로 이전했다. 그 바람에 많은 인재가 이탈했다.

이제는 터놓고 이야기 해야 한다.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의 운용 수익률이 좋아진 것도 개혁을 통해서였다. 민간 전문가를 중심으로 기금운용 체계를 뜯어고쳤다. 국민연금공단의 자산 규모가 1000조원이다. 2~3%p만 수익률을 높여도 20~30조원이다. 기금운용이 핵심인데, 그걸 외면하고 있으면 안 된다.

. 과거 국민연금의 장기 재정추계 결과를 보면, 2003년(1차) 추계에서 2047년이었던 기금 소진 예상 시점이 2008년(2차) 추계에서 2070년으로 크게 연장된 바 있다. 당시 연금개혁 시도가 있었던 건가?

- 2차에 걸친 개혁이 있었다. 1998년(1차) 김대중 대통령 때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추고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0세에서 65세(2033년 목표)로 늦추는 작업을 했다. 지금 질문하신 내용은 2007년 노무현 대통령 때 실시했던 2차 개혁이다. 당시 소득대체율을 60%에서 50%로 더 낮췄다. 이후 2009년부터 매년 0.5%p씩 낮춰서 2028년 40%로 낮아지는 구조다. 그동안의 개혁은 돈 주는 걸 줄이는 방식이었던 셈이다.

Q. 소위 말하는 MZ세대 사이에서는 "안 내고 안 받고 싶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국민연금을 의무화하지 않는 방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역설적으로 이야기 하면 MZ세대에게 국민연금이 더 필요할 거라고 본다. 기대 수명이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주식 투자 등을 통해 노후 자금을 마련하면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렇게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국민연금은 강제 저축이다. 지금 당장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분명히 노후 생활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선진국들이 연금제도를 괜히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Q. 2020년 기준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38.97%로, OECD 평균(13.5%)의 2배를 웃돈다. 보다 많은 국민이 안락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정부에서 연금개혁과 함께 추진해야 할 정책이나 방안이 있다면.

- 사적연금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또 기초연금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걸핏하면 전 국민에게 기초연금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이러한 포퓰리즘 접근은 지양해야 한다. 취약계층의 노후소득 보장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담= 전규열 대표이사 겸 발행인
정리·사진= 염보라 기자

전광우 이사장 프로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인디애나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경제학 석사
-인디애나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 경영학교수
-세계은행 수석연구위원
-IMF 외환위기 경제부총리 특보
-국제금융센터 소장
-외교통상부 국제금융대사
-초대 금융위원장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 아태지역위원회 의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연세대 경제대학원 석좌교수
-現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제10회 자랑스런 부고인상', '아시아 지역 올해의 CEO상', '청조근정훈장'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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