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성 지표에만 집중해 연금·저축보험 소외… 소비자 선택권 제한 안 돼”

[공감신문] 염보라 기자= “우리나라는 수입보험료 기준 세계 7위의 보험강국입니다. 올해 선진화된 제도가 도입된 만큼, 이제는 그 위상에 걸맞게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산업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노건엽 보험연구원 금융제도연구실 연구위원은 26일 공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올해부터 도입되는 새 회계제도(IFRS17)와 신지급여력제도(K-ICS)를 기회로 삼아, 외형위주 성장에서 벗어나 보험사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 내실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험사들이 IFRS17상 수익성 지표인 ‘계약서비스마진’(CSM)에 집중한 나머지 보장성보험 판매에 치중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저축성보험 등이 상대적으로 소외돼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

노 연구위원은 “수익성 측면에서 본다면 보장성보험 판매를 늘리는 전략이 유리하지만, 연금보험이나 저축보험도 분명 필요한 상품”이라면서 “특히 3층 보장의 한 축인 개인연금보험이 새 회계제도에 의해 위축되는 결과가 생겨서는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한편, 노 연구위원은 금융제도 전문가다. 현재 금융감독원 신제도(IFRS17·K-ICS) 지원 실무협의체에 참여 중이며, IFRS17·K-ICS 시행에 앞서 각종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해 한국 상황에 맞게 제도를 가다듬는 데 역할을 했다.

이번 인터뷰는 IFRS17·K-ICS 도입을 비롯해 자본성증권 콜옵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 우려 등 보험업계 이슈를 중심으로 진행했다. 내용은 질의응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노건엽 보험연구원 금융제도연구실 연구위원.
노건엽 보험연구원 금융제도연구실 연구위원.

 

Q. 보험사들의 올해 상반기 도래 예정인 자본성 증권 콜옵션 물량이 2조1000여억원으로 추정되는데, 콜옵션 이행이 가능하다고 보는지?

“가능하다. 콜옵션을 연장한다고 해서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흥국생명 사태에 대한 학습효과가 있기 때문에 보험사도 금융당국도 어떤 방식이로든 (콜옵션을) 이행하려고 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조금 힘들 수도 있겠지만, 거의 모든 물량이 소화될 것이라고 본다.”

Q. 지난해 저축성보험을 엄청나게 팔았다. 콜옵션 이행에 따른 유동성 문제 때문으로 보이는데, 나중에 리스크로 작용할 우려는 없을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봐야 한다.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유 중인 채권을 매각해야 하는데, 금리가 급격히 상승한 탓에 평가손실이 난 상태다. 그러다 보니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와 자본성 증권의 콜옵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시납 저축성보험을 팔았던 거고, 은행으로 가는 자금을 가지고 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다. 리스크를 예상 못 한 게 아니라,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Q. 고금리 상품을 팔면 나중에 금리가 떨어졌을 때 역마진이 발생할 수 있지 않나. 그것을 감당하고 한 결정이라는 이야기인가?

“지금 당장 발등의 불을 끄는 게 더 시급했던 거다. 일단 발등의 불을 껐고, 그때 가서 상황을 보고 해결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본다.”

Q. 그런데 저축성보험 자체는 새 회계기준상 도움이 안 될 텐데?

“아무래도 저축성보험은 CSM(계약서비스마진)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보험 수익 측면에서 기여도가 낮은 편이다. 하지만 유동성 관리나 금리 리스크 관리, 그리고 투자수익을 올리기 위해 목돈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저축성보험이 유리할 수 있다. 물론 지난해에는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너무 많이 판매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포트폴리오상 일정 부분 가져가는 것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유리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Q. 2금융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 보험업계 영향은?

“부동산 PF 규모 면에서는 보험업계가 제일 큰 걸로 알고 있다. 보험업계 총자산이 약 1300조원 정도 되는데, 그중 반이 보통 채권이고, 그다음 많이 하는 게 부동산 PF 같은 대출 채권 형식의 투자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선순위 비중이 높다. 그래서 전체 규모에 비하면 연체율 같은 건전성 지표가 그리 나쁘지 않다. 다만, 늘 그렇듯 일부 회사가 문제다. 자기 체력에 비해 조금 더 투자를 많이 한 회사가 있고, 일부는 수익률에 치중하다 보니 후순위게 가깝게 투자한 곳도 있다. 전체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일부 보험사를 중심으로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만큼, 금융당국도 모니터링하면서 예의주시하는 걸로 알고 있다.”
 

노건엽 보험연구원 금융제도연구실 연구위원.

 

Q. 올해 1분기 실적부터 새 회계기준이 적용될 예정이다. 어떤 특징이 예상되나.

“새 회계기준의 가장 큰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부채에 대한 시가 평가이고, 또 하나는 수익 인식 기준 변경이다. 보험업계는 10년에 걸쳐 새로운 제도를 대비했는데, 당시엔 저금리 시절이었기 때문에 부채가 시가로 평가되면 부채가 급격히 늘어 자본이 부족해지고, 회사가 힘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도입할 때가 되니 금리가 너무 많이 올라서 자본이 부족한 회사는 없는 것 같더라. 오히려 할인율이 올라가다 보니 상대적으로 이익이 많이 발생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수익 인식 기준이 변경됨에 따라 보험회사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에는 자산이나 자본 규모로 각 사간 비교를 했다면, 이제는 CSM이라는, 이 회사의 미래 기대 이익이 얼마인지가 재무제표에 찍힌다. 이 회사가 향후 최소 어느 정도 이익을 낼 것이란 걸 투자자나 재무제표 이용자들이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Q. 대형사와 중소형사를 비교할 때 어떤 변화가 있을까?  

“아무래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작은 회사는 자본이 부족해 부채를 많이 못 늘렸기 때문에 미래 이익도 적게 잡히는 측면이 있다. 반대로 대형회사는 부채에서 이익을 최대한 많이 잡으려는 상황이 돼 버렸다.”

Q. 결국 대형사에 더 유리하다는 건가?

“유리하다기보다는 결과적으로 대형회사가 더 좋게 보이는 상황이 됐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전에는 회사의 미래 수익을 예상하는 게 어렵지 않았나. 하지만 이제는 CSM이라는 지표를 통해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까 작은 회사와 큰 회사가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게 주식시장에도 이미 반영돼 있다. 상장 보험사를 쭉 보면 대형사 위주로 (주가가) 많이 올라갔다. 차별화가 더욱 심화되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Q. 이 회사가 진짜 튼튼한 회사인지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국제적 기준에 의해 이 회사가 건전한 회사인지 판단할 수 있게 된 거다. 이 제도는 전 세계 동시 시행이다. OECD 국가 80% 이상이 도입해 있다.”

Q. 새 회계기준에서 유리한 영업전략은 무엇일까?

“보험사들이 이미 10년간 준비해왔기 때문에 영업전략은 다 바뀌어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주로 CSM이라고 하는, 보험 계약 마진이 높은 보장성 상품을 위주로 전략을 세운 상태다. 생명보험사들의 경우 과거 연금보험이나 저축보험을 많이 팔았지만, 이제는 다 보장성보험 쪽에 집중하고 있다. 손해보험사가 판매하는 것과 유사한 형태의 상품들을 생명보험사에서도 판매한다. 생명보험사 내 또는 손해보험사 내 경쟁이 아니라, 업권을 넘어 모두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돼 버린 셈이다. 반대로 CSM이 낮은 연금보험이나 저축보험의 경우 신상품도, 마케팅도 많이 없다. 수익성 측면에서 보면 열심히 팔아야 할 유인이 없는 거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가면 소비자의 선택권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특히 3층 보장의 한 축인 그 개인연금보험이 새 회계제도에 의해 위축되는 결과가 생겨서는 안 된다고 본다. 수익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소비자의 선택권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노건엽(왼쪽) 보험연구원 금융제도연구실 연구위원과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노건엽(왼쪽) 보험연구원 금융제도연구실 연구위원과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Q. 자본운용전략 부분에서도 설명해 주신다면? 

“기본적으로 자산과 부채가 모두 시가로 평가되기 때문에 새 제도 하에서는 ALM(자산부채종합관리)이라고 하는, 금리 리스크 관리가 굉장히 중요하다. 가장 좋은 건 자산과 부채의 움직임이 똑같은 거다. 하지만 실제로는 부채가 훨씬 길다. 종신보험의 경우 100년까지도 갈 수 있으니까. 그에 반해 자산은 상대적으로 만기가 짧기 때문에 금리 오르내림에 따른 변동성이 크다. 그래서 과거에는 장기채를 많이 샀다. 국채의 경우도 지금은 50년 만기도 발행되지만, 그때는 30년 만기가 주였다. 전체 발행량의 25% 내외가 30년 만기이고, 그거를 보험회사가 다 사갔기 때문에 물량이 굉장히 많이 늘었다. 장기채 시장은 거의 보험회사가 매입하는 시장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 보니 최근에는 기획재정부에서 30년 만기 국채 선물을 만들려고 추진하고 있다. 보험사 때문에 30년 만기의 일반 현물 시장이 커지니까 선물 시장까지 확대해 키우겠다는 계산이 작용한 거다. 이에 맞춰 보험회사 자산운용 규제 중 파생상품 한도 규정을 없앴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자산운용을 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것이다.” 

Q. 만약 자산운용에 실패하면 리스크가 더 커지는 것 아닌가?

“IFRS17과 K-ICS가 같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크게 우려하지는 않아도 된다. 금리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장기채만 사는 전략은 조금 부족하니까, 선물 같은 파생상품을 활용할 수 있게 해준 것뿐이다. 위험하다가 아니라, 회사 스스로 관리를 잘 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보시면 된다.”

Q. 새 제도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어떤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새 제도에서는 회사가 자율적으로 부채 평가를 해야 하는데, 늘 그렇듯 회사가 자율로 한다고 하면 의심이 들지 않나. 이런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도록 가정 산출 방법이나 평가 방법 등에 대한 실무 표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각 회사 차원에서도 가정 관리 프로세스를 잘 확립하고, 의사결정의 투명성이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내부 통제 프로세스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고금리 계약을 관리할 수 있는 방안으로 계약 재매입, 계약 이전을 허용해 주면 좋을 것 같다. 계약 이전은 자본이 튼튼한 A회사가 자본이 부족한 B회사의 고금리 계약을 가져가고, B회사는 고금리 계약을 넘기는 대신 A회사의 다른 계약을 가져오는 방식이다. 계약 재매입은 보험사가 계약자에게 해약 환급금을 조금 더 주는 조건으로 해약한 뒤, 해당 계약을 다시 사주는 거다. 이런 방안이 있으면 보험업계가 새 회계제도에 조금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새 제도 도입을 재평가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재무제표의 투명성이 확대됐고, 이제 남은 건 계약자나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다. 냉정히 말해 보험산업은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민원이 가장 많은 것도 보험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수입 보험료 기준으로 세계 7위의 보험강국이다. 캐나다, 이탈리아, 인도보다 높다. 이제는 그 위상에 걸맞게 내실을 키워야 한다. 선진화된 제도가 도입됐으니 계기는 충분하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게, 보험은 증권사나 은행과 달리 사회보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보장성보험도 팔고, 연금보험도 파는 거다. 국가가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을 맡고 있는 것이 민간보험사이기 때문에 그 본연의 역할을 더 충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소비자 신뢰는 자연히 따라오게 돼 있다.” 

대담= 전규열 대표이사 겸 발행인
정리·사진= 염보라 기자

노건엽 연구위원 프로필

- 보험연구원 연구위원
- 전)보험연구원 자본규제연구센터장
- 전)보험개발원 리스크서비스팀장
- 전)우리투자증권 리스크관리부
- 전)미래에셋생명 자산운용본부
- 한국리스크관리학회 상임이사
- 금융감독원 신제도(IFRS17/K-ICS) 지원 실무협의체
- 예금보험공사 예금보험자문위원회 위원
- 금융감독원 할인율 운영 자문위원회 위원
- 금융감독원 보험회사 경영평가위원회 위원
- 회계기준원 보험 적용지원 TF
- KAIST 수리과학과 이학박사
- 상훈: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표창 (2022.12), 보험연구원 원장 표창 (2021.12), 금융위원회 위원장 표창 (2021.11), 한국보험계리사회 특별상 (2018.12), 한국거래소 이사장 표창 (2018. 3), 한국보험학회 우수논문상 (2017. 5), 금융감독원 원장 표창 (2015.12)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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