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생태계 핵심은 中企과의 상생… 소부장·팹리스 육성 필요”
“기술자 존중하는 문화 우선 돼야...대학 반도체 교육 환경 개선도 시급”

[공감신문] 염보라 기자= “일희일비할 필요 없습니다.”

최근 미국 정부가 대(對)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유예 조치를 연장하기로 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온 것을 두고,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이같이 말했다.

앞서 미국은 지난해 10월 중국 반도체 산업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반도체 장비 수출을 사실상 금지했다.

중국에 메모리 반도체의 생산 거점을 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기업 입장에서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금지는 곧 공장 셧다운을 의미한다.

반도체 장비를 중국으로 수출하지 못하면 현지 공장을 업그레이드 하지 못해 빠르게 고도화되는 기술 트렌드를 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미국은 한국 기업에 대해 대중국 반도체 장기 수출 통제 유예를 결정했으나, 고작 1년에 불과했다. 이번에도 1년 등 단기간 유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이 교수는 “10년 유예라면 의미가 있겠지만 유예기간이 짧다면 의미가 조금 퇴색될 수 있다”면서 “장기간 유예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전략을 수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단기, 중장기, 장기에 걸쳐 정부 주도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특히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 과정에서 우리 중소기업과의 상생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예를 들어 반도체 생태계의 핵심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그리고 미래 먹거리로 주목 받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에서 가장 중요한 설계기술을 책임질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을 적극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시스템 반도체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부분이 결합 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사람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며 대학 지원 확대와 과학기술자 존중 문화 정립이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대부분 분야가 그렇지만 (산업 활성화 정책을 만들 때는) 지속성이 중요하다”면서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될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리되, 디테일한 부분까지 촘촘하게 챙겨야 한다”는 당부를 덧붙였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

 

Q. 최근 미국 정부가 대(對)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유예 조치를 연장하기로 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어떻게 보셨는지.

“예를 들어 10년 유예라면 의미가 있겠지만 유예기간이 짧다면 의미가 조금 퇴색될 수 있다. 반도체는 무조건 작게 만들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반도체 8대 공정의 장비를 계속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중요한데, 1~2년씩 유예하는 건 기업 입장에서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Q. 유예기간이 단기에 그치면 크게 의미가 없다는 말씀인가.

“그렇다. 장기간 유예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전략을 수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현재 중국에는 메모리 반도체 위주로 들어가 있지 않나. 마침 시장 트렌드가 메모리 반도체에서 비메모리 반도체로 이동하고 있으니, 극단적으로는 메모리를 포기하고 비메모리 분야를 더 적극적으로 할 수도 있는 거다. 이제는 그런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Q. 어떻게 보면 우리의 생사를 미국과 중국이 결정하는 모양새다.

“개인적으로는 애매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중국에 붙을 필요도, 미국에 붙을 필요도 없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고, 애매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실익을 챙겨야 한다.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유예와 같은 단편적인 일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주도권을 가져야 진정한 반도체 강국이 되는 것인 만큼, 절대 휘둘려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Q. 시장 트렌드가 메모리에서 비메모리 반도체로 이동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이 분야에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즉 시스템 반도체의 차이를 먼저 알 필요가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마트에서 파는 식빵이다. 소품종 대량생산을 하기 때문에 공정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대로 시스템 반도체는 주문제작용 케이크다. 다품종 주문 소량생산이기 때문에 설계기술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기반에는 당연히 공정기술이 있어야 한다. 우리 기업의 공정기술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충분히 검증됐다. 하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뿐 아니라 팹리스(반도체 설계)까지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종합 반도체 회사라는 사실이 발목을 잡는 상황이다. 글로벌 팹리스, IT 제조사 입장에서는 (위탁생산을) 맡기는 순간 경쟁사인 삼성이 이득을 보는 것 아닌가. 신뢰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파운드리 전문 회사인 대만 TSMC와의 경쟁에서 불리하다. 올해 1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보면 삼성전자는 17%에서 12%대까지 하락한 반면, TSMC는 60%까지 올라갔다.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거다. 또 시스템 반도체에서 가장 중요한 설계기술 측면에서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지난해 자체 개발한 ‘엑시노트’를 갤럭시 일부 물량에 탑재했다가 발열 문제로 곤혹을 치룬 바 있다.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그 허들을 넘으려면 괜찮은 친구들이 대학에 들어와 체계적으로 배우고 대학원에 가고, 설계기술을 키울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종환 교수는 메모리 반도체를 마트에서 파는 식빵으로, 시스템 반도체를 주문제작용 케이크로 빗대어 설명했다. 메모리 반도체는 식빵처럼 소품종 대량생산 제품이기 때문에 공정기술이 중요하며, 반대로 시스템 반도체는 다품종 주문 소량생산이기 때문에 공정기술을 기반으로 설계기술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종환 교수는 메모리 반도체를 마트에서 파는 식빵으로, 시스템 반도체를 주문제작용 케이크로 빗대어 설명했다. 메모리 반도체는 식빵처럼 소품종 대량생산 제품이기 때문에 공정기술이 중요하며, 반대로 시스템 반도체는 다품종 주문 소량생산이기 때문에 공정기술을 기반으로 설계기술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Q. 핀란드는 한때 국가총생산(GDP)의 20% 이상을 차지했던 ‘노키아’가 몰락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 경제도 삼성전자, 특히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만큼 반면교사 삼아야 할 부분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시스템 반도체를 잘 해야 한다. 2020년 기준 반도체 시장 규모를 보면 메모리 반도체가 25%, 시스템 반도체가 75% 비중을 차지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loT), 자율주행차 등이 확대됨에 따라 시스템 반도체 비중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메모리를 통한 공정기술은 세계 최고이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비메모리 설계 기술은 큰 기업이 계속 주문을 해줘야 하는데 그게 취약한 상황이다. 삼성에서 최근 반도체 인터페이스 설계자산(IP) 생태계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 것들이 더 필요하다.”

Q.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반도체 강국이란 타이틀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어떤 외부 환경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정부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명확하게 하면서 기업과 대학 간 연계를 확대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야 한다. 특히 소부장 기업을 살려야 한다. 일본 소부장 기업이 들어오면 한국 소부장 기업은 다 죽는다. 아직은 경쟁력이 뒤처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견제를 해줘야 한다. 우리 중소기업 생태계가 탄탄해질 때까지 말이다.”

Q.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소부장이 중요하다는 말씀인가.

“메모리든 비메모리든 파운드리를 하기 위해서는 소부장이 잘 돼 있어야 한다. 이것들이 생명체와 같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돼 있어야 경쟁력이 생기는 건데, 아직 이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중국이나 일본이 몇 개 품목, 몇 개 재료만 공급을 중단해도 산업이 흔들리는 거다. 외국의 환경 변화에 둔감하게, 생태계가 탄력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미리 점검하고, 그 다음 가능하면 자국 내에 그런 것들을 많이 배치해야 한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공급망 관리’를 중요시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인 거다.“

Q. 지난번 칩셋 부족으로 자동차 회사들이 생산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나. 공감되는 부분이다.

“그래서 공급망 관리를 해야 하는 거다. 과거 미국은 제조업은 부가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설계 위주로 했다. 그런데 외국에서 흔들면 산업이 마비가 될 수 있구나를 피부로 느꼈다. 그래서 외국에 있는 파운드리 회사를 자국으로 유치했다. 외부의 환경 변화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다.”

Q.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만든 이유도 결국 그것인가.

“아시겠지만 70~80년대에는 오일쇼크로 휘청했다. 그때의 오일이 지금으로 치면 반도체다. 그래서 반도체 패권 전쟁을 하는 거다. 그냥 놔두면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갈 것 같으니까 어떻게든 패권을 가져오려고 하는 거다. 지금 굉장히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정부의 외교적인 정책과 노선, 기업과의 연계, 전략, 판단들이 굉장히 중요한 상황이다. 게다가 반도체는 바로 투자해서 생산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10년, 길게는 20년의 단기, 중장기, 장기의 전략을 국가가 명확하게 세워야 한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

 

Q. 윤석열 대통령이 제17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반도체 국가전략회의에서 “장애가 되는 모든 규제를 없애 달라”고 주문했다. 현재 가장 개선이 시급한 규제는 무엇인가?

“공정라인을 지을 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반도체는 속도 싸움인데, 건설 자체도 오래 걸리지만 삽을 뜨기 전부터 시간이 지체된다. 반대로 대만이나 중국은 빠르게 진행된다. 한국은 세제 혜택도 상대적으로 약하다. 중국은 대기업에도 35~40% 세제 혜택을 주는데, 우리는 이제 겨우 25%가 됐다. 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Q. 정부에서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을 위한 반도체 육성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어떻게 봤나.

“가장 최근 나온 게 용인시에 20년간 총 300조원을 투자해 용인 클러스터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큰 그림을 그리는 차원에서 우리가 필요한 부분을 용인 클러스터에 몰아넣자는 것인데, 그 자체는 좋은 것 같다. 다만 우리 중소기업과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반도체를 육성하고자 하는 이유 자체가 우리 경제의 성장인 만큼,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Q. 교수님은 시스템 반도체 분야 전문 인력 양성에 힘쓰고 계신다. 대학 현장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없는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스템 반도체는 설계기술이 중요하다. 설계를 하려면 여러 가지 툴이 필요하고, 모두 돈이 들어가는 부분이다. 그 다음 더 큰 건 공정이다. 우리나라 대학 중 팹(생산공정실)을 갖춘 곳은 4~5군데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규모가 크지 않다. 반면 미국은 학생들이 이론적으로 실무적으로 폭넓고 깊게 배울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기술 인력을 우대한다. 그래서 의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우리와 달리 미국은 공대를 최고로 친다. 기술 인력을 우대하는 문화가 있다면 중국으로 인력이 유출되는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스템 반도체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부분이 결합 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사람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전략적으로 인재를 육성하고 의대뿐 아니라 이쪽도 중요하다는 걸 인식시켜 줘야 한다.”

Q. 중국 시안의 삼성 반도체 공장 바로 옆에 똑같은 복제 공장을 지으려 한 전직 삼성전자 임원이 최근 구속기소 됐다. 핵심 인력 유출에 따른 기술 유출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결국 기술 인력 우대가 해결 방안이라고 보는 것인가.

“그렇다. 반도체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열심히 해서 나름 노하우가 쌓였는데, 누가 그냥 버리고 싶겠나. 그러니까 은퇴 후 자기 능력을 필요로 하는, 자기를 불러주는 곳에 가는 거다. 기술 인력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고, 이들이 은퇴 후에도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해결될 문제라고 본다.”

 

이종환(왼쪽)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와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K반도체 화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종환(왼쪽)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와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K반도체 화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대부분 분야가 그렇지만 지속성이 중요하다.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되는 큰 그림이 필요하다. 그리고 디테일 해야 한다. 기초과학부터 미래 기술까지, 촘촘하고 상세한 국가적인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진행 과정에서 틈새가 보인다면 전문가를 활용하면 된다. 현장의 목소리도 많이 들어야 한다. 일방적으로 하면 너무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용인 클러스터를 한다고 할 때 가장 싫어한 쪽이 중소기업이었다. 일본 소부장 기업이 들어오면 최악의 경우 문을 닫아야 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리고 팹리스 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주문제작 케이크를 만들려면 설계를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큰 회사가 없다. LX세미콘 정도의 기업이 더 나올 수 있도록 토양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기업과 맞물려 있는 대학, 연구소를 세세하게 신경 써야 한다. 정책을 발표할 때 디테일한 부분까지 촘촘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는 생각이다.”

대담= 전규열 대표이사 겸 발행인
정리·사진= 염보라 기자

이종환 교수 프로필

- 상명대 시스템공학과 교수(세부전공: 반도체 소자)
- 삼성디스플레이 수석연구원
- 삼성전자 수석연구원
- LG전자 주임연구원
- 미국 플로리다대 전기컴퓨터공학 박사
- 인하대 전자공학과 학사·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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