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 시너지 강조… 외부기관 리뷰 확대로 조사연구 질적 고도화”

[공감신문] 염보라 기자=한국은행이 달라졌다.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조직에서 수평적이고 대외지향적인 조직으로 180도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일례로 이전에는 연구보고서를 작성하면 팀장·국장·총재 등 수직 라인으로 보고 했지만, 이제는 내 동료와 관련 부서, 심지어 금융감독원·대학 등 외부기관의 리뷰를 받는다.

수평적이고 대외지향적인 조직이라는 지향점 아래 조사연구의 질적 고도화라는 일석이조 효과까지 얻을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이승헌 부총재가 자리해 있다. 이 부총재는 한국은행 중장기 발전전략인 ‘BOK 2030’을 수립한 인물. 32년간 ‘한은맨’으로서 묵묵히 자리를 지킨 그는 한국은행에 요구되는 역할을 위해서는 혁신해야 한다는 걸 체감했고, 뚝심 있게 밀어붙여 지금의 ‘변화하는 한국은행’의 틀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일하는 문화뿐 아니다. 중앙은행 업무에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신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전담조직인 ‘디지털혁신실’ 신설을 주도했으며, 이를 통해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부총재는 “개혁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라며 ‘BOK 2030’ 수립과 실행에 함께 힘써준 임직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 후배 한은맨들을 향해 “한은도 이제는 안정 속에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한은의 높아진 위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공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발언 중인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
공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발언 중인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

 

Q. 한국은행 통합별관 구축 작업을 주도하셨다. 작업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입주 소감도 남다르실 것 같은데.

“6년이라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말씀하신 대로 우여곡절이 있었다. 법적 분쟁, 코로나19 확산, 주 52시간제 도입,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으로 공사기간이 지연되고 비용이 추가됐다. 게다가 기대보다는 개인 공간이 좁아질 것이라는 등 우려 섞인 목소리가 많다 보니 별관건축본부 직원들의 사기가 다소 꺾인 상태였다. 하지만 입주 전 완공 단계에서 쭉 둘러보는데,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니나 다를까 입주 후 직원들의 우려도 하나하나 깨졌다. 개인 공간은 크지 않지만 대신 오픈공간이 많이 생겼다. 원하는 곳에서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하자는 당초 콘셉트가 잘 구현됐고, 직원들의 만족도도 꽤 높다.” 

Q. 특히 마음에 드는 공간은?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4층 식당·휴게공간이었다. 보자마자 ‘성공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저희가 기본적으로 세운 첫 번째 원칙은 보안과 안전 그리고 두 번째는 오픈된 공간을 많이 만들자는 거였다. 바깥으로는 보안과 안전성을 보강하면서, 내부적으로는 통합 컨퍼런스 홀을 만들고 직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회의공간을 넓히는 등 오픈된 공간으로 꾸몄다. 이창용 총재의 말씀처럼 어디서든 편하게 일하고, 팀 구분 없이 수평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디자인적인 아름다움은 물론이다.”
 

한국은행 통합별관 4층 식당·휴게공간(위)과 3층 컨퍼런스 홀의 모습. 바깥으로는 보안과 안전성을 보강하면서, 내부적으로는 통합 컨퍼런스 홀을 만들고 직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회의공간을 넓히는 등 오픈된 공간으로 꾸몄다.

 

Q. 중장기 발전전략 ‘BOK 2030’ 일환으로 지난해 6월 조직의 수평적 문화 확산과 직원의 전문성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경영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긍정적인 변화가 느껴지시는지?

“경영혁신 방안의 핵심 가치 중 하나는 수평적 시너지였다. 과거의 한국은행은 수직적인 문화가 너무 강했다. 이걸 좀 내리자고 했고, 권한의 하부 위임을 통해 구현했다. 업무 방식에 있어서도 ‘동료 리뷰’를 크게 확대했다. 페이퍼(연구조사)가 올라가면 전에는 주로 내가 소속된 팀의 팀장, 국장, 총재 등 수직 라인으로 의사소통을 했는데, 이제는 관련 부서, 옆 팀, 심지어 금융감독원과 기획재정부 등 외부기관, 교수, 외부 기관에까지 보내서 리뷰를 받는다. 수평적 문화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페이퍼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효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

Q. 과거 한국은행의 조직문화는 폐쇄적인 편이지 않았나. 외부 리뷰까지 받는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굉장히 고무적인 변화다.

”단순히 페이퍼 과정에서의 리뷰뿐 아니라 평가 시스템 자체도 개방적으로 바뀔 것이다. 내 상급자뿐 아니라 옆 부서도 평가를 해, 위에만 잘 보이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다른 부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지까지 평가하기 때문에 훨씬 단단해질 수 있는 것이다.”

Q. 확실히 연구조사의 질적 제고를 기대할 수 있겠다.

“아무래도 내부 보고에 그치지 않고, 바깥에 퍼블리싱되니까…. 과거에는 내 라인의 평가만 반영됐다면, 이제는 한국은행 전체, 국민 전체에 퍼블리싱되면서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는 거다. 페이퍼의 가치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Q. 평소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지 궁금하다.

“수영을 한다. 몸이 힘들 때 수영을 하고 나면 오히려 개운하더라. 눈을 감고 천천히 수영을 하면 자는 것보다 더 편안하다는 생각도 든다.”

Q. 부총재가 되신 후 언론에서는 ‘세대교체’라는 평가를 내놨다. 더 잘해야겠다는 부담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마음 속에 새긴 목표나 각오는 무엇이었나.

“이주열 총재께서 주창하신 조직 변화, 조직 혁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30년간 한은맨으로 살아오면서 답답했던 부분이 있었고, 변화가 필요한 부분을 누구보다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걸 개선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게 중장기 발전전략인 BOK 2030이었다. 그걸 진행하는 과정에서 부총재가 됐기 때문에 이걸(BOK 2030) 확실히 추진하고 완성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Q.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성과를 하나 꼽아주신다면?

“디지털 혁신을 꼽고 싶다. 시대가 디지털로 막 달려가고 있지 않나. 한국은행은 그 어느 조직보다 데이터를 많이 쓰기 때문에 디지털 혁신이 의미가 크다. 그래서 BOK 2030의 네 가지 전략중 하나로 디지털혁신을 내세우면서 IT 쪽에 인공지능(AI)를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를 정말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AI는 전문가가 필요하고 많은 투자도 필요한 분야이지 않나. 잠시 주저했지만 한은에 AI에 정통하면서 열정적인 직원들이 많이 있더라. 그들을 찾아내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지리를 마련해 주니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디지털혁신실이 한국은행에서 핫(hot)한 조직으로 인식되고 있고, AI라든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여러 부서와 협업하고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최근 챗GPT 등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적어도 그것을 따라갈 수 있는 조직이 생겼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큰 성과라고 자부한다.”

Q. 기억에 남는 직원이 있다면?

“마남진 강릉본부장 생각이 많이 난다. 조직 혁신을 한다고 하니까 내부에서는 어떻게 바꾸자는 이야기보다 불편함을 호소하는 게 더 많았다. 그런데 그런 직원들의 목소리까지 모두 듣고 소통해야 한다고 강하게 어필했던 게 당시 전략기획팀장이었던 마 본부장이었다. 직접 소통 채널을 만들기도 했다. 아마 경영진이 독단적으로 추진했다면 실패했을 텐데, 마 본부장이 조직원 전체와 의사소통할 수 있게 노력해 준 덕분에 인정할 거 인정하고 개선할 거 개선하고 설득할 거 설득하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사실 마 본부장뿐이 아니다. 한국은행이 이렇게까지 변화했다는 건 놀라운 것인데, 마 본부장을 비롯해 많은 직원들의 노력과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직원 한 명 한 명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Q. 조직원 전체와 소통을 했다는 건, 결국 부총재님이 열려 있는 분이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감사한 말씀이지만, 개혁은 절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말 여러 사람의 공이 모여야 한다. 많은 인재가 밑에서 하나하나 움직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Q. 2년여간 금융통화위원으로 활동하셨다.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어려움도 많으셨을 것 같은데?

“금리 인상은 쉽지 않은 일이 었지만, 선진국 대열에 있는 나라 중 한국이 가장 먼저 금리를 올렸다. 금통위원과 실무진들은 ‘세상의 흐름을 제대로 봤구나’ ‘정책 판단을 시의적절하게 잘했구나’ 하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저희는 2021년 5월에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했고, 8월 첫 금리 인상을 실행했다. 다른 나라보다 6개월 이상 빠른 결정이었다. 금리를 (다른 나라보다) 먼저 올리면 경제가 어려운데 올린다고 욕먹을 수 있겠지만, 반대로 늦게 올린다면 급하게 올려야 해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그러면 어떤 걸 선택할 것인가, 첫 번째가 낫겠다. 욕을 먹더라도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작년에 미국 연준(연방준비제도)이 금리를 급히 올리는 과정에서 굉장히 어려웠는데, 우리가 먼저 올려놓지 않았다면 미국보다 더 큰 압력을 받았을 거다. 부동산 시장은 더 빠르게 고꾸라지고, 금융은 완전히 망가졌을 거라고 본다. 우리는 먼저 움직이면서 시장이 조정할 여유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굉장히 자부하고 있다.”

Q. 보통은 연준을 보고 움직이지 않다. 선제적으로 잘 판단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밑거름에는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검토가 있었다. 조사국 등 정책부서에서 인플레이션, 가계대출, 금융안정 등 여러 측면에서 분석을 하고, 과거 사례와 코로나 이후 정책 대응 등을 보며 지속적으로 토론을 했다. 저희 내부적으로는 연준이 결국 그렇게(가파른 금리 인상) 나올 것이고, 시장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말씀드린 수평적인 토론 문화가 어느 정도 많이 정착되면서 도움이 된 부분이 크다고 본다.”
 

이승헌(오른쪽) 한국은행 부총재와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승헌(오른쪽) 한국은행 부총재와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Q. 입행 후 32년간 국내외 금융위기를 다 경험하셨는데, 당시 분위기는? 

“세상은 큰 틀에서 보면 10년 단위로 변하는 것 같다. 90년대는 규제 시대였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넘어서면서 시장이 개방됐다. 2008년에는 또다른 위기로 또다른 시대가 열렸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다시금 변화가 찾아왔다. 네 번째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앞선 세 번의 위기로 우리 국내 경제와 시장에의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한국의 경제주체들이 슬기롭게 잘 받아넘겼고, 그 레슨을 통해 변화를 이뤄낼 수 있었다. 세 번의 경험을 통해 잘못된 것들에 대해 반성했으며, 시장과 경제는 더욱 단단해졌다. 저희 정책당국도 준비가 많이 돼 있다. 최근 인플레이션 및 시장불안에 대응하는 것을 보면 굉장히 노련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Q. 한국은행은 디지털 경제 전환에 대비해 CBDC 연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앞으로 화폐의 개념이 종이에서 디지털로 바뀔 것으로 보시는지 궁금하다.

“아직은 결론을 내릴 단계는 아니다. 다만 세상이 변하고 있는 건 맞다. 가상자산이나 이런 것들이 아직은 법적인 안정성이 떨어지고 소비자보호 이슈도 강하게 대두되고 있지만,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상자산을 안정화하는 과정의 끝은 CBDC나 중앙은행 제도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가상자산도 하나의 위험자산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그 가치의 안정성도 중요하다. 그래야 자산이 기초하는 배후의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가치도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Q. 시대 변화에 따라 한국은행의 역할도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고 보시는지?

“‘왜요? 지금요? 제가요?’라고 하는 ‘3요’가 의미하는 바는 기성세대가 열려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바깥으로 여는 것과 더불어 내부의 새로운 세대에게 여는 걸 이야기해야 하는데, 저희가 변화의 과정에서 풀어야 할 숙제라고 본다. 그게 또다른 변화의 모습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들을 지금 찾고 있다. BOK 2030에는 ‘개방’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개방은 시대의 흐름이다. 그래서 공간(통합별관) 자체에 개방이란 콘셉트를 녹여냈고, 페이퍼의 외부 공개 확대도 추진한 거다. 이창용 총재 역시 대외 개방과 협력을 강조하고 계신 만큼, 이 부분에서 큰 진전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Q. 후배 한은 맨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은도 이제는 안정 속에서 디지털 혁신 등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점차 한은의 높아진 위상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대담= 전규열 대표이사 겸 발행인(경영학 박사)
정리·사진= 염보라 기자

이승헌 부총재 프로필

- 한국은행 부총재
- 한국은행 부총재보
- 한국은행 국제국 국장
- 한국은행 공보관
- 한국은행 국제국 국제총괄팀 팀장
- 한국은행 국제국 외환시장팀 팀장
- 미국 에모리대 경영학 석사
- 서울대 경제학과
- 서울 경신고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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