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구자, 개인 아닌 소속기관 국적으로 카운팅”
“일본·독일과 특허 네트워크… ‘느슨한 커플링’으로 패권경쟁 대응”
“기술혁신과 함께 서비스혁신 고민해야… 현지화도 중요”

[공감신문] 염보라 기자= 전 세계가 첨단기술 패권을 잡기 위해 보이지 않는 혈투를 벌이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뒤처지는 순간 도태된다는 위기감에 ‘초격차 전략기술 육성’을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로 내걸고, 반도체·인공지능(AI) 등 12개 전략기술 분야의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윤태성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독일과 손잡고 특허를 상호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네트워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가 최근 펴낸 《기술전쟁》 속 표현을 빌리면 ‘네트워크형 기술 강소국 세력’이다.

윤 교수는 “기술 개발을 위해 필요한 인건비와 인력은 미국과 중국이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특허의 경우 3국이 힘을 합쳤을 때 미국과 중국을 능가할 수 있다”며 “상호 공유할 수 있는 풀(Pool)을 만들면 그게 세력이 된다. 기술별로 때에 따라 이스라엘을 부르고, 네덜란드를 초대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이를 ‘느슨한 협력’으로 정의했다. ‘커플링’(동조화)과 ‘디커플링’(탈동조화)라는 이분법 말고 제3의 선택지 ‘루스 커플링’(느슨한 동조화)으로 기술패권 전쟁에 대응하자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인재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여기서 인재는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까지 포함한다. 윤 교수는 “논문 피인용 건수가 상위 1%에 들어가는 ‘1% 연구자’의 국적을 구분할 때에는 연구자 개인이 아닌 소속 기관의 국적을 따진다. 카이스트에 1% 연구자 1000명이 와 있다면, 한국에 1000명 있는 걸로 카운트가 되는 것”이라며 “국적·나이 등 제한 없이 한국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인재라면 적극적으로 유입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마지막으로 기술혁신을 추구하고 있는 기업들을 향해서는 “기술혁신과 함께 서비스혁신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입사 3년 차 이상 직원을 1~2년 동안 해외로 보내 현지 언어와 문화를 익히도록 하는 삼성전자의 ‘지역전문가 제도’를 지목하면서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며 “현지화를 위한 과정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다음은 29일 대전 카이스트에서 진행된 윤 교수와의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윤태성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윤태성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Q. 첨단기술 패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 기업간 경쟁을 넘어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간 대립으로 치닫는 양상인데.

“중국 공산당 건립 100주년인 2049년까지는 (기술패권 경쟁이) 지속될 거라고 본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2049년부터는 경제·기술·군사력에 있어 미국에 지지 않겠다는 목표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술력이라고 하면 광범위하지 않나. 현실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1등을 할 수 없으니 (중국은) 12개 핵심 분야를 선정했다. 이 중 AI 안면인식, 양자 암호통신 등 일부 분야에 대해서는 이미 (미국을) 앞서가고 있지만, 종합적으로 하면 미국의 80% 수준에 그친다는 게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의 분석이다. 그래서 적어도 2049년까지는 기술 승기를 잡기 위한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이어질 것으로 보는 거다. 나아가 미국도 중국도 1대 1 맞짱은 부담스러우니 서로 진영을 모으는 과정이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영 대립에 있어 가장 난감한 국가는 한국이다. 모래밭에 자석을 대면 N극에 가까운 모래는 N극에, S극에 가까운 모래는 S극에 완벽히 붙고, 멀리 있는 모래일수록 애매하게 붙지 않나. 한국은 애매하게 붙는 걸 원하는 것 같은데, 양 극이 서로 자기 팀으로 당기고 있는 상황이다.” 

Q. 한국은 정체성 측면에서 이미 미국 쪽에 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중국이 반발하는 것 아닌가.

“중국과 멀어졌다고 하지만, 경제는 굉장히 꼬여있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촘촘하게 꼬여있는 부분이) 풀리진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일례로 3년 전 일본에서 한국에 불화수소 등 수출규제 조치를 할 때에도 한국과 일본이 전면전을 벌이는 듯했지만, 실제 기업 차원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공급망)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나.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는 마치 날실과 들실로 짜인 옷과 같다. 실 하나를 끊는다고 옷이 풀어지는 게 아닌 것처럼, 그런 상태로 봐야 한다.”


윤 교수는 신간 《기술전쟁》에서 한국이 반드시 승기를 거머쥐어야 하는 3개 배틀필드(battle field·전쟁터)를 소개했다. 제조 기술과 공급망 등으로 대변되는 ‘피지컬 배틀필드’, 네트워크와 인공지능 등의 ‘디지털 배틀필드’, 인공위성과 우주 인터넷 등의 ‘스페이스 배틀필드’이다. 윤 교수는 승자독식의 배틀필드로 패자가 부활하기 매우 어려운 곳이라고 설명했다.


Q. 《기술전쟁》에서 소개한 3개 배틀필드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사실 3개라는 숫자와 구분이 중요한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기술에 따라 승리한 사람이 시장의 룰을 바꿔버리는 분야가 있다. 예를 들어 반도체의 경우 이긴 사람이 룰을 바꿀 수 있다. 디지털, 우주도 마찬가지다. 양자컴퓨터 역시 미국이든 중국이든 먼저 승리한 국가가 전 세계에 양자컴퓨터 표준을 쫙 갈아버리면 그걸 안 따라갈 수가 없다. 승리자가 독점한 뒤 룰을 바꾸면 진 사람은 그에 맞춰야 하는 거다. 그런 기술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나올 거다. 그때마다 승자독식 기술인지, 승리하면 유리하겠지만 룰을 바꿀 정도는 아닌 기술인지를 살펴보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Q. 책에서 5대 제조강국 중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고 한국과 일본, 독일이 협력해 ‘네트워크형 기술 강소국 세력’을 만들자고 제안하셨다. 이유는?

“기술 개발을 하려면 연구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이 압도적으로 많다. 3개 나라(한국·일본·독일)를 합쳐도 상대가 안 된다. 연구자도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인구가 많은 데다 미국은 연구자들이 자발적으로 들어가고, 중국은 돈을 주고 스카우트하기 때문에 3국이 힘을 합쳐도 밀린다. 그런데 3국이 힘을 합쳤을 때 미국이나 중국을 앞설 수 있는 부분이 딱 1개 있다. 바로 특허다. 그래서 특허를 중심으로 세 나라가 모여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Q. 책에서도 특허의 중요성을 언급하셨는데.

“그렇다. 쓰지도 않는 ‘장롱 특허’를 많이 만들었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최근에 봤다. 그건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에서 특허를 가장 많이 가진 기업 10위권에 들어가지만, 일주일에 한 번꼴로 특허 소송이 걸린다. 예를 들어 PC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몇 만 건의 특허가 필요하다. 그중에는 아주 중요한 기술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볼트·너트 특허도 있다. 이 모든 특허를 하나의 기업이 모두 보유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소송이 걸리는 거다. 우리가 특허를 이야기할 때에는 ‘중요한 특허다’ ‘허브 특허다’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소송 관점에서는 그냥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많은 특허를 보유하는 게 중요한 거고, 대안으로 네트워크형 기술 강소국 세력을 떠올리게 것이다. 특허를 상호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풀을 만들면 그게 세력이 된다. 기술별로 때에 따라 이스라엘을 부르고, 네덜란드를 초대할 수도 있다. 국제기구처럼 잘 짜인 조직이 아니라, ‘느슨한 협력’이다. 우리가 ‘커플링’ ‘디커플링’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저는 제3의 선택지로 ‘루스 커플링’을 선택해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 세계 첨단기술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인공지능, 양자 기술 등을 '12대 국가전략기술'로 선정하고 연구개발, 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 과기부 제공
전 세계 첨단기술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인공지능, 양자 기술 등을 '12대 국가전략기술'로 선정하고 연구개발, 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 과기부 제공

 

Q. 장기적으로는 특허가 기술 표준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특허를 국제표준으로 가지고 가려면 진영 싸움을 거쳐야 한다. ISO(국제표준화기구)는 ‘1국 1표주의’다. 예를 들어 독일이 제안을 하면 유럽 국가들이 찬성을 해준다. 최소 30표 이상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거다. 반면 미국은 1표, 중국도 1표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 시장이 워낙 크다 보니 국제표준이 안 되더라도 자국 표준을 그냥 가져갔다. 중국의 경우 ‘세계 표준 안 하고 말지’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요즘 태도를 바꾸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반대 표를 내면 ‘우리끼리 할래’로 방향을 바꿀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본다. 일대일로 국가를 중심으로 중국 표준을 쓰겠다는 거다. 미래 가능성이 있는 위험 시나리오 중 하나다.” 

Q. 1국 1표라면 일단 유럽이 강할 수밖에 없겠다.

“현재까지는 유럽이 강했고, 여기에 미국이 대항을 하면서 미국과 유럽이 싸우는 구도였다. 하지만 중국이 최근 가세하면서 아프리카 국가를 데려왔다. ISO 회원국이 120개가 넘는데, 그중 유럽은 다 해봐야 36개밖에 안 된다. 그동안 아프리카 국가들은 관심이 없으니 (회의에) 안 왔는데 중국이 데려오면서 (투표권에 대한)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Q. 국제표준 선점이 중요한 이유는 결국 시장을 지배하기 위함인가?

“그렇다. 합법적으로 지배하는 거다. 책에서는 김치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만약 중국이 김치에 대한 국제표준을 선점하면 우리는 김치라는 말을 쓸 수 없다. 김치라는 말을 쓰더라도 그 김치는 김치가 아닌 거다. 우리나라의 전통음식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국제표준으로 김치 표준이 정해져 버리면 우리는 그 표준에 맞춰 만들 수밖에 없다. 중국이 날치기를 했다고 주장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의 김치에는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한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Q. 그렇다면 국제표준 관련한 우리의 대응은 적절하다고 보시는지?

“늦었다. 김치는 1000년 이상 내려온 음식이지만 표준화된지는 얼마 안 됐다. 표준에 대한 인식이 늦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다른 나라가 찬성 표를 줘야 한다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제협력을 잘해야 한다. 국제표준을 추진할 때 상대국이 원하는 표준과 우리가 원하는 표준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결국 국제회의에서 협상력을 가지는 게 중요한데, 이 부분에서는 한국보다 중국이 앞서가는 상황이다. 중국의 경우 국제표준 회의를 할 때 주니어를 많이 보낸다. 지금 30대라면, 앞으로 30년 동안 더 친해질 기회가 있는 셈이다. 한 잔 하면서 ‘이건 양보해’ 할 수 있는 거다. 우리도 주니어를 많이 보내야 한다. 국제표준은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이다. 표준을 위해서는 특허가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고 말이다.”
 

윤태성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윤태성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Q. 기술전쟁의 시대에서 한국이 나가야 할 ‘SIT 3A’ 원칙을 제시하셨다. SIT 3A이 의미하는 바는?

“1번 자리에 미국, 2번 자리에 중국이 각각 있다면 한국은 3번 자리, 그중에서도 1·2에 가장 가까운 3A 자리에 앉자는 의미다. 그리고 ‘S’는 Science, 즉 과학기술의 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고, ‘I’는 Innovation, 혁신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T’는 Talent, 인재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재는 한국인과 외국인을 모두 포함한다. 한국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인재라면 적극적으로 유입해야 한다는 거다. 반대로 한국 인재가 해외로 나가는 것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3’은 기술의 제3의 축, ‘A’는 Adapt, 바뀐 환경에 적응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Q. 인재 부분이 특히 공감된다. 미국에 이민을 가서 노벨 경제학상이나 물리학상을 받으면 미국인이 받은 것이 되지 않나.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도 인재 유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귀화할 필요도 없다. 논문 피인용 건수가 상위 1%에 들어가면 ‘1% 연구자’라고 부른다. 그게 좋은지 안 좋은지는 차치하고 일단 논문 인용이 많이 된 사람이 노벨상에 가까우니까 1% 연구자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 1% 연구자의 국적을 따질 때는 개인이 아닌 그 사람이 속한 기관의 국적을 따진다. 카이스트에 1% 연구자 1000명이 와 있다면, 한국에 1000명이 있는 걸로 카운트가 된다. 그게 포인트다.” 

Q. 그렇다면 기술전쟁 시대에 우리나라에 필요한 인재상은 무엇일까?

“당장은 기술과 시장을 알 필요가 있다. 양자컴퓨터를 예로 들면 대부분 공학도는 몇 ‘큐빗’(Cubit) 하면서 숫자로 이야기하는데, 이 양자컴퓨터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기술 개발됐을 때 어떤 방식으로 시장에 나가 시장을 어떻게 바꿀 것이며, 내 생활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지를 폭넓게 그림으로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걸 학생 때부터 훈련해야 한다.” 

Q. 교수님 말씀을 짚어보면 결국 기술과 시장의 순환구조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인데, 산학협력 교수가 많이 필요할 듯하다.

“산학협력 교수를 뽑지 않아도 된다. 그냥 기업에 있는 사람이 한 번씩 와서 문제만 주고 가면 된다. 예를 들어 ‘반도체 공장을 돌리는데 불량이 너무 많다’까지만 이야기해 주면 된다. 제 경우 ‘서비스공학’ 수업을 할 때 학생들을 재래식 시장에 보낸다. 시장에서 불편한 걸 찾아보고, 과학기술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해 보라고 한다. 그리고 가능성이 있는지를 해당 전문가·교수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그 과정을 반복하는 거다. 재래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백종원식 메뉴 개발만 있는 게 아니다. 백종원 씨는 요리 전문가니까 메뉴 개발로 해결하려는 것이고, 카이스트 학생이라면 과학기술로 해결을 해야 한다. 이공계 수업이라는 게 기술에서 먼저 출발해 가르쳐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시장 관점에서 먼저 문제를 갖고 와서 기술을 찾아가는 노력도 중요하다. 학생이 문제를 직접 찾는 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지만, 기업에 있는 분들이 와서 숙제만 내줘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Q. 우리는 반도체 인재가 필요하다고 하면 관련 과를 늘리는 식으로 대응을 한다. 바른 방향이라고 보는지?

“정책적 관점에서는 모르겠으나, 과학기술 관점에서는 별로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반도체는 미국에서 개발했지만, VLSI(초고밀도 집적회로)를 개발하고 클린룸을 만든 건 일본이었다.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니까 기능 개선을 위해 VLSI를 개발하고, 불량이 자꾸 나오니까 먼지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에 클린룸을 만들어냈다. 양산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새로운 기법들이 나온 거다. 반도체학과, ○○학과는 앞단(이론)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가 중요하다고 하니까 반도체학과를 만들고, 양자컴퓨터가 중요하다고 하니까 양자 대학원을 만들고…. 이런 식으로 한다면 새로 나오는 기술에 착안해 당장 100개는 만들어야 한다. 그보다는 원리원칙에 기반해 기술이 어떤 식으로 발전하고 진화해 상품에 반영되며, 시장에 어떻게 흘러가고 시장에서 어떻게 피드백으로 돌아오는지에 대한 내용을 알려준다면 그 어떤 새로운 기술이 나오더라도 거기에 맞춰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Q. 최근 서울대에 있는 기계가 노후화 되서 학생들이 포항공대에 가서 수업을 듣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넌센스 아닌가.

“1950~1960년대에는 중장비나 고가의 장비가 대학에 있어서 기업이 대학에서 실험을 했다. 시대는 늘 바뀌기 때문에 대학에 장비가 있고 없고는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모든 대학이 최신 장비를 모두 갖추고 돌려야 할 필요도 없다. 서울대에 장비가 없어서 포항공대에 간다? 그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우리가 더 우려스럽게 봐야 할 문제는 이공계 박사 과정을 밟는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경우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중국인이든 몽골인이든 한국에 와서 연구하고 일을 하게 해줘야 한다고 본다. 연령을 제한할 필요도 없다. 좋은 성과를 내는 데에는 나이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실험경제학은 50대 후반이 더 좋은 연구를 한다. 어느 정도 성과가 예상된다면 과감하게 쓰는 거다.” 
 

윤태성(왼쪽)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와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29일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Q. 국내 엔지니어나 연구원들이 해외 기업으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전략기술이 유출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해결 방법은 없는 걸까?

“저는 반대로 우리나라 기술자를 꽁꽁 싸매는 게 과연 좋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있다. 물론 업종에 따라 한 사람이 50년 쭉 하는 게 유리한 업종도 있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면서 변화를 추구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실제로 입사 5년 차가 되면 무조건 해외로 나가게 하는 기업도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인재라고 해서 무조건 한국에 있어야 한다? 그런 건 억지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닐뿐더러, 물은 흘러가게 놔둬야 한다고 본다.” 

Q. 하지만 이로 인한 기술 유출 문제가 있지 않나.

“과거 일본 산요전기는 삼성전자에 라디오·흑백TV·컬러TV 기술을 줬다. 왜 그랬을까? 시장 자체를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Q. 리튬, 희토류 등 희귀광물 확보 중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소재가 많이 없기 때문에 어떤 소재가 등장하더라도 반드시 부족하게 돼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는 어떻게 버텨왔을까. 결국 기업 대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대 정부, 국가 대 국가 차원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수입경로를 다변화하고 외국에서 기술 협력을 하고 외국 광산을 구입하는 노력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너희에게 이걸 줄 수 있으니 너흰 우리에게 이걸 줘’라고 말 수 있는 무기를 계속해서 개발해야 한다.” 

Q. 기술경쟁 시대에서는 혁신 스타트업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수님은 직접 소프트웨어 벤처를 창업하고 경영한 경험도 있으신데, 혁신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지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최첨단 기술이 시장에 나가려면 30년은 걸린다. 아무리 빨라도 10~20년은 필요하다. 그렇다면 국가가 20년, 30년을 계속 지원해줄 수 있나? 못한다. 장려금? 보조금? 얼마나 도움이 될까. 차라리 세금 감면이 낫다고 본다.”

Q. 첨단기술을 활용한 혁신 스타트업이 생존하기 굉장히 어려운 환경으로 보이는데?

“사실 스타트업 입장에서 제일 좋은 건 쌀장사다. 쌀의 존재를 우리가 이미 알고 있고, 시장도 형성돼 있어서다. 우리가 신품종으로 개발한 쌀이 기존 쌀 대비 맛있는지, 저렴한지 정도만 비교하고 홍보하면 된다. 반면 양자 암호통신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하자. 일단 시장이 없다. 누군가가 관심을 보이더라도 양자가 뭔지, 양자 암호는 뭔지, 양자 암호통신은 뭔지, 이것이 상품화되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등등 설명하고 또 설명해야 한다. 관심을 보이는 대기업이 등장해도 불안하다. 3년 뒤 똑같은 걸 만들기 때문이다. 기술탈취라는 이슈가 생긴 거다. 그래서 스타트업이 최첨단 기술을 아이템으로 가져가는 건 리스크가 굉장히 크다. 게다가 한 가지 기술만으로는 상품을 만들 수 없다. 100개 기술이 필요하다면 99개는 남이 가진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복잡하고 어렵다.”

Q. 시대 변화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대고객 서비스에도 변화가 필요할 텐데, 관련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우리나라 기업에 필요한 건 기술혁신 플러스(+) 서비스혁신이다. 기술혁신은 기술이 진보해서 지금까지 없던 기술이 등장하고 상품에 반영되는 거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 있다고 하자. 새 기술이 들어갔다고 가격을 두 배, 세 배로 올릴 수 있을까? 스마트폰을 300만원에 팔면 사겠다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스마트폰의 가격은 떨어질 거고 결국 0원에 수렴할 거다. 제조업이 발달한 국가에서의 공산품의 말로다. 반대로 1kg 1만원하는 고구마로 고구마 케이크를 만들면 1kg 10만원에 팔 수 있다. 똑같은 원재료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상품 가격을 10배로 불릴 수 있는 거다. 그게 서비스혁신이다. 그런 식으로 기술혁신과 서비스혁신을 같이 가져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윤 교수는 삼성전자의 지역전문가 제도를 언급했다. 삼성전자는 입사 3년 차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지역전문가를 뽑고, 이들을 전 세계 90여 개국에 보낸다. 주재원과 달리 업무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저 해외 문화를 익히고 인적 네트워크를 쌓으면 된다. 윤 교수는 “이 지역전문가 제도가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게 만든 1등 주역”이라고 했다. 기술혁신, 서비스혁신, 나아가 현지화에 대한 고민이 더해질 때 세계를 주도하는 기업이 될 수 있다는 당부다.


대담= 전규열 대표이사 겸 발행인
정리·사진= 염보라 기자

윤태성 교수 프로필

- 현) 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 일본 오픈놀리지 대표이사
- 일본 경제산업성 경제산업연구소 연구원
- 두산기계 엔지니어
- 도쿄대학 대학원 공학 박사
- 부산대 금속공학 학사 및 산업공학 석사
- 경남고 졸업
- 《기술전쟁》 《과학기술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탁월한 혁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등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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