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식량 위기 언제 올지 몰라…식량 안보 차원의 농업 정책 필요”

[공감신문] 유안나 기자=“경제, 금융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이는 개인들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이나 정책당국도 마찬가지다.”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 소장은 지난달 30일 공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정대영 소장은 최근 금융권에서 화두인 ‘홍콩 ELS 사태’를 언급하며, “새로운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정 소장은 “경제를 길게 보면 같은 사건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1997년 IMF 경제 위기 직전 다이아몬드 펀드 사건, 키코 사건이 대표적인 예로, 홍콩 ELS 사태와 똑같은 구조다”라고 밝혔다.

그는 “다이아몬드 펀드 사건 때는 금융기관들이 크게 피해를 봤다면, 키코 사건 때는 기업들이, 그리고 이번 홍콩 ELS 사태에선 개인 위주의 피해가 발생했다”며 “그런데 이런 문제는 미국 등 금융 선진국에서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저는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금융당국의 방향이 틀린 것 같다”며 “물론 (경제) 발전 과정에서 실수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10여 년의 단위로 똑같은 사건들이 발생한다는 건 금융기관 및 정책 당국의 무책임, 경제·금융 공부의 부족이다. 공부를 하면 이렇게 반복적으로 일어나면 안 된다는 걸 금방 알게 된다”고 쓴소리를 냈다.

아울러 정 소장은 국민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국내 경제 문제 중 하나로 ‘농업 문제’를 꼽고 싶다고 했다.

정 소장은 “농업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굉장히 적고, 사람들이 당장 관심을 갖지 않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며 “그러나 기후위기도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식량 위기는 어느 순간 올지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30% 정도 안 된다. 이는 이스라엘 등 ‘사막 국가’보다도 떨어지는 것”이라며 “우리나라보다 식량 자급률이 낮은 나라는 싱가포르, 홍콩 등과 같은 도시 국가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 훨씬 높다”고 말했다.

또한 “농촌에서 보면 쌀은 남아돌지만 밀, 보리, 콩 등의 자급률은 1%대로 대부분 수입하고 있다. 돈을 주고 못 사면 하루에 한 끼 먹기도 어렵게 된다”며 “돈으로 해결 안 될 수 있는 게 식량이다. 북한이 남한을 침입하는 것보다 더 가능성이 높을지 모르는 게 식량 위기 문제”라고 밝혔다. 

정 소장은 그러면서 “농업 정책은 농민들에 대한 소득 지원이 아닌, 식량 안보라는 차원으로 시각을 바꿔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며 “결국 국방비를 지출하는 것과 같이 식량안보에도 지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대영 소장과의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 소장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 소장

Q. 지난 4일 기획재정부가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4가지 파트 중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면.

"경제정책방향의 4가지(민생경제 회복, 잠재위험 관리, 역동경제 구현, 미래세대 동행)를 보면, 단기적인 측면으로 내용이 충실한 편이고, 각각의 제목도 잘 지은 것 같다. 그런데 꼼꼼히 읽어봤을 땐 대부분 방향은 있지만 장기 구조적 대책에 대한 구체성이 없다. 이럴 경우 올해 발생하는 (경제)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발생하는 비슷한 문제는 또 발생할 것이다. ‘경제’는 사람이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데, 특히, 4가지 중 ‘면생경제 회복’과 관련해 ‘괜찮은 일자리’ 내용이 미흡한 것 같다. 취약계층 지원, 물가 안정 등의 내용은 훌륭하면서도, 일자리 창출에 대한 단기·장기적인 대책이 있어야 진정한 ‘민생 대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Q.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선 ‘자산 격차 대물림’이 두려워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 

"맞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소득 불평등은 꽤 심하지만 소득 불평등이 누적된 게 자산 불평등이다. 이미 소득 불평등이 오래된 만큼 자산 불평등은 더욱 심각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소득·자산 불평등이 아주 심각할 것이라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다는 점이다. 즉 신뢰할만한 정부 발표 통계가 없다는 의미다. 책 ‘21세기 자본’의 맨 뒷부분을 보면 ‘통계를 다루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저버리는 것이다’라는 인상적인 마지막 문장이 적혀 있다. 그만큼 통계는 굉장히 중요하다. 통계를 봐야 문제를 알고, 답이 나오고 또 경제 시장,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서 고쳐질 수 있다.

가장 쉬운 통계가 소득 불평등 통계다. 우리가 세금을 낼 때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사람과 가장 적게 내는 사람이 있다. 이에 대한 정보를 개인 식별 번호 없이 발표하면, 소득 불평등 통계를 알 수 있고, 부동산, 금융자산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예로, 스웨덴의 경우 국민들이 세금을 얼마나 냈는지를 개인 식별번호 있는 그대로 공개한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 세금을 얼마나 냈는지 다 알게 되는 셈이다. 한국은 그렇게까지 하는 건 힘들더라도, 통계만 제대로 공개하면 정부의 ‘가족 정책’ 일환으로 지원금보다 저출산 관련 문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Q. 현 상황에서 필요한 정책은 무엇일지.

"현재는 어쩔 수 없이 고령화 사회, 인구 감소 시대로 가는 상황에 적응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조금 더 쉽게 적응하고, 고통을 적게 하는 정책들이 더 필요하다. 우선, 노동력을 재분배해야 한다. 기술 훈련이 필요한 제조업, 건설업, 농업 등 생산 현장에는 청년들이 근로할 수 있게 하고, 단순 반복적으로 간단한 업무가 가능한 동사무소. 구청 민원 업무, 금융기관 등에는 노년층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루이틀 배워서 할 수 있는 업무는 어르신들을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키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거꾸로 되어 있는 것 같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고민을 해야 한다. 사람 수가 줄면서 군대도 굉장히 문제가 많다. 저출산·고령화·인구 감소 등의 상황에서 병력을 유지하기 위한 논의가 굉장히 중요한데, 별로 이뤄지지 않는다. 지금 이러한 문제들을 고민해야 할 때다."

Q. 집필하신 책 ‘성장과 일자리 해법은 있다’에서 출산율 저하는 비싼 집값·집세로 인한 해악이라고 언급하셨다. 집값 문제가 잡히면 해결될지.

"과거 젊은이들이 결혼을 안 하는 걸 이상하게 생각했다면, 요즘은 비혼, 저출산 등이 오히려 일반화 및 문화가 되다 보니 웬만한 정책으로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집값·집세 문제 해결은 저출산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그래서 정부가 지원금을 주는 정책보다는 집값 해결이 저출산에 훨씬 효과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Q. 인구 감소는 산업 경쟁력 약화 문제와도 연결된다. 저성장 국면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지금 저성장과 인구 감소·고령화는 서로 악순환 관계이다. 국가가 성장이 잘 되고, 집값도 안정되면 미래의 희망이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어려워도 출산을 선택할 텐데, 그걸 포기하니까 또다시 저성장이 되는 구조다.

경제 성장을 결정하는 건 크게 노동, 자본, 생산성이다. 노동은 저성장 및 인구 감소로 생산 가능 인구 역시 줄고 있으며, 자본은 신규로 투자를 하기엔 포화 상태다. 자본 자체가 부족한 건 아니지만 경제가 선진화되면 대개 자본을 늘리기가 어려워진다. 남은 건 생산성인데, 우리나라는 생산성이 무척 낮은 나라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총요소 생산성이다. 대표적인 게 경제, 정책의 투명성으로 어떤 제도가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영되는지, 사회가 돌아가는 데 있어서 얼마나 신뢰 구조가 잘 갖춰져 있는지에 대한 정성적인 것들이 있다. 앞서 말한 노동, 자본이 눈에 보이는 정량적인 것이라면 정성적인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이런 총요소 생산성을 높여야만 한다."  

Q. 지역·기업·산업군 등에 쏠림 현상도 한국 경제의 문제로 꼽힌다. 해결방안은 무엇일지.

"쉬운 과제는 아니다. 수도권 쏠림이나 대기업, 산업 집중은 경제학,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보더라도 굉장히 위험하다. 골고루 분산이 잘 되어 있어야 충격에 강하기 때문이다. 결국 교과서적인, 원론적인 해결방안은 경쟁이 많이 몰리는 곳을 터줘야 한다. 대표적으로 직업군에선 의사가 되기 위해 많이 몰리는데 이를 위해 의사 수 또는 관련 분야 지원을 늘릴 수 있고, 사람이 줄어드는 농촌, 지방 등에 대해선 진입을 위한 지원 확대가 방법이겠다. 또한 쏠림 현상을 막으려면 사회 지도층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이 가운데 예를 들어 사회 지도층들이 강남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사는 것도 좋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움직임이 나타나야 흔히 사람들이 원하고 기대하며 추구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이 다양해지지 않을까 싶다."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 소장과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 소장과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Q. 4월 총선을 앞두고 이것만큼은 속도가 나야 한다고 보시는 정책이 있으신지.

"많이 있다. 지금 한국은 금융개혁, 농업 문제, 중소기업 문제, 연금개혁 등 여러 문제가 많이 있지만 이 중에서도 지금 당장 했으면 하는 건 의대 정원 확대다. 정부가 칼을 빼 든 정책에 대해선 더 이상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추진되면 다른 개혁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신뢰도 높아질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시간은 많지 않다. ‘골든타임’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고령화가 빨리 진행될수록 점점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어려워진다."

Q.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저희 연구소를 통해 일제강점기 시대 GDP 국민소득 통계를 진행하고 싶다. 일제강점기 시기는 식민지 등 여러 논란이 많다. 그럴수록 더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는 우리의 통계를 잘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앞서 만드신 분이 불편하실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볼때 일제강점기 시대의 GDP 국민소득 통계에 대한 객관성이 결여된다고 생각이 들고, 이를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통계화하고 싶다."

대담= 전규열 대표이사 겸 발행인(경영학 박사)
정리= 유안나기자

[정대영 소장 프로필] 
- 송현경제연구소장
-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주임교수
- 한국은행 프랑크푸르트 사무소장
- 한국은행 금융안정분석국장
-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서울대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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