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느리게 걷기] 오즈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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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의 느리게 걷기] 오즈의 마법사
  • 피터신 칼럼
  • 승인 2017.01.0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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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를 찾아서
피터 신 칼럼니스트

[피터신(Peter Shin) 칼럼니스트] 넌 아직도 그러고 사니? 날 잘 아는 친구가 한 말이었다. 그 순간, 난 별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까지 내 삶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날 많이 이해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친구가 한 말이라 약간의 충격과 함께 그의 말을 멍하게 곱씹어보게 된 거다. 내가 파랑새를 한마리라도 수집이나 했으면.. 아님 박제된 파랑새들을 매일 저녁 한 마리씩 쓰다듬으며 다시 한 마리를 잡겠다고 망원경과 잠자리채를 들고 나가기나 했으면.. 그랬다면, 그의 그런 물음은 이렇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너, 그 파랑새 어디서 어떻게 얼마주고 잡았니? 파랑새는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고도는 오는 건지 마는 건지, 난 아직 있지도 않는 파랑새를 쫒고 있고 이미 백골이 盡土된지 오래인 Godot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캐나다의 대표적 현대소설작가인 Nino Ricci의 'the Origin of Species'의 서평은 너무 상큼했다.

.. 신을 닮은 자신의 이미지와 동물적 현실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삶에서 웃음과 페이소스를 찾을 수 있는 휴먼 코미디..  ㅎ

.. a human comedy that finds laughter and pathos in the space between our god-like 'self' image and our animal reality..

벌써 오십년을 넘게 살아오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파랑새?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소리 쯤 될 것이다.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릴 다 하나, 아직 철이 덜 든 게로군, 내 친구 말대로.. 넌 아직 그러고 사니..? 이런 반응 등이 통상적일 것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나이든 만큼 소위 철든 시늉을 해야 하는 한국 사회는 내게 맞지 않았었다. 인간들 사이에서 쓸데없고, 소모적인 긴장감 등은 정말 재미없었지만 우리의 강산은 정말 너무나 아름다웠다. 인간을 떠나, 도시를 떠나 산으로 강으로 떠나는 여행은 그 자체가 내게는 거대한 파랑새였다.

난 오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무지개 저편 너머 높은 하늘에 날아다니고 있을 파랑새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노래가 탄생한 위대한 영화 '오즈의 마법사'도 함께.. 파랑새를 쫒는 내 심정을 달래주는 기가 막힌 진군가가 있었으니 그것은 너무나 많이 들어 이젠 지겨운 분들이 많을 수도 있는 노래, Over the Rainbow가 되겠다. 난 이 노래는 아무리 들어도 지겹지가 않았다. 들을 때 마다 설레는 가슴은 언제나 똑같았다. 파랑새는 없어.. 없다구!! 이젠 진저리가 나! 라고 외칠 때 마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던 노래.. 그래서 또 다시 힘을 얻고 다시 길을 떠났던 피터, 길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길은 시작된다며 또 보따리를 싸곤 했던 피터.. 마음의 여정이었든, 책속으로 기어들어가 새로운 인물과 역사적 시공간으로 떠나는 타임머신 여행이건, 아님 지프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며 또 기차를 타면서 떠나는 물리적 여행이었든.. 그 노래는 내 가슴속 어딘가에 계속 자리하고 있었다. 

몇 세대를 걸쳐 같은 노래가 이렇게 많은 당대의 유명 가수들에 의해 불려 졌고 또 앞으로도 불려 질 노래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인데, 난 1958년 젊은 시절의 사라 본(Sarah Vaughan) 아가씨가 부른 버전이 가장 마음에 들지만 사실은 이 노래가 가지는 신비한 분위기 때문인지 노래를 부르는 모든 가수들 마다 자신의 파랑새를 가슴에 품고 부르는 듯하다. 그래서 모두가 개성이 넘치고 아름답다. 아마도 아직도 파랑새를 꿈꾸는, 또 앞으로 태어날 세대들에게 꿈이란 게 있는 한, 우리 인간이라는 꿈을 먹고 사는 동물은 계속해서 이 노래가 필요할 것이다.  

 

 

1900년에 발간된 프랭크 바움(Frank Baum)의 The Wonderful Wizard of OZ 는 거의 시리즈로 발간되어 왔는데 1939년 MGM에서 영화를 제작하여 공전의 히트를 침으로써 대중들에게 갑자기 다가서게 된다. 저자 바움은 감사의 글을 통해 그림(Grimm) 형제와 안데르센(Andersen)에게 사의를 표했는데 그 저명한 유럽 작가들의 글에서 잔혹성을 배제한 소위 미국 스타일의 대표적 동화가 탄생한 것이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를 풍자하고 있다며 오즈의 마법사 전문가들이 말하길, 동쪽 마녀, 서쪽 마녀는 당시의 은행들과 철강 산업의 횡포를 말하고 있고 허수아비는 빚에 시달리고 있는 농부를, 깡통 인간은 산업화된 북부에서 너무 기계적으로 일만하다가 인간의 가슴을 잃어버린 공장 노동자들.. 기타 등등.

도로시가 오즈의 마법사가 있는 에메랄드 시티로 가기 위해 먼치킨 랜드를 떠나는 길은 노란 벽돌이 놓여 진 길(Yellow Brick Road)이었는데 이 또한 저자 바움의 시절의 금 본위(Gold Standard) 주의를 나타내며 도로시가 은색 구두(영화에서는 빨간 루비색)를 신고선 노란 벽돌 길을 춤을 추며 내려가는 것은 16 대 1 의 금에 대한 은의 비율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것들이 아니었다. 1939년, 외세 앞에 맥을 못 추고 나라를 팔아먹은 위정자들에 의해 일제에 강점된 후 그들의 수탈이 극에 달하고 있을 즈음, 1936년 그나마 손기정 옹의 마라톤 우승으로 민족적 카타르시스를 겨우 해소하고 있을 때 200년도 채 안 되는 건국의 역사를 가진 미국의 한 시민은 세기의 역작이라고 하는 이 영화를 만든다. 빅터 플레밍.. 같은 해 발표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로그는 아카데미 최우수 감독상을 받는다.

'오즈의 마법사'의 원 저자 바움은 그보다 훨씬 이전 1900년 당시 미국을 이끌어갈 주인공으로서의 수많은 어린아이들의 위한 꿈과 용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으며, 꿈보다 해몽이 화려한 비평가들의 이야기를 믿는 다 치면, 이미 탄탄한 국가 모습을 갖춰가고 있던 미국의 자본주의 사회에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기도 한 것이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라 하는 '오즈의 마법사'가 이토록 평가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각고의 노력 끝에 도로시와 친구들은 에메랄드 성을 찾아 들어 갔지만 오즈의 마법사는 결국 사기꾼이라는 게 밝혀진다는 영화의 스토리. 그럼 우리의 도로시(Dorothy)가 찾아 헤메던 파랑새, 텅 빈 머리를 찾으려 했던 허수아비, 깡통인간이 찾아 헤메던 따뜻한 심장, 겁쟁이 사자가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용기'.. 이들은 찾을 수 없는 허상을 쫒아온 것이었을까? 도로시의 강아지 토토에 의해 정체가 밝혀진 오즈의 마법사는 오래전 열기구를 타고 오즈로 날아온 노인에 불과했다. 그를 최고의 마법사로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도로시와 그녀의 친구들에게 그는 하는 수 없이 최신형이라며 가짜 뇌와 심장, 그리고 용기가 생긴다는 가짜 묘약을 만들어 준다. 에메랄드 시티를 떠나고 싶었던 그는 이제 머리가 생겼다고 기뻐하는 허수아비에게 그의 도시를 물려주고 도로시와 인간의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열 기구를 만든다. 하지만 토토의 실수로 줄이 끊어진 열기구는 노인만 태우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가지고 싶었던 것을 얻은 도로시와 친구들은 이제 歸家를 위한 마지막 모험의 여정을 떠나게 되는데.. 용기가 생겼다고 믿은 사자는 숲에서 동물들을 괴롭혀온 무서운 거미를 물리치면서 이제까지 군림해온 호랑이를 제치고 숲의 제왕으로 복귀하게 되고, 각자 원하는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찾았다고 믿은 친구들은 허수아비는 에메랄드 시티로, 깡통 인간은 윙키 시티로 가게 된다. 그리고 우리 도로시는 꿈에서 깨어나게 되면서 무사히 토토와 함께 캔사스의 농장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

 

 

어느 일요일 오후, 중미 니카라구아의 수도 마나구아의 로블레스 호텔에서 혼자 쉬고 있었다. 골프를 치고 왔는지 그냥 몸이 좋지 않아 계속 쉬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당시 진행하던 프로젝트에 너무 빠져 좀 지친 상태였었는데 그때 TV에서 계속 방영이 되었던 영화가 오즈의 마법사 였다. 경제가 어려운 이 나라의 방송사는 저작권료가 여의치 않았던지 계속해서 같은 영화를 내 보냈다. 마라톤 상영이라고 일컬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 영화가 또 다시 오즈의 마법사.. 난 잠들다 깨다를 반복하며 그 전에도 수없이 많이 본 오즈의 마법사를 계속 봤다. 그러면서 침대에 엎드려 내 태블릿 PC 노트북 화면에 그린 그림이 위의 웃기는 스케치다. 도로시 너 두고 봐.. 항복해라~ 응! 이러면서 하늘에 글씨를 써 대는 푸른색 마법사 할망구가 어찌나 귀엽던지..

내가 찾아왔던 파랑새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내가 찾고 싶었던 에메랄드 시티는 어떤 세계였고 그곳의 오즈의 마법사는 도로시처럼 만나 보기나 했을까..? 그리고 내가 거쳐 왔던 난장이 먼치킨 나라와 나쁜 마녀가 지배하는 원숭이 제국들은 어디였을까. 내가 위기에 빠졌을 때 날 구해주고 Yellow Brick Road 와 같이 나갈 방향을 가르쳐 준 수호천사와 같았던 사람들은 누구였지?

내가 찾으려고 했던 파랑새는 아마도 물증이 없이 심증으로만 사건의 주변을 맴돌아야 하는, 답답하긴 하지만 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실체가 없는 형이상학적 상태 (state)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님, 저 아름다운 무지개는 엄연히 實在하는 물리적 현상이라 햇살에 말라 증발되어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무작정 길을 떠나며 벌어지는 많은 사건들과 거쳐야 하는 많은 종류의 사람들, 그러며 알아가는 새로운 감정들.. 그러한 과정(process) 그 자체 였는 지도 모른다.

살면서 머리와 가슴 그리고 용기의 세 박자가 얼마나 잘 맞았을까를 생각해 보면 태생적으로 타고난 머리는 크게 모자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조직 생활의 여러 이정표(milestone)들을 생각해 보면, 언제 부턴가 따뜻한 가슴이 사라졌고, 용기는 만용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었다. 극단적인 자의식과 독선은 스스로를 투사로 생각하게 했고 스스로 옳다고 믿는 것이면 조직의 어떤 존재와도 부딪쳤으며 물불을 가리지 못했다. 지금 생각 컨대 이 당시엔 내 자신이 스스로 파랑새였던 것 같다. 그 당시 날 죽 지켜봐오던 내 수호천사였던 형님이 내게 말했었다.

.. 네 가슴엔 따스함은 없고 모래알 만 가득해. 

.. 넌 그저 외로운 늑대 같구나.

.. 네가 나보다 먼저 죽는다면 네 초상집엔 아마 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난 즉시 완전히 다른 길로의 여정(journey)을 떠나게 된다. 가능한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길.. 하지만 그 길은 내가 전혀 가보지 않았던 위험한 길이었는데, 인간에 대한 선한 감정과 경험만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또한 거의 또래 집단들 속에서만 살아온 나로서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내 앞에서 웃으며 유쾌한 말들을 쏟아내던 그 아름답던 모습들 그대로가 그 인간을 나타내는 것인 줄 알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사람간의 관계라는 것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참으로 많은 수업료를 지불하고 나서 치명적으로 더 잃기 전에 많은 걸 배웠다 자위하며 그 길을 벗어나게 된다. 이 당시의 내 파랑새는 선한 인간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살아 움직이며(organic) 발전해가는 공동체, 뭐 그런 황당한 것이었다. 전혀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을 10분 만에 사귀고, 아니 사귀었다고 믿고,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해 왔던 사람들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사귀면서 또 나를 중심으로 그들 간의 네트웍을 형성하려 했다. 내가 주로 몸담아 왔던 HP를 비롯한 SUN, Oracle 등의 글로벌 IT 분야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잠시 일했던 EDS와 AT Kearney 컨설턴트 친구들, 선후배 교수들, 출판계 친구, 영화배우, 발레리나, 금융, 디자인, 그리고 청담동의 괜찮은 레스토랑과 까페 사장들 등등.. 나를 중심으로 모이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 그들이 모이면 훌륭한 전문가 집단이 되어 그들이 하는 말은 사회의 Opinion Leading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뭐 그런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클럽.. 그런 꿈을 꿨었다. 힐튼 호텔에서 launching 행사까지 해가며, 낮에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밤엔 새벽 서너시까지 친구들을 만나고, 하루를 정확히 이틀로 살면서 수도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었다. 거의 2년 간 집은 잠시 눈 붙이고 샤워나 하고 나오는 곳이었다. 참 웃기는 파랑새를 쫒고 있었던 거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친한 친구들을 제외하면 다 물거품 같은 대상들이었다. 그때의 열정과 낭비해 버린 시간과 돈을 생각해 보면 좀 섬뜩하기까지 하다. 기가 이리 센 사람은 처음 본다며 한의사들도 혀를 내 두루는 체력을 가진 나라서 버텨냈겠지만 주변에서 날 본 사람은 아마 제대로 된 인간으로 봤을리 없겠다. 급기냐 나 자신에 대한 신뢰 상실은 물론 인간에 대한 염증만 가득한 채 다시 난 혼자만의 세계로 돌아오고  또 전혀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세계의 열강 및 중견 국가들을 제외한 소위 제삼세계, 개발도상국으로 불리는 몇 나라들로의 심도 있는 여행을 떠난다. 물론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것이었지만.. 나라를 이끄는 위대한 지도자도 없고, 사회기반시설도 열악하고, 자본도 미흡한, 그저 가진 것이라곤 사람, 아름다운 자연과 몸뚱이 하나 밖에 없는 그런 나라들로의 여정이 시작되었는데 이때의 내가 찾고자 했던 파랑새는 그저 '순수한 무엇' 이었던 것 같다. 자연다운 자연, 사람다운 사람.. 술다운 술, 일다운 일, 우정다운 우정, 거칠긴 해도 배반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러나 이 역시 찾고자 했던 것들에 대한 작은 단서들을 발견한 것으로 만족하며 갑작스레 끝나게 된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긴 겨울을 가진 이곳 캐나다에 살게 되면서 나의 파랑새는 단연코 내 가족이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난 가족이라는 가치와 울타리의 중요성을 늦게나마 깨닫고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하는지 모른다. 나의 가장 막강한 수호천사가 바로 내 가족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서나마 깨달은 것이다. 사실 난 내 평생 이렇게 가족들과 밀접하게 지내 본 적이 없었고 소박함의 가치, 성실한 일상의 가치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이러한 가족의 소중함을 벅찬 심정으로 느끼고 가족들과 소소한 일상적 삶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달콤하고 신나는 것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파랑새는 내가 설정하고 쫒아 온 것이 아니었다는 거다. 우리의 가정에는 언제나 이 파랑새가 함께 살고 있었는데도 이제껏 내 눈에만 전혀 보이질 않았었던 것이다.

 

도로시는 토토를 괴롭히는 이상한 아줌마를 피해 토토와 함께 멀리 달아나려 한 것이었다. 이 착한 소녀의 파랑새는 귀여운 토토와 함께 편안하게 사는 것. 결국 그녀는 일견 사소해 보이는 그녀의 바램을 위해 온 인생을 거는 험난한 여정을 떠난 것이었는데.. 우리의 꿈은, 우리가 찾고자 하는 파랑새는, 소박하고 원대함을 떠나 그 자체가 너무나 귀중한 것이고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객관적이 잣대로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자신이 그려온 파랑새를 찾을 수 있건 없건, 존재 하건 안하건 그조차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문제는 그러한 꿈이 있느냐, 언제까지나 계속 꿈을 꾸며 살고 있느냐 라는 것이며, 꿈꾸고 있는 자가, 願(desire)이 있는 사람들이, 그래서 그 꿈을 이루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행복하고 건강 하는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처럼 도로시와 친구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자신들이 원하는 바들을 모두 이루어 갈 수 있었다. 엉터리 오즈의 마법사가 만들어준 가짜 머리와 마음 그리고 용기들은 그들 마음에 플라시보 효과로 작용하게 되고, 모험이 가득했던 즐거운 스토리의 극적 마무리로 손색이 없게 된다.

 

.. 넌 그 나이에 아직도 꿈을 가지고 사니?? 

 

라고 묻는 것은 정말 정신 나간 질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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