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조병수 에세이] 밥 줄래요?…얼마나 더 길거리에 나앉아야 하나

할 수 있는 일거리 만들면서 미래 도모하는 방법 찾아야

조병수 칼럼 | 기사입력 2016/10/23 [15:46]

[조병수 에세이] 밥 줄래요?…얼마나 더 길거리에 나앉아야 하나

할 수 있는 일거리 만들면서 미래 도모하는 방법 찾아야

조병수 칼럼 | 입력 : 2016/10/23 [15:46]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몇 년 전 어느 봄날 오후에 분당 미금역 쪽으로 가야 할 일이 있었다. 봄 햇살을 맞으며 탄천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노라니, 전날 저녁에 잠시 내린 봄비 덕분인지 나뭇잎들이 몰라보게 녹색빛을 띠었다.

 

그렇게 자연의 경이로움을 만끽하며 걸어가는데, 저만치 자전거도로 옆 풀밭에 웬 사람이 길게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다가가 보니, 멀쩡한 차림의 웬 남자가 신발 한 짝은 벗어 제친 채 누워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술에 취해 드러누워 있는 것 같았다.

 

봄날이긴 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대책 없이 풀밭에 얼굴을 대고 누워있어서는 안될 것 같아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여보세요’라고 불러보았으나 미동도 않았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빛에 약간 마르고 희끗희끗한 머리털을 가진 초로(初老)의 멀쩡한 남자인데, 술 냄새 같은 것도 전혀 나지 않았다. 숨이나 쉬고 있는지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어깨 쪽을 약간 흔들어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덜컥 겁이 났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순간적으로 얼굴이 미세하게나마 움직이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더 크게 ‘이거 보세요’라고 부르니, 그제서야 약간 얼굴을 돌리면서 마치 장난처럼 ‘밥 줄래요?’라고 한마디를 던지는 것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별일 없는 것 같아 안도하면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했다.

 

“왜, 배고프세요? 그래요. 밥 드릴게요.”

 

더 큰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갑을 꺼내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주었다. “여기 만원 드릴 테니, 어서 가서 한 그릇 사서 잡숫고 벌떡 일어나세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돈을 손에 말아 쥐고는, 봄날의 햇살에 눈이 부신지 미간을 찡그리면서 또 한마디를 보탠다.

 

“한 장 더 주세요.”

 

“아니, 지금 그것 밖에 없어요. 나도 지금 은행가는 길인데, 어서 일어나요. 그거면 밥 한 그릇은 사 잡술 수 있잖아요.”

 

그제서야 그 사람이 “할렐루야, 부처님 고맙습니다” 하면서 부스스 일어나 앉더니, 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난감했다. 상대편이 기독교신자인지, 불교도인지 계산해가며 말하는 것이 속임수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무슨 사정이든 간에 정말 끼니를 거른 탓에 기진맥진해서 힘을 못 차리는 것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스쳐갔다.

 

그러는 순간에, 마침 순찰차량이라고 써 붙인 하얀색 전동차가 자전거 길을 따라 천천히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어쨌거나 힘들어하는 이 사람을 좀 태워가거나 도와주게 할 요량으로, 그 차를 향해 손짓을 하며 ‘아저씨~’하고 소리 높여 외쳤다. 그런데 그 차는 잠시 주춤주춤하는 것 같더니 그냥 제 갈 길을 가버렸다. 차가 진행해오면서 이쪽 광경을 보았을 테고, 또 부르는 소리에 백미러를 들여다 보는 것도 같았는데도 못들은 척 외면하고 가는 그 모습이 참으로 씁쓸했다. 골치 아픈 일에 끼어들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하천 주변을 살피러 나온 순찰차량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면서도 말이다.

 

그렇게 차를 부르는 소리에 놀랐던지 앉아 있던 사람이 주섬주섬 자기 신발을 찾아 신으면서 또 뭐라고 중얼거렸다.

 

“어디로 가십니까?”

 

“뭐라고요?”

 

“어디로 가시느냐고요”

 

“그건 왜 물으십니까?”

 

“모셔다 드리려고요.”

 

아니, 그렇게 풀밭에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그냥 드러누워 있던 양반이 도대체 누구를 바래다 준다는건지,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도 그나마 그렇게 일어나서 움직이는 것을 보니 괜찮겠구나 싶어서 먼저 자리를 떴다. 길을 걸으며 뒤돌아보니, 그 사람은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다가 힘들다는 듯이 잠시 조그만 다리 난간에 기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다리를 건너 주택가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 자리를 떠나오는데, ‘멀쩡한 사람이 얼마나 진이 빠졌으면 그렇게 누어있나?’하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의복과 신발도 멀쩡한 사람이, 더구나 돈을 더 달라고 하는 걸 보니 조금 이상하거나 사기 치려는 사람이었나?’라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 까짓 것 속아도 만 원이네. 설령 구걸을 하기 위해서 그런 시늉을 했더라도, 어쨌거나 돈이 필요하니까 그랬겠지’ 라고 편하게 생각을 고쳐먹으려 했다.

 

그런데 금액의 다과를 불문하고 나름대로 좋은 일에 돈을 썼으면 마음이 가벼워져야할 텐데, 도리어 여러 가지 상념들이 꼬리를 물면서 마음이 아려왔다. 속는 것이든 어떻든, 어려운 사람을 보면서도 내가 너무 인색하게 군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발길이 무거워졌다.

 

'내 지갑 속에는 돈이 그보다는 조금 더 있었는데 왜 그 순간 거짓말을 했었나? 돈이 필요하다고 풀밭에 드러누워 있는 사람에게, 비록 속는 한이 있더라도 그냥 지갑을 털어주고 올걸 그랬네.’

 

‘아니야. 그 정도면 됐어. 그 사람이 ‘할렐루야, 부처님’ 하고 갖다 붙이는 걸 보니까 약간의 동정심 유발 구걸행위 같기는 했어. 그렇지만 흔들어서 깨울 때, 밥 줄 거냐고 묻는데도 왠지 웃음이 나오지는 않았어. 정신적으로 이상해서 그런다 치더라도 어쩌겠어. 그래도 진짜 국 한 그릇 사먹을 형편이 안되어서, 진이 빠져서 그럴 수도 있으니까. 아이고, 일단 한끼를 먹고 나면 어떻게 되겠지…’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탄천 풍경>

갑작스럽게 마주친 그 사람과의 일을 생각하면서 강가를 걸어가는데, 마음 한 켠으로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사유로 저렇게 풀밭에서, 거리에서, 지하도에서 서성이고 있을까'하는 안타까움이 피어올랐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자리를 찾지 못하고, 호구지책이 막연한 그 절박한 심정을 겪어보지 않는 사람들이야 어떻게 짐작이나 하겠나 마는….

 

그 얼마 전, 몇 만평이나 되는 공장터가 인적도 없이 휑하니 비어있던 남해안의 한 조선소 부지에 서있을 때 느꼈던 처연함이 겹쳐서 떠올랐다. 금융위기 때문이든, 경영진의 잘못 때문이든 간에, 수많은 가장들과 한창 때인 젊은이들이 갑자기 생업의 터전을 잃고 몇 달 째 밀린 임금과 퇴직금도 못 받은 채 속절없이 거리로 내몰린 그 회사의 본관건물 앞에는, '마산수출자유지역'임을 기리는 그 시절 국무총리 명의의 소담한 표지석이 놓여져 있었다.

 

지난 여름, '마산의 눈물'이라는 제목 하에 해외로 팔려갈 운명이라는 700톤짜리 초대형 크레인이 잔해로 변한 공장터 위에 덩그러니 서있는 사진으로 주요일간지의 지면을 장식하던 그 회사였다.

 

'쌀밥에 소고기국"이 소원이던 우리 선대들이 피땀 흘려 보릿고개 겪는 고생만은 않도록 만든 이 나라이다. 그런데 이젠 그 포만감에 겨워서인지, 나 혼자만 잘살면 된다는 것인지, 어지간히 소란스럽다. 우리경제의 어려움을 지적하는 얘기들도 수시로 주요 신문의 머리기사로 나온다. 온갖 구조조정 얘기들에다가, 언제부터인가 툭하면 나오는 컨설팅회사 이야기도 단골손님으로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새마을 운동을 일으키고, 모랫바닥에 세계적 조선소를 세우고, 반도체회사를 만들며 한강의 기적을 주도하고 견인해온 분들이 컨설팅회사에다 물어보고, 남들 하던 대로 따라서 그 일들을 추진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비올 때 우산 뺏지 않겠다”는 금융당국자들의 말들도 공허한 이야기임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채권은행들의 “채권회수 본능” 앞에, “자율협약과 구조조정지원”이란 제도들은 채권단의 채권회수기회를 늘리는 역할 외에는, 어려움에 처한 회사와 산업을 살리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수년 전 한 언론계 중진과의 대화 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조선, 철강산업 같은 국가장치산업은 한번 무너지면 일으키기 힘들다. 삼면이 바다이고 섬들도 많다. 열악하고 노후한 연근해 수송수단을 교체하고 확충해서 도서지역 접근성을 높이는 등 정부발주를 늘려야 한다. 그렇게 내수를 키워나가면서 조선산업을 살려야 한다.”

 

그 말을 들으며, ‘굳이 컨테이너나 원유수송에 쓰이는 초대형 선박이 아닐지라도, 한때 성업을 이루던 원양어업계의 노후 어선, 연근해 어선, 여객선, 해양경비선박과 해군함정의 교체와 현대화로도 어느 정도의 일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국내에서부터 수요를 늘리고 건조선박의 다변화를 선도해나가면, 세계 조선업 경기의 변화에 적응할 시간을 벌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풀리면, 그 나라의 노후화된 해양플랜트 교체수요가 아주 많을 것”이란 이야기도 그 나라와의 비즈니스에 밝은 이로부터 전해 들은 적이 있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는 금년 1월 중순에 해제되었다.

 

미국발 금융위기이후 미국 제조업의 기간인 자동차업계를 살리려고 오바마 대통령이 취한 경기부양책과 10년 이상 된 노후차량교체지원 프로그램으로, 미국 내 주요고속도로를 달리던 새 차들의 행렬을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세계 1위의 조선업이 우리의 기간산업이 아니었던가?

 

“2002년도에 해외에다 팔려던 하이닉스 매각이 불발된 후 3년만에 그 회사 주가가 15배나 폭등했다”는 사례를 비추어볼 때, 미래는 모르는 것이다. 감당할 수 있는 우리주변의 일감들부터 만들어주며 미래를 도모해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이제 또, ‘피켓’들고 항의할 대상조차 없어진 텅 빈 공장에서 거리로 내몰리게 될 가장들과 젊은이들이 또 다른 '밥 줄래요?'로 우리 옆에 드러누워 있게 될 지 모른다. 배곯지 않게 된 것이 몇 십 년이나 되었다고, 벌써 이렇게 허물어져 내려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너나 잘하세요”로는 안 된다. 우리사회 모두가 각자의 직분과 기본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해외매각되는 성동산업 마산조선소 야드에 있는 700t 골리앗 크레인(왼쪽). 오른쪽은 300t 크레인. 크레인을 제외한 야드내 조선관련 시설 대부분은 철거됐다. /연합뉴스
경남 고성군 동해면에 있는 SPP조선 고성조선소. 2년째 조선소 문을 닫은 이 조선소는 한때 근로자 1,500여명이 일하던 곳이다. /연합뉴스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