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29건)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딸아이가 하루 휴가를 냈다면서 수안보 온천을 가자고 했다. 찻길이 막히는 주말을 피해서 모처럼만에 어딘가를 같이 가자는 요청이니 거절할 수가 없어서, 친구와의 점심약속을 연기하도록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그렇게 가기로 약속한 월요일 아침에 일찍 잠이 깨길래 TV를 틀어보았더니, 대문짝 만하게 큰 글씨로 충청도 일원에 호우경보와 주의보가 내렸다고 나왔다. 큰비에 산사태도 주의하라고 했다.수안보를 가려면 고속도로야 속도를 낮추어서 가면 되지만, 그 근방에 가면 산길이 있어서 위험할 수도 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이리저리 고민을 하다가 살풋 다시 잠이 들었다. 그만 늦잠을 잔 셈이 되었다.아이와 아내에게 일기예보상황을 이야기했더니, 어쩔 수 없어는 하면서도 내심 아쉬워하는 기색이다. ‘날씨가 안 도와주니 그저 동네 사우나나 다녀오라’고 얘기하면서도 괜스레 내 마음도 무겁다. 중부지방에는 호우경보가 발령이 되었다지만, 우리 동네는 하늘만 잔뜩 흐린 정도일 뿐이다. 모처럼 얻은 휴가인데 그냥 주저앉으려니까 마음이 좋지 않은지, 딸아이도 그저 심드렁하다. 하릴없이 TV 채널을 돌려보아도 별로 마음에 닿는 것이 없다.‘차라리 이럴 바에야 한번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09-20 18:09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1삼십여 년 전의 기억으로 거슬러 가본다. 영국 런던에서 주말에 길가에다 주차하면서 열쇠를 차 안에 둔 채 문을 잠갔던 적이 있었다. 볼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는, ‘아차, 이를 어쩌나’ 하고 당황하고 있을 때, 무슨 영화에서나 봄직한 헌칠한 영국경찰이 다가오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쓰고 있던 모자 안에서 포장용 나일론테이프 같은 것을 풀어내더니, 두 겹으로 접어서 차창 틈으로 밀어 넣고 눈깜짝할 사이에 잠금 장치를 풀었다.낭패를 너무나 손쉽게 해결해 준 것이 고마워서 "생큐"를 연발하니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얘기하라"며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유유히 걸어갔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경찰의 정장모자에서 그런 테이프를 말아 넣고 다닌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또 그토록 의젓하게 움직이던 경찰이 그렇게 간결하고도 능숙하게 차문을 여는 기술을 가진 것도 놀라웠다.그뿐만 아니라, "다음에 또 일이 있으면…" 이라며 맑은 미소를 날리며 떠나던 그 경찰관의 모습은 정말 상큼했다. 1829년 런던경찰청을 만든 로버터 필러 경의 이름을 따서 'Bobby'라는 애칭으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09-17 11:54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2001년의 가을, 지금으로부터 15년전 그날. 9월11일 화요일 아침시간은 평소와는 달리 출근시간에 유난히 길이 많이 막혔다. 뉴저지에서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서 맨하튼 섬의 동쪽 해안도로인 프랭클린 D. 루즈벨트 이스트 리버 드라이브 (FDR Drive)를 따라 내려오는데, 차들이 거의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었다.긴급차량들의 사이렌과 경적소리가 점점 더 잦아지고, 늘어선 차들이 틔어주는 틈을 타고 무서운 기세로 남쪽으로 달려가는 모습들이 심상치 않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라디오를 틀었더니,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빌딩(1World Trade Center: North Tower)과 충돌했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경비행기가 충돌한 것처럼 이야기를 전하는데, 거리의 사이렌 소리에다가 흥분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뒤섞여 요란스러웠다.조금씩 움직이는 차들 틈으로 간신히 46가 파크 애비뉴에 있는 사무실 근처에 다다랐을 때는 벌써 오전 9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 때 또 다른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2 WTC: South Tower)과 충돌하였다는 말이 라디오에서 터져나오면서 "오, 마이 갓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09-11 13:16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작년 10월, 일본에서 근무했던 직장 선배의 안내로 몇몇 동료들 부부가 다카야마(高山)를 거쳐 일본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중부산악국립공원을 둘러보러 나섰다. 나고야(名古屋) 중부국제 공항에서 차를 빌려 두 시간 남짓 달려서, 에도(江戶)시대의 상가(商家)모습이 잘 보존되어있는 거리라는 다카야마 산마치(三町)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리려던 아내가 갑자기 "손 지갑이 없다"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들 놀라서 차 안팎을 이리저리 찾으면서 물어보니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내릴 때 가방이 쏟아졌는데, 그때 미처 못 챙긴 것 같다”는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간이휴게소인데다가, 그로부터도 30분이상 달려왔으니, 되돌아 가볼 수도 없었고 또 가본다 한들 찾을 수도 없을 터였다.여권은 따로 넣어두어서 다행이었으나, 용돈조로 나와 나누어서 보관하던 얼마간의 엔화와 한국 돈, 그리고 신용카드 등이 사라진 것이다. 돈도 아깝지만, 아내는 큰 딸이 얼마 전에 선물했다는 손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새벽부터 움직여서 도착한 첫 목적지에서 막 일정을 시작하려는 때에, 일행들의 여행분위기에 부담을 주게 되는 것도 속이 상했다.애써 착잡한 심정을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09-03 13:01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1992년 봄에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아 보는 날, 뉴욕의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 내려서 뉴저지 주(州)쪽으로 향하는데, 아기자기한 녹색공간을 예상하던 것과는 거리의 모습이 전혀 달랐다. 지저분한 콘크리트와 철근들의 잔해, 여기저기 낙서투성이의 건물들과 다리를 건너가며 본 도시의 풍경들이 조금은 어지럽게 느껴질 정도였다.다음날 아침, 뉴저지와 뉴욕의 맨해튼을 오가는 버스를 타고 같이 출근하던 선배가 ‘양복저고리 윗주머니에 20불짜리를 넣고 다니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길을 가다가 누군가가 칼이나 흉기로 위협하면 절대 손을 움직이지 말고 고개 짓으로 그 윗주머니를 가리키라’는 것이었다. 만약 지갑을 꺼낸다고 손을 안으로 넣어도 칼침을 맞을 수 있고, 또 백 불짜리 같이 금액이 크면 후환을 없애려는 차원에서 당할 수 있으니, 적당히 20불 정도를 목숨 값으로 늘 넣고 다니라는 조언이니, 정말 으스스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리고 ‘길을 걸을 때는 괜히 한 눈 팔며 두리번거리지 말고, 앞만 보고 걸으라’고도 했다. ‘괜스레 눈이라도 잘못 마주치면 시비 걸릴 수도 있다’는 말에 잔뜩 주눅이 들었다. 그날 오후에 부임인사 차 맨해튼 46가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08-26 10:10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땅이 울리는 것 같다. 음악이 흐르면 어디에서나 한결같이 흐느적거린다. 혼자서, 둘이서, 여럿이서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리듬을 탄다. 장대 깃발이 나부끼고, 어린아이를 무등 태운 아빠도 아이 손을 흔들며 같이 덩실거린다. 키큰 외국인들도, 날씬한 젊은이들도, 나이 듬직한 아저씨, 아줌마들도 연신 음악에 따라 몸을 흔들거린다.한여름 밤의 무더움을 압도하는 엄청난 열기와 젊음이, 드넓은 잔디광장 앞쪽으로 용틀임치고 있다. 휘황찬란한 조명과 청중들의 환호와 군무가 별천지를 연출한다. 그 뒤로는 삼삼오오 돗자리나 담요를 깔고 앉은채 손을 하늘로 찌른다. 뒤편으로 촘촘히 들어선 텐트들의 불빛과 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이 제각각 흐르는 음악에 장단을 맞추며 장관을 이룬다.젊은이들의 공연장면이라고는 고작 TV를 통해서나 접해보았고, 록 음악이라면 터부룩한 차림새에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이해할 수 없는 굉음을 내는 정도로만 인식하며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저만치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드는 흥겨움과 앉아있는 잔디밭을 통해 전해지는 그 리듬들이 어우러지면서 전혀 새로운 세계를 느끼게 해준다.다른 한 켠의 소공연장에서는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08-21 17:05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미국 뉴욕에 주재할 당시 보관하던 카드 중에 2001년 6월 11일에 발급된 뉴욕 세계무역센터(One World Trade Center) 방문증이 있다. 그 빌딩에 78층에 있던 지방자치단체 국제화재단 뉴욕사무소를 방문할 때 로비에서 입주회사에 약속여부를 확인한 후 사진을 찍어서 만들어준 방문객용 출입카드이다. 일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출입증을 반납하려고 했더니 안내원이 웃으면서 ‘기념으로 가지라’고 하길래, 사진이 들어있는 것이라서 버리지 않고 명함철에 꽂아 두었다.그런데 그 방문증 발급일자 3개월후인 9월 11일 아침 8시 45분경에 피랍된 여객기가 충돌하면서 9·11테러가 발생하고,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기 나서 불현듯 그 출입카드를 넣어둔 것이 생각나서 꺼내 보았다. 이제는 사라진 빌딩의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졌다.출입증에 적힌 6월 11일이란 날짜와 9월 11일, 딱 3개월 차이에다가 숫자도 6과 9로 상하가 바뀐 것 등을 바라보면서, 그날 아침 간발의 차로 피신해 나온 옛 동료의 이야기와, 차가 막히는 바람에 그곳에서 있은 약속시간에 늦어져서 화를 면한 인사 등 각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08-17 11:02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2009년 늦여름, 잠깐 미국을 다녀올 때에 에어캐나다항공을 이용한 적이 있다. 경유지인 밴쿠버공항에 내려서 잠시 쉬다가 서울행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서 탑승구 앞으로 다가가니까, 왁자지껄하는 분위기가 지금까지의 미국 공항 내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때와는 사뭇 달랐다. 외국여행을 하다가 보면 모두들 조용히 않아서 책을 보거나 나직나직 얘기를 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곳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서로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도 크고, 항공사 직원들이 좌석 순서대로 체크인을 유도하는데도 줄을 서서 차분히 기다리는 것 같지는 않다.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이 막무가내로 들어가다가 항공사 직원들에게 제지받는 모습도 보인다.비행기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서는 그 움직임들이 더욱 눈에 띄게 달라진다. 안전벨트를 풀어도 된다는 사인이 떨어지자 말자, 뒷자리에 있던 젊은이가 두세 자리 앞으로 나아가다가 사람들에 막혀서 멈추어 선다.공항청사로 발을 들여놓자 말자 마치 거대한 블랙홀로 빨려 가듯이 모든 사람들이 빠르게들 움직인다. 공항 내 열차를 타려고 몰려드는 모습들도 정말 압권이다. 어찌 그리도 열정적으로 바쁘게들 움직일 수 있는지, “과연 이것이 우리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08-15 14:28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여름방학 기간에 뉴욕문화원에서 인턴을 하게 된 둘째 딸 뒷바라지를 한다고 아내가 미국으로 건너가 있던 2010년 7월의 어느 날의 일이다. 딸이 전화를 걸어왔다. 세상이 많이 좋아진 덕분에 밤과 낮이 엇갈리는 외국에 있어도 인터넷전화를 이용해서 아침저녁으로 안부와 일상사를 전하며 지내고 있던 터였다. 평상시보다 조금 이른 시간인지라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아보았더니, 아침 잠이 덜 깬 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일이 생겼다”고 했다.“엄마가 아침에 친구네 아이들 학교에 태워다 주려고 나갔는데, 미국 경찰한테 걸려서 난리야.”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침에 아내가 친구 댁 아이들을 등교시켜주고 오다가, 자동차전용도로 진출로에서 나오다가 경찰에게 단속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딸이 쓰던 차를 운전하던 아내가 ‘우선멈춤’ 정지선에서 완전히 정차하지 않고 속도만 줄여서 우회전하다가, 갑자기 경찰차가 경광등을 번쩍거리고 사이렌을 울리면서 따라붙으니 많이 놀랬던 모양이었다.경찰관에게 한국면허증과 국제면허증을 보여주었으나, '여권을 보자'고 하는데 지니고 있지 않았다고 했다. 전에 그곳에 주재원의 가족으로 살 때는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08-12 1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