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원, 포항공대 등 연구 중심 대학' 역할 중요… 정부 지원 ‘선택과 집중’ 필요”

[공감신문] 염보라 기자= 이스라엘은 인구가 917만명(2023년 통계청)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영토도 좁고 천연자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러한 제약조건을 비웃듯 이스라엘은 명실공히 IT 산업 분야를 선도하는 스타트업 핵심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나스닥에 상장된 이스라엘 스타트업은 100여개로, 미국과 중국에 이어 3위다. 유럽권 스타트업 전체를 합친 수치와 비슷하다.

그 비결에 대해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창업을 할 때 애초에 내수시장은 없다고 보고, 세계시장에서 통할 만한 회사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우리나라도 기술력 없이 대량생산으로 승부를 보는 규모의 경제 사업으로는 더이상 경쟁력이 없다”면서 “기존에 없는 새로운 산업을 개척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소·연구기관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같은 이유에서 그는 ‘연구 중심 대학’ 육성 노력을 촉구했다. 미국에서는 정부의 연구기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대학이 전체의 1~2% 수준이며, 홍콩·싱가포르 등도 연구 중심 대학과 아닌 곳을 구분해 지원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연구 중심 대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 보인다”며 “그러니 중국 칭화대·베이징대, 홍콩 과기대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계 순위가 계속 밀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이 교수와의 일문일답. 

[공감 딥터뷰] 이병태 “벤처투자 위축, 옥석 가릴 기회 삼아야”①에서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Q. 청년 창업가 육성을 위해서는 학교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나. 그런데 국내 대학의 순위는 점차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는 글로벌화가 부족하다. 외국인 교수 구성, 해외 취업 졸업생 수, 투자금액 등에서 모두 뒤처져 있다. 예를 들어 홍콩 과기대는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과 최고위 과정을 공동 개설하면서 개설 비용으로만 수백억을 지급했다. 싱가포르 국립대학은 미국 MIT에서 커리큘럼을 디자인해줬다고 한다. 또 매년 신입 교수 2명을 1년씩 연수 보낸다고 한다. 그걸로 100억을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결과 중국 문화권 아시아 대학들, 대표적으로 중국 칭화대·베이징대, 홍콩 과기대 등이 세계 탑수준 대학으로 도약했다. 반면 한국의 대학들은 상대적 지위가 계속 뒤로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Q. 한국 대학들이 투자를 제대로 못 하는 이유는.

“국가가 (지원금을) 모든 대학에 비슷하게 나눠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5만 개 대학 중 1~2%에만 연구기금을 준다고 한다. 홍콩·싱가포르 같이 작은 나라도 연구 중심 대학과 아닌 곳을 구분해 지원한다. 미국에서는 연구 중심 대학에 가보면 교수당 한 학기에 2과목만 맡는다. 반면 티칭(Teaching)대학은 5과목을 담당한다. 대신 연구를 요구받지 않는다. 잘 가르쳐서 학생들을 잘 취업시키는 것이 목표다. 미국처럼 연구 중심 대학과 티칭 대학은 지향하는 목표나 처우가 달라야 한다. 우린 그걸 못 한다. 연구 중심 대학이라는 개념이 없는 듯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Q. 역량 있는 외국인 교수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이는데, 어떤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많은 돈을 주고 모셔온다고 해도 (외국인 교수의) 자녀가 다닐 수 있는 외국인 학교가 부족하고, 병원을 이용하는 것도 힘들다. 이런 기반 시설 문제가 함께 해결돼야 한다.”

이 교수는 청년 창업과 연구 중심 대학 육성의 필요성을 연결지어 다시 설명했다.

“이스라엘은 인구수가 900만대에 불과한 작은 나라지만, 나스닥 상장사 수가 유럽 전체를 합친 것만 하다. 아주 경의로운 나라다. 이유를 따져 물어보니, 그 중 하나가 애초에 세계시장에서 통할만한 회사를 만든다는 거였다. 나라가 너무 작으니 애초에 내수시장은 없다고 보고 출발한 거다. 소위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이 탐 낼 만한 회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뒀다는 이야기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에 없는 걸 만들어야 한다. 중국이나 인도 같으면 내수에서 1등 해도 글로벌로 큰 기업이 되지 않나. 미국것을 빨리 모방해서 만들어도 거대 기업이 된다. 하지만 내수시장이 작은 나라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기술력 없이 대량생산으로 규모의 경제를 하는 사업은 더이상 경쟁력이 없다. 꽤 오래 전에 모 기업에서 사장단 강의를 했는데, 신사업에 5000억원을 투자했다가 200만원 매출 내고 접었다고 하더라. 중국이 14조원을 투입해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말 기존에 없는 새로운 산업을 개척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야 한다. 중국하고는 자본력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고, 내수시장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결국 기술력으로 경쟁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소·연구기관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의식이 많지 않아 보인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병태(왼쪽)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와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가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카이스트 경영대학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즈가 선정한 '2023 경영자과정' 부문에서 아시아 1위, 세계 21위를 거머쥐었다.
이병태(왼쪽)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와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가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카이스트 경영대학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즈가 선정한 '2023 경영자과정' 부문에서 아시아 1위, 세계 21위를 거머쥐었다.

 

Q. 기업가 정신을 교육하는 것도 중요해 보이는데, 어떤가.

“그렇다. 창업을 제대로 육성하려면 고등학교에서 경제 과목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경제 과목 중 큰 부분은 기업가정신이 자리해 있어야 한다. 미국은 기업가정신 교육 과정에서 작은 돈을 갖고 사업을 해보는 실습을 한다. 그래서 이미 고등학생 때 아이디어가 있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스티브잡스가 빌게이츠 같은 사람들이 대학을 다니다가 기회가 있으니 바로 때려친 이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주 중요한 기본 기술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남의 말의 진위를 가릴 수 있는 비판적 사고다. 두 번째는 재정적인 독립을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교육과정에는 이 두 개가 모두 빠져 있다. 만약 고등학교에서 가르친다면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친구들이 더 쉽게 창업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교수는 이어 “미국을 성장시킨 건 빌게이츠, 스티브잡스, 마크 주커버그, 일론머스크다. 오바마와 클린턴이 아니다”라며 “세상을 바꾸는 건 언제나 대통령이 아니라 창업가들”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청년세대의 글로벌 역량을 칭찬하며 한국의 미래가 밝다고 했다.

“카이스트 교수로 오면서 제자를 글로벌 대학 교수로 보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국에서 주니어 교수를 할 때도 학생들을 톱스쿨에 보냈기 때문에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첫 10년은 실패했다. 학생들을 해외 컨퍼런스에 한 번 보내려면 제가 영어 슬라이드를 만들어주고, 영어 발표 연습도 시켜줘야 했다. 현장 질문이 들어오면 학생들이 대답을 잘 못하니까, 제가 항상 앞자리에 앉아 대답을 해줘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연습을 시킬 필요가 없더라. 우리 젊은 세대는 일찍부터 영어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6년간 박사 5명을 배출했는데, 국내 의과대학 교수로 간 학생 1명을 빼고 모두 글로벌 대학 교수로 배출했다. 글로벌 대학 학과장들이 줌(ZUM)으로, 이메일로 ‘우리 학교로 오게 해달라’고 로비를 할 정도로 성공을 했다. 물론 저희 분야가 가진 특수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청년세대의 글로벌 역량이 우리 세대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아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한국의 국가 경쟁력이다.”

Q. 지도교수의 역할도 중요해 보인다.

“지도교수가 바빠야 한다. 일례로 요즘에는 (연구조사 시) 과거처럼 설문지 몇 개 돌리는 데이터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수천만·수억 건의 데이터를 긁어서 입증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업에 빅데이터를 요청해야 할 일이 생기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이를 위해 사외이사도 맡고 자문도 하면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과 관계를 맺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지도교수의 역할이다. 또 학생을 미국 대학에 교수로 보내기 위해서는 4년간 매 학기 1~2번씩 국제 컨퍼런스에 참여시켜야 한다. 영어로 강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이렇게 좋은 연구를 한다는 걸 광고해줘야 한다. 하지만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하는 거다. 글로벌로 역량 있는 제자를 만들기 위해 지도교수는 밤낮으로 뛸 수밖에 없다.”

대담=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정리·사진= 염보라 기자

이병태 교수 프로필

- 현)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이사
- 카이스트 경영대학 학장
- 카이스트 테크노경영연구소 소장
- 마르퀴즈 후즈 후 인 더 월드 등재
- 미국 일리노이스대학교 경영대학 부교수
- 미국 애리조나대학교 경영대학 조교수
- 텍사스대학교 오스틴캠퍼스 대학원 경영학 박사
- 카이스트 대학원 경영과학 석사
- 서울대학교 산업공학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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