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정치, 한쪽으로 고정돼 있지 않아...언제든 캐스팅보트 역할 가능"
"정치의 핵심 기능은 조율...여러 의견 조정하는 게 중요"

[공감신문] 전규열, 박진종 기자=청년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정과 정의’를 중요시하는 이들의 가치관에 맞춰 정계에서도 30대 당대표·최고위원, 20대 대변인 등 청년 정치인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공감신문은 이들 청년 정치인들을 차례로 만났다.

공감신문은 14일 국회 경내에서 국민의힘 김병민 전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만났다. 김병민 전 비대위원은 현재 국민의힘 정강정책을 총괄해서 만들었다. 탄핵 사태 이후 힘든 나날을 보내던 보수정당 국민의힘이 새로운 도약을 맞게 한 장본이기도 하다. 30대 초반의 나이로 제도권 정치에 뛰어들었고, 청년의 나이인 현재에도 보수 정치를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김 전 비대위원은 이날 공감신문과 인터뷰에서 “청년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과거보다 월등하게 높아졌다. 청년의 정치 참여는 한쪽으로 고정돼 있지 않다. 청년들은 정치 환경의 변화와 정치권의 성과 및 잘못에 따라, 언제든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치의 핵심 기능은 조율”이라며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여러 의견을 조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과 일문일답이다.

국민의힘 김병민 전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 공감신문 사진부
국민의힘 김병민 전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 공감신문 사진부

Q.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저는 대한민국 청년이 기득권에 대한 저항 의식이 없다면 청년이 아니라고 생각을 해왔다. 이에 대한 고민은 대학교 생활 당시에도 존재했다. 당시 대학 총학생회는 학생 운동권을 자처하며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념적인 사고에 치중했고, 정작 학생들이 공감하지 않는 일에 집중하는 모양새였다.

저는 평범한 일반 학생들과 어울리며 여러 활동들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왜 학생의 의견을 반영하는 학생회가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으로 출마를 해서 정말 혈혈단신으로 노력했고, 당선됐다. 1년 동안 공감플러스 학생회(2007년 경희대학교 총학생회)를 경험하며 작은 참여로도 평범한 사람들과 공감하며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정치권과 국민의 목소리가 차이 큰 모습을 보며, 국민과 정말 공감할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학생회를 통해 갖게 됐고, 정치를 시작하게 됐다.

우리에게는 정치를 경험할 수 있는 많은 길들이 있다. 하지만 저는 가장 낮은 곳인 기초의회부터 정치를 경험해서 성장하는, 흔히 말하는 서구 유럽의 모델로 정치를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초구의원에 출마했고, 당선되면서 30대의 나이에 정치를 시작하게 됐다.

Q. 30대에 서초구의원을 지내며 느낀 바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지방의회는 국회의 축소판이다. 지방의회에서도 법안에 해당되는 조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심의하고 의결한다. 행정사무감사라는 제도를 통해서 지자체를 감시한다. 이 같은 경험은 제게 매우 귀한 시간이었다.

서초구의원을 지내며 가장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사례가 있다. 한 가지는 교대역의 마권 장외 발매소 사례다. 교대역 부근에 경마 마권 발매소가 들어서는 것이었다. 주변 학부모 등 주민들 입장에서는 강하게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지방의회에서 가장 먼저 반대의사를 표하고, 반대 결의안을 지방의회 주도로 만들었다. 주민들의 서명을 받고, 주민들과 반대 운동을 펴서 저지했던 경험이 있다.

두 번째는 한전아트센터 철수 반대 사례다. 한전아트센터는 3층 정도의 규모이고 체육시설들이 있다. 그런데 당시 한전이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철수를 하려 했다. 

지역 주민들 입장에서는 한전이 들어오면서 받은 혜택이었는데, 체육 시설 하나가 없어진다고 하니 스트레스를 받으시고 불만이 크셨던 것 같다. 주민들은 강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민원을 제기했지만,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

저는 주민들의 반대의견을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서 지방의회 청원제도를 이용했다. 단순 민원이지만, 지방의회 의결을 통해 청원으로 최종 결정짓게 되면 일부 주민의 의견이 아니고, 지역의견이 된다.

제가 직접 이 작업을 거쳐서, 구의회의 명의로 한전아트센터 철수 반대 청원을 한전과 국회, 정부부처에 각각 발송했다. 그래서 한전이 철수 계획을 철회하며, 시설을 지킨 바 있다.

당시 주민들에게 감사인사의 문자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전혀 모르는 분들도 문자메시지를 보내주셨다. 정말 보람찼던 기억이고 지금도 생생하다.

국회와 달리 지방의회는 보좌관도 없고 월급은 적다. 하지만 지역주민들과 직접 만나고 소통하며, 민원을 어떻게 하면 행정적인 방식으로 풀 수 있는지를 경험한 귀하고 값진 시간이었다.

공감신문 전규열 대표이사 겸 발행인과 국민의힘 김병민 전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공감신문 사진부
공감신문 전규열 대표이사 겸 발행인과 국민의힘 김병민 전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공감신문 사진부

Q.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으로서 활동했다. 활동 기간 중 어려웠던 점이나 보람을 느낀 사례가 있다면?

가장 어려웠던 것은 정강정책 개정 작업을 총괄해서 하는 것이었다. 구성원들 입장에서는 기존의 질서와 당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라 반대 여론이 컸다. 하지만 저는 구성원들을 설득했고, 새 정강정책을 관철시켰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 정신에 대한 내용을 우리 당 강령에 포함시킨 부분이 가장 힘들었고,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강경 보수층을 중심으로 상당한 반발이 일었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사례는 유튜브 의원총회다. 당시 제가 103명 의원을 대상으로 정강정책의 변화 기조를 설명한 바 있다. 103명의 현역의원들이 유튜브 댓글로 의견을 개진하는데 난타전을 방불케 했다. 일부 의원들은 고압적인 태도로 목소리를 내기도 했는데, 한 분, 한 분 설득해가며  정강정책 개정을 이끌었다.

저는 조율하는 게 정치의 핵심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 여러 의견을 조정하는 게 중요하다. 내 의견을 모두 100% 관철시키려고 하는 순간 부러질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새 정강정책에 추가하고, 당의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3선 연임을 제한을 제안했다. 다선 의원들 중심으로 강한 반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도 하겠다고 하고, 다수의 언론이 3선 연임 제한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후 마지막 협상 과정에서 의원들이 절대 이것만은 안 된다고 한 부분 역시 3선 연임 제한이었다. 그래서 3선 연임제한을 내어주고, 나머지 부분을 모두 새 정강정책에 넣고, 통과시켰다.

Q. 국민의힘을 비롯해 정치권 전반에서 청년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청년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과거보다 월등하게 높아졌다. 청년의 정치 참여는 한쪽으로 고정돼 있지 않다. 청년들은 정치 환경의 변화와 정치권의 성과 및 잘못에 따라, 언제든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다, 과거 청년층은 묻지마 방식으로 진보를 지지했고, 장년층을 비롯한 노년층은 묻지마 보수 형태였다. 하지만 현재는 달라졌다. 이제는 청년층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정치권도 청년층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담 =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
정리 = 박진종 기자
사진 = 공감신문 사진부

국민의힘 김병민 전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 공감신문 사진부
국민의힘 김병민 전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 공감신문 사진부

※ 김병민 전 비상대책위원회 위원과 인터뷰는 3회로 나눠 보도합니다.
※ 인터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준수하며 진행했습니다.

국민의힘 김병민 전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프로필

- 국민의힘 서울 광진갑 당협위원장
-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 경희대학교 행정학과 객원교수
-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
- 전 서초구의회 의원
- 경희대학교 총학생회 회장(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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