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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교양공감] 빵에 얽힌 따끈따끈 부드러운 이야기들

[공감신문 교양공감] 입맛이 없을 때, 밥과 반찬은 뭔가 지겨울 때. 그렇다고 라면을 끓여먹는 건 싫고, 굶자니 배가 고프기는 하고. 그럴 때 종종 우리는 ‘빵’을 찾는다. 종류도 맛도 다양하고, 또 쉽게 찾을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빵은, 맛있으니까.

요즘은 ‘빵 집’ 하나 없는 골목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가장 대표적인 서양 음식 가운데 하나라고 여겨져 왔던 빵은 이제 우리 생활에 너무나도 깊숙이 스며들어와 버렸다. 당장 에디터만 보더라도 ‘밥 해먹기 귀찮을 때’, ‘끼니를 때우자니 배가 덜 고플 때’, ‘입이 심심할 때’ 등 빵을 찾게 된다. 또 개중에는 삼시세끼를 빵으로 챙겨먹는 분들도 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빵돌이, 빵순이들은 그리 드물지 않다.

종류도 맛도, 식감도, 먹는 방식도 다양한 빵빠라빵!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접하는 빵은, 그 종류도 엄청나게 다양하다. 그 ‘종류의 다양함’은 빵이 워낙 긴 역사를 지닌 덕분이랄 수 있다. 역사가 긴 만큼 빵에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도 많을 수밖에 없고.

화덕에서, 오븐에서 노릇노릇 구워져 부풀어 오르며 고소하고 먹음직스러운 향을 풍기는 빵. 이번 교양공감 시간은 빵처럼 가볍고 말랑하면서 딱딱하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하고, 짭짤하기도 한 이야기들을 모아 소개해볼까 한다.

간식으로 빵 몇 조각 뜯으면서 읽어보셔도 괜찮겠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여러분과 향긋한 담소의 시간을 나누기 위해 교양공감팀은 빵의 기원, 빵에 얽힌 일화, 빵에 대한 에피소드 등 다양한 얘깃거리들을 따끈하게 준비해 봤다. 커다란 빵 한 덩어리를 죽죽 찢어 먹는 것처럼 가볍게, 심심한 듯 심심하지 않게 읽어보시는 것도 나름대로 맛있으실 게다.


■ 역사 속 빵의 기원

역사가 오래 된 ‘무언가’는, 대체로 그 기원이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있는 빵 역시 마찬가지. 아직까지는 그 누구도 ‘이것이 인류 최초의 빵’이라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은 사료 등을 토대로, 빵이 역사에 언제쯤 등장했는지를 짐작해볼 수는 있다.

아주 멀고도 아득히 먼 옛날, 인류는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삶의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 무렵의 변화로 인해 사람들은 유목을 하다가 정착을 하게 되고, 식량의 보존 등을 여러 측면에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등장한 것이 바로 고대의 빵이다. 빵의 개념 자체는 농경시대의 시작과 맞물린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제대로 된 빵의 본격적인 등장은 고대 이집트 문명이 꽃피던 시기였다고 한다. [wikimedia 캡쳐]

기록에 따르면 ‘제대로 된 빵’은 기원전 2000년경, 이집트 지역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앞서도 언급했듯 이전에도 빵이라 부를만한 음식이 있기는 했으나, 그저 밀가루 반죽을 구운 덩어리에 불과했다고. 그러나 고대 이집트에서 효모를 발효시켜 만든 ‘발효빵’이 처음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빵의 역사’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됐다.

다른 민족들이 식량 보존을 위한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던데 반해, 이집트 사람들은 오히려 밀가루 반죽의 부패 과정을 유심히 관찰했던 셈이다.


■ 따끈따끈, 본격적인 ‘빵의 부흥’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참 다양한 종류와 형태의 빵을 빚고 구웠다고 한다. 평상시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을 수 있고, 또 보존도 용이했던 크고 투박한 빵에서부터 반죽에 물을 많이 사용해 부드럽게 만든 빵, 제물로 바치거나 의식에 사용할 목적의 빵 등 실로 온갖 종류의 빵들이 있었다고.

'고대의 빵'이라니 왠지 거칠고, 딱딱했을 것만 같지만 의외로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고 한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여러 사료들에 따르면 빵은 이때부터 이미 여러 형태로 모습을 바꾸기도 했었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인 호메로스가 남겨둔 이집트에 관한 기록물을 살펴보면, 당시 이집트에서는 지금의 쿠키에 해당하는 바삭하고 달콤한 빵, 케이크 형태의 부드럽고 포슬포슬한 빵, 찐빵이나 스펀지 빵도 존재했다고 한다. 으앙! 고대 이집트 제빵사가 만든 피라미드 모양의 쿠키! 한 번 맛보고 싶다. 아무튼 여러 기록을 토대로 우리는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엄청난 ‘빵돌이, 빵순이’ 들이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렇게 생활 밀착형(?) 식품이 된 빵은 이후 로마 제국으로 전파되면서 좀 더 확실한 대접을 받기 시작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동양’ 사람들의 주식이 ‘쌀밥’이라 여기고, ‘서구 문화권’ 사람들의 주식은 ‘빵’이라 여기곤 했는데, 이는 로마 제국에서 발효 빵을 주식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본디 ‘죽’을 주식 삼았던 로마에서 제빵 기술은 큰 인기를 끌면서 ‘빵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로마가 멸망한 이후에도, 빵은 유럽 곳곳으로 퍼져나가게 됐다.

■ ‘길드’와 빵, 제빵사들의 이야기

로마 제국이 멸망하기 전, 그러니까 로마 후기에 로마의 제빵장인들은 상인조합을 만들고 교류를 했다. 우리가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길드(Guild)’의 탄생이다. 제빵사 길드 소속 장인들은 서로의 방식을 공유하며 제빵기술의 꽃을 피웠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게르만의 침략으로 인해 로마가 무너지면서 길드도 사라지게 된다.

중세시대에 제빵사가 되기 위해선 상당히 오랜 기간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Medieval Recipes]

그렇다면 중세에 들어서는 어땠을까? 문화의 암흑기라 여겨졌던 중세시대에도 먹는 것은 최고 우선순위 중 하나였다. 독일 보통 법전에는 ‘제빵사를 살해한 이는 보통의 살해죄에 3배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대부분이 도시에 거주했으며, 관료가 될 자격이 있었다. 제빵사가 당시에 얼마나 중요한 취급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제빵사가 되기란 쉽지 않았다. 수습 제빵사는 2~3년이 걸리는 도제 수업을 거친 뒤, 수료증을 받아 장인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장인이 된 뒤에도 다른 지역을 여행하며 새로운 제빵기술을 익혀야 했으며, 여행을 마친 뒤에는 여행기를 통해 자신이 배운 제빵기술을 기록해 제출해야만 했다. 그러고도 제빵소에 빈 자리가 날 때까지 대기해야만 했다.

힘들게 제빵 장인이 돼 제빵소에 취직이 되더라도,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만 했다고. [Medievalists.net]

그런가하면 제빵소로 배치된 뒤에는? 그들은 뜨거운 오븐 앞에서 하루 종일 노동을 해야만 했다. 이른 아침부터 빵을 사기 위한 시민들의 대기열이 길게 늘어서있었기 때문. 그리 부유하지도 않았으며, 고된 노동을 계속 하던 제빵사들은 제빵 과정에서 흩어지는 밀가루를 들이마시면서 천식, 기관지염에 시달려야 했다. 프랑스에서 제빵사를 ‘쟁드르(geindre)’라 부르기도 했다. ‘앓는 소리를 내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기록에 따르면 중세시대에는 거주지가 부족해 제빵사들은 제빵소에서 잠을 자야 했다. 고된 장시간의 노동과 각종 질병, 수면부족을 겪었던 제빵사들은 건강을 잃기 쉬운 환경에 노출돼야만 했으며, 하루 14시간에서 18시간의 노동을 하거나 과로로 사망하기 일쑤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 ‘빵’ 에피소드

-한반도로 흘러들어온 빵
우리나라에도 이웃나라 등을 통해 빵이 소개된 적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쌀’이 주식인 만큼 쉽게 퍼져나가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밥심’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만큼 빵은 ‘간식’에 그쳤는데, 그마저도 ‘떡’이라는 대체제가 있기에 그 자리를 빼앗기는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빵이 들어온 것은 19세기, 서양요리의 전파 시기 당시다.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빵은 간식'이란 인식이 더 강한 듯 싶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개항 이후 제빵 기술이 한반도에 퍼져나가면서 궁궐 수라간에서도 ‘제빵용 틀’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부터 정동구락부를 중심으로, 빵은 한반도 곳곳에 퍼지기 시작했다.


-빵은 손을 찢는다?
서양 사람들은 빵을 칼이 아닌 손으로 쪼개 먹는다. 어째서 그런고 하니, 기독교 문화권에 따른 예의라고 한다. 빵이 ‘예수의 몸’을 상징하기 때문에 칼을 대지 않는다고.

빵을 예수의 신체라 여기는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칼로 빵을 자르지 않는다고 하더라. 물론 칼질 잘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만. [pixabay/cc0 creative commons]

빵과 함께 나오는 나이프는 사실 버터를 바르기 위한 것으로, 만약 독실한 서양 가정에 초대된다면 이를 기억해두는 게 좋겠다.

-영어 관용어구 속 빵
‘애기 분유값을 벌다’는 표현이 있다. 보통 가정을 이룬 사람이 생계활동을 하는 것을 뜻하는 말인데, 사실 서양에도 이와 유사한 표현이 있다. ‘bread and butter’, 즉 빵과 버터를 사올 돈을 번다는 뜻이다. 서구권에서 빵을 주식으로 삼기에 사용되는 표현으로, 우리 식대로 표현하자면 ‘쌀값을 벌다’ 정도로 해석해볼 수 있겠다.

-장발장의 빵
프랑스 소설 ‘레 미제라블’의 등장인물 ‘장발장’은 ‘고작 빵 하나 훔쳤을 뿐인데 19년간 감옥에 갇힌 불쌍한 주인공’이라 여겨진다. 뭐, 절도가 나쁜 건 사실이지만 또 형벌이 너무 가혹했던 것도 사실 아닌가 싶기는 하다.

댓글 대부분은 "깜빵갈 만 하네!ㅋㅋㅋ" 라는 반응이다. [디시인사이드 캡쳐]

헌데 몇 년 전 인터넷에 ‘장발장이 훔친 빵의 진실’이란 게시글이 떠돌면서 새로운 견해가 제기됐다. “장발장이 훔친 빵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런 빵이 아니라, 엄청나게 크고 만들기도 어려운 ‘깡빠뉴 빵’이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원작 소설에서 장발장이 깡빠뉴를 훔치다 붙잡혔다는 얘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 오늘 야식은 빵 한 조각

프랑스 제1제국의 황제 나폴레옹 은 병사들에게 고품질의 빵을 배급했다고 한다. “군대는 배가 불러야 진격한다”는 말대로, 식량보급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 하지만 러시아를 공격하다가 군대에 빵 배급을 하지 못하게 됐고, 이 때문에 나폴레옹은 “빵만 충분했다면 러시아를 쳐부술 수 있을텐데”라 탄식했다.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지닌 빵.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쳤던 정복자가 ‘빵 배급 문제’ 때문에 패퇴했다는 사실 말고도 빵에 얽힌 일화는 많다. 문명이 마악 씨앗을 틔워내기 시작한 시기부터 우리 인간과 함께해왔던 음식, 빵은 그 역사가 오래된 탓에 그에 얽힌 온갖 종류의 에피소드들이 있다.

물론 그런 여러 이야기들이 역사 속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몇 년 전에도 밀가루와 계란 값이 올라가면서 ‘빵 가격 인상 파동’이 일어났던 적도 있었고, 또 ‘하얀 밀가루로 만든 빵은 건강에 해롭다’면서 통밀, 호밀 빵이 인기를 끌었던 사례도 있다. 아무튼 이 ‘빵 에피소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구워져 나올 거란 얘기다.

호불호 안 갈리는, '호주머니 빵빵!' 맛있겠다... [인스티즈 캡쳐]

이러나저러나, 전국 각지의 빵집들은 오늘도 성업 중이다. 이곳에서는 오늘도 향긋하고 고소하고 달콤한 온갖 빵들이 구워지고 있다. 따끈따끈하고 포근한 빵, 바게트처럼 딱딱하고 고소한 빵, 달콤한 캬라멜이나 녹진한 버터가 스며있는 빵, 소시지를 품은 빵과 앙꼬를 품은 빵 등등이. 그 덕분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빵 집에 들어가 손쉽게 빵을 골라 집을 수 있다. 앗, 무슨 빵을 고를지 고민하는 건 쉽지 않기는 하다.

눈치채셨겠지만 에디터의 오늘 저녁 메뉴는 빵이 될 예정.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아무튼, 가볍고 담백하면서 소소한 식빵같은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다. 교양공감 베이커리의 영업시간은 끝이 났으니, 오늘은 퇴근길에 다른 베이커리에 들러서 따끈하고 향긋한, 달콤한, 보드라운, 딱딱한 그런 빵 한 봉지 사가는 건 어떨까. 고소한 우유를 곁들여 야참으로. 어때?

    교양공감팀 | pjs@go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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