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환경보전법 시행령·시행규칙 일부개정 그 후...방진막 설치 조항 실효성을 중심으로

[공감신문] 박진종 기자=환경부는 지난 9월 12일 대기환경보전법 시행령·시행규칙을 일부 개정해, 내년부터는 기존 건물 외벽에 페인트 작업을 하는, 재도장 공사에서도 방진막을 설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뿌리는 방식의 페인트칠(스프레이건 공법)을 사용할 때는 페인트가 주변에 흩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방진막을 설치해야 한다. 어린이, 노약자 등 취약계층 생활 시설 50m 이내에서 작업할 때는 반드시 붓이나 롤러 방식으로만 작업해야 한다.

이번 조치는 극심한 미세먼지로 인해 악화하고 있는 대기환경 상황에서 페인트가 주변에 날리는 것을 막고,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관련법과 조항이 개정돼도, 막상 현장에서는 방진막 설치나 붓·롤러 방식의 작업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금보다 현실적이고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장작업 중 페인트가 대기 중에 흩날리고 있다.

13일 공감신문과 만난 도장업계관계자는 환경부의 조치가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며, 현장은 사실상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그 이유로는 최저가 입찰과 도장업체들의 과한 경쟁으로 인한 안전·대기환경보호 의식 상실, 발주자의 리베이트 요구, 발주자의 책임 부재 등이 꼽혔다.

취재에 응한 업계관계자는 이전부터 도장업체를 운영하시던 아버지와 함께 업계에 몸담았던 전문가다.

■ 인건비도 삭감하는 상황에서 과연 방진막이 설치될 수 있을까?
과도한 최저가 경쟁, 안전·대기환경보호 의식 상실...발주자의 리베이트 요구

관계자는 도장 업계 상황에 대해 “이전에는 지역제한이 존재했으며, 적정가격 입찰이나 최저가를 배제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국토교통부가 도장 사업에 대한 지역제한을 받지 않는 정책과 최저가 입찰을 시행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론, 담합을 막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업체 입장에서는 지출은 지출대로 하면서 최저가로 입찰해야 하는 상태가 됐다. 이 때문에 가격경쟁이 과도해지면서 품질이나 안전, 대기환경보호에 비용을 책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고 알렸다.

과도한 경쟁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최저가 상황에서 발생하는 발주자의 리베이트 요구다.

관계자에 따르면 아파트 재도장 공사를 진행하는 일부 입주자대표회의나 건설사가 공공연하게 리베이트를 요구하고 있다.

최저가 상황에서 리베이트 요구까지 받으면 업체는 인건비를 줄이고 부가적인 비용을 삭감할 수밖에 없다. 두 명이 해야 할 작업을 한 명이 하게 된다.

관계자는 작업은 한 명이 해도, 작업시간은 두 명이 하는 시간에 맞춰야 한다고 알렸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최저가 경쟁에 발주자의 리베이트까지 더해져 위험하고 부실한 작업이 이뤄지는 것이다. 

■ 인건비도 줄이는 판에 방진막 설치는 불가능해...업계 인식도 문제

관계자는 인건비도 줄이는 상황에서 방직만 등 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수의 도장업체들이 영세하다. 이들은 품질이나 안전, 대기환경보다는 한 건의 작업이라도 더 진행하고 수익을 내는데 관심이 크다. 일부는 3년만 하고 접자는 식으로 하자보수도 신경 쓰지 않고 하루살이처럼 운영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런데 방진막 등 페인트가 주변으로 비산하지 않도록 하는 시설의 설치는 불가능 하다”고 말했다.

재도장 작업 현장 주변

변화에 적응하려 하지 않는 업계의 특성도 문제로 지목됐다. 관계자는 “업계에서 지켜본 결과, 수십년간 도장 관련 사업을 해 오신 분들은 상당히 막혀 있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거나 법을 바꾼다고 해서 따르기 보다는 자신들이 하려던 방식으로 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고 알렸다. 현재 정책으로 업계를 움직이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발주자들의 인식도 업계의 변화를 막는 요인이라는 의견이다. 방진막 시설을 설치하려 해도 발주자가 비용적인 측면에서 동조하지 않으면, 설치가 어렵다.

관계자는 “입주자대표회의는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든, 돈을 올리기 위한 영업 속임수라고, 사기를 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 발주자의 책임부재...“제가 발주자가 된다면 방진막 반드시 설치 할 겁니다”

애초에 발주자가 대기환경이나 주변 거주민의 건강권을 인식해, 올바른 선택을 했다면 현재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환경부 대기관리과에는 최근 심각해지는 미세먼지 때문인지, 비산먼지와 관련한 민원이 줄을 잇고 있다.

한 환경부 관계자는 자신이 받았던 한 통의 민원 전화를 공감신문에 알린 바 있다. 재도장 작업으로 인해 페인트가 주변에 흩날리는 문제를 제기하는 전화였는데, 페인트 비산에 대한 걱정이 드러나 있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초등학생의 학부모로부터 민원 전화를 받았다. 학부모는 경기도 소재 아파트에서 페인트 도장작업을 하고 있는데, 해당 작업현장에 방진막 등 비산먼지 억제시설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페인트가 주변에 날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도장작업

특히, 학부모는 페인트 도장작업 현장이 초등학생인 자녀가 등하교 하는 곳이라 우려가 더욱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만약,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재도장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비용이 상승하더라도 방진막을 반드시 설치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 방진막 설치 위반 시 벌금 강화, 발주자 연대책임 필요

아파트 등 도장작업에서 방진막 설치 규정이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벌금이 강화되고 발주자의 연대책임이 이뤄져야 한다.

일부는 벌금을 강화하는 게 과한 규제라고 지적한다. 벌금은 규정을 어기면 이뤄지는 사후조치다. 규정을 지키면 벌금을 낼 필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규제강화로 볼 수 없다.

현재 방진막 시설을 설치하지 않아 적발될 경우 벌금은 300만원이다. 일부 도장업체는 공사비보다 현저히 낮은 벌금 때문에 차라리 벌금을 내고 작업을 빨리 마치겠다는 모습을 보인다.

붓이나 롤러 방식의 규정을 어기는 경우에도 강한 조치가 필요하다. 빠른 작업을 선호하는 업계 특성상 해당 규정이 지켜지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도장업계관계자의 발언대로, 도장업계에서 종사하는 이들은 다수가 경직된 인식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벌금 내면 되지 뭐’라는 안일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라는 벌금의 강화는 필수적이다.

앞으로는 발주자도 도장업체와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 방진막 설치를 위해서는 발주자가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하는데, 도장업체가 모든 책임을 지고 있다. 

도장업체의 인식과 함께 발주자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벌금 부과와 같은 연대책임 등 조치가 필요하며, 리베이트를 막을 방지대책도 수립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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