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詩한 여수의 섬들 (8)...바다 목장은 거대한 빙상경기장

[우동식 시인] 詩詩한 여수의 섬들 (8)

 

여수 물꽃시낭송회

회장 우동식 시인

 

 

 

 

 

 

 

 

'겨울 굴전에서'

 

바다 목장은 거대한 빙상경기장

양팔을 벌린 어머니 품 같은 포구의 수면은

얼음커튼이었다

하루 두 번씩 가장자리부터 가슴을 열면

흥건히 짠물에 적신 말목들이 대열을 지어

바다 각개전투 훈련장이다

종폐들의 축 늘어진 꾸러미 안에서

밀물과 썰물에 젖었다 말렸다

굴은 제 속살을 꽉 채운다

만조였을 때는 몰랐었다

밑바닥을 사는 것들의 물길은 호흡의 깊이였음을, 

새겨진 물골이 뻗어 있는 심줄로

숨구멍을 내어놓고 뻘줌뻘줌 숨을 쉬었다

장뚱어 방게 도둑게 갯강구

수많은 전사들이 제 바닥을 지키고 있었다

언제 그랬냐 싶게 한물은 아홉 물로 차오르고

공연장의 1막2장은 닫혀버렸다

열 세 물,

금간 흔적 하나 없는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굵은 밑줄 하나 자르며 선외기 한 대가

방파제 안으로 들어선다

쪼식이로 굴 껍데기를 쪼던 노부부는

바지선에 수북이 쌓인 히땡이*를

굴 밭에 내린다

 

모든 것 끌어안은 겨울 굴전

고니 떼 힘찬 날개 짓이다

 

*여수시 돌산도에 있는 굴 양식장.

*쪼식이, 히땡이 : 굴 양식장에서 쓰는 연장이름 사투리.

 

 

詩詩한 여수의 섬들이야기 (8)

 

순천서 17번 국도나 자동차전용도로를 따라 여수 끝닿는 점에 이르면 돌산대교가 나온다. 대교를 건너면 돌산도이다. 지금은 돌산 대교와 거북선 대교가 양다리로 놓여 있고 대교가 끝나는 지점인 돌산공원에서 자산공원까지 해상 케이블카가 놓여 있으며 여수 밤바다의 환상적인 뷰 포인트가 바로 거기다. 그 돌산공원에서 향일암 방향으로 몇 정거장 들어가다 보면 굴전이라는 곳이 나온다. 바깥 굴전과 안 굴전이 있는 데 굴밭이라는 뜻이다.

어머니 품 같은 아늑한 포구에는 하루에 두 번씩 밀물과 썰물이 교차한다. 굴 밭에는 종폐들을 심기위한 말목들이 줄지어져 각개전투장처럼 늘어져 있고 빨래줄 같이 축 늘어진 종폐 꾸러미 안에서 젖었다 말렸다 반복 하면서 제 속살을 채우며 굴이 자라고 있다. 물이 만조로 꽉 찼을 때는 그야말로 빗금 하나 없는 거대한 빙상 경기장이다.

맑고 고요한 호수다. 스케이트를 타고 숨이 헉헉대며 달려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그러나 또 시간 이 흐르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며 1막이 끝나고 공연장의 커튼은 열린다. 서서히 물이 빠지고 물 밑에는 새로운 생명체들의 세계가 제 영역을 지키며 전사들처럼 활동하고 있다. 물골이 심줄이었고 여기 저기 숨구멍을 내어놓고 뻘줌뻘줌 숨을 쉰다. 이 아름다운 호흡의 깊이에 눈을 뗄 수가 없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한물은 아홉 물로 바뀌고 또 열 세물로 바뀐다. 선외기 한 대가 방파제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오고 노부부가 바지선에서 히땡이를 굴 밭에 내린다. 고니 떼가 힘찬 날개 짓을 한다. 한 편의 연극 같은 장면이 눈에 선하게 펼쳐진다. 겨울굴전에서 굴은 이렇게 탱탱하게 씨알이 굵어진다.

안 굴전 주변에는 굴구이 전문집이 몇 군데 있다. 화로에 굴을 얹혀 놓고 적당히 열을 가하면 제 몸을 열어젖히고 도톰한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이 때쯤 이면 서로 통하는 몇몇 사람과 불판에 둘러앉아 바다의 비타민 굴을 굽으면서 탁탁 튈 때 마다 삶의 한판 뒤집기를 시도 해 보는 것이다. 육즙과 함께 한입에 쏙 집어넣고 소주한잔 기울이면 겨울의 참 맛을 느낀다.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라도 다시 한 번 부딪혀 보자는 결기 같은 것이 생긴다.

겨울굴전에 서 보라! 보이는 것 속에는 보이지 않는 또 한 세계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그 그늘 속에서도 제 부피를 늘리며 삶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젖었다 말렸다 반복하면 살아가는 것이 생명체임을 보게 되는 것이다.

정유년 새 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바다 위에 움직이는 노부부의 삶뿐 아니라 바다 속에서 저 깊은 곳 밑바닥에서도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기 위한 깊고 세밀한 관심이 함께 했으면 하는 시인의 바램이 깃든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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