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조 서울대 법대 교수
정상조 서울대 법대 교수

[공감신문] 정상조 칼럼니스트= ‘로지’는 2020년 완벽한 미모와 화려한 패션을 자랑하는 여성으로 탄생했다. 현재 13만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자랑하는 22살 여성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이다. 중국 진시황은 세상의 모든 권력과 금은보화를 갖고도 불로장생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우리나라 기업 싸이더스 스튜디오가 탄생시킨 가상인간 ‘로지’는 영원히 늙지 않는 22살이다. ‘로지’가 신한라이프 모델로 출연한 광고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1500만뷰를 기록하는 대성공을 거뒀으며, 태어난지 2년도 되지 않았지만 올해 20억원이 넘는 수익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인공지능(AI)과 그래픽 기술로 탄생한 가상인간은 광고모델뿐 아니라 배우로, 정치인으로 인간보다 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데뷔한 걸그룹 ‘이터니티’는 가상인간으로만 구성된 가상걸그룹이다. ‘이터니티’ 멤버 ‘제인’은 가상인간이지만 YTN이 생방송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탄생과정을 소개했다. 인공지능이 K팝 아이돌들의 얼굴 데이터 수십만 장을 학습해서 202명의 남녀 가상인물을 만들고, 그 가운데 ‘심쿵 챌린지’라는 경쟁을 통해 선발된 최후의 11명이 가상걸그룹 이터니티로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가상인간은 LA에 사는 19세의 브라질계 미국 가수 ‘미켈라’다. 303만명의 팔로어를 확보하고 지난해 13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미켈라’는 주근깨 투성이의 여성가수이지만 방탄소년단과 함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연예인들은 가끔 미투, 학교폭력 등 스캔들로 수명이 단축된다. 그러나 가상인간은 그런 걱정 없이 팬들과 소통하면서 자아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 인공지능 기술 덕분에 가장 멋진 외모를 갖고 태어난 가상인간이 우리의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길 수 있지만, 한편으론 외모에 있어 인간이 가상인간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기 때문에 획일화된 아름다움보다 각자의 개성과 내면의 아름다움에 더 집중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다고 기대한다. 게다가 ‘로지’나 ‘미켈라’가 유명해지고 바빠질수록 그 가상인간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운영팀도 점점 커져야 한다. 가상인간이 성공할수록 우리들의 일자리도 더 많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인공지능의 가상인간 기술은 무덤 속 진시황도 다시 살려낼 수 있다. 유관순 열사와 윤봉길 의사가 마치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간단한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쉬고 있는 모나리자가 다정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네게 할 수도 있다.

올해 초에는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가 여행지에서 마술을 하는 영상이 비디오 플랫폼 ‘틱톡’에 올라와 관심을 끌었다. 이는 진짜 톰 크루즈가 아닌 딥페이크 기술로 만들어진 가짜 톰 크루즈였다. 연예인의 허락을 얻는다면 저명 연예인과 동일한 얼굴과 표정을 가진 가상인간이 기업의 마케팅에 커다란 성공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AI)과 그래픽 기술로 탄생한 가상인간은 광고모델뿐 아니라 배우로, 정치인으로 인간보다 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AI윤석열(위)과 가상인간 로지(아래 왼쪽), YTN에서 생방송으로 인터뷰를 가진 가상걸그룹 이터니티 멤버 제인 / 사진 국민의힘, 로지 인스타그램, YTN 캡처 
인공지능(AI)과 그래픽 기술로 탄생한 가상인간은 광고모델뿐 아니라 배우로, 정치인으로 인간보다 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AI윤석열(위)과 가상인간 로지(아래 왼쪽), YTN에서 생방송으로 인터뷰를 가진 가상걸그룹 이터니티 멤버 제인 / 사진 국민의힘, 로지 인스타그램, YTN 캡처 

 

가상인간을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에는 기업뿐 아니라 정치인들도 적극적이다. 지난 대통령선거에 등장한 AI 윤석열은 성공작으로 평가된다. AI 윤석열은 문재인과 이재명이 물에 빠지면 누구부터 구할거냐는 질문에 재치있게 대답하고, 선거공약에 관한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답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처음에는 AI 윤석열을 비난했지만 결국 AI 이재명으로 뒤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기업도, 정치인도 기술혁신의 거대한 흐름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기술 발전의 이면에는 그림자도 존재한다. 가상인간이 불법적인 용도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가수 아이유와 닮은 외모로 인기를 얻은 여성 ‘차이유’(차이나+아이유)가 커다란 인기를 끌었는데, 사실 차이유는 딥페이크 기술로 아이유의 외모를 허락 없이 복제한 것이었다.

포르노 영상에 저명 연예인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은 연간 1만건 이상 생산되고 소비되고 있다. 한류 붐이 계속되면서 우리 K팝 가수의 얼굴이 도용된 포르노 영상도 급증하고 있다. 저명 정치인이나 기자의 얼굴을 도용한 딥페이크 영상은 이제까지의 가짜뉴스보다 위험성이 더 크다. 소비자들로서는 AI가 합성한 가짜를 진짜와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향에 맞는다면 오히려 가짜를 더 신뢰하는 경향도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러시아가 딥페이크 영상으로 허위 정보를 확산하고, 중국은 딥페이크 영상으로 반미 선전물을 퍼뜨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가상인간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다. 기술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지만, 그 부작용으로 우리 삶을 파괴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상인간을 적극 활용하는 동시에,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표적으로는 기만적인 딥페이크를 어떻게, 그리고 어떠한 기준으로 적발하고 차단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가상인간의 향상에 필요한 인공지능 기술을 가상인간의 입 모양과 음성 간의 미세한 불일치를 적발하는 데에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상인간을 만들고 가상인간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법 제도와 과학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전문가와 기업 그리고 정부가 함께 노력해야 할 때다.

글 정상조 서울대 법대 교수/국가지식재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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