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의 수도, 부산' 저자 김동현 씨
'천일의 수도, 부산' 저자 김동현 씨

[공감신문] 김동현 칼럼니스트 = 가을밤에 숨 막히는 감동을 연출하는 부산불꽃축제도 부산의 새로운 볼거리로 자리를 잡았다. 광안리해수욕장의 행사장에는 멀티불꽃쇼에 앞서 이른 오후부터 각종 공연의 불꽃 버스킹으로 분위기를 띄운다. 이태리의 파렌테 같은 세계적 불꽃기업들이 불꽃쇼의 묘기를 보인다.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로얄석은 관람료가 10만 원, 의자만 있는 특석은 7만 원이지만 일찌감치 매진된다. 표를 사지 않아도 명당자리는 많다. 달맞이고개, 황령산, 금령산 등에 가면 불꽃과 함께 도심 야경까지 즐길 수 있다. 부산불꽃축제가 부산의 최고 이벤트로 자리를 잡자 크루즈 선상에서 불꽃구경을 하는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전후해서 부산의 겨울밤을 장식하는 중구 광복로의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와 부산진구 부전동의 서면트리축제’, 해운대구 중동의 해운대 빛 축제등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국관광공사가 한국의 야경명소로 선정한 100곳 가운데 부산의 9곳은 동백섬 등대광장에서 바라본 누리마루와 광안대교, 마린시티 야경, 달맞이 언덕 문탠로드, 송도 구름산책로, 송도 해상케이블카, 다대포 꿈의 낙조분수, 황령산 봉수대, 동래읍성지 야간 경관, 동구 이바구길 달빛샤워 야간걷기 축제 등이다.

부산시티투어버스로 야경투어를 하려면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브리짓투어 버스를 타고 광안대교, 부산항대교, 남항대교를 지나면서 부산 야경을 즐길 수 있다. 이 밖에도 동래읍성, 범어사, 온천장을 도는 북부산 테마버스와 태종대, 기장, 해운대를 각각 유람하는 시티투어 버스가 있다.

부산공연기술업계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든 축제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생존위기에 몰리자 2020717일 밤 9시에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30분 동안 빛 시위를 벌이면서 지원 대책을 호소했다. 빔 라이트 30대를 동원하여 밤하늘에 SOS를 깜빡거렸으며, 부산시내 다른 6곳에서도 비슷한 조명시위를 벌였다.

코로나19에 따른 정부의 지원과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벌인 세계 최초의 조명 시위는 6월 말 독일 바이마르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독일 여러 도시 8,900여개 건물에 열정을 상징하는 빨간 불이 켜지면서 연대시위가 벌어졌고 유럽 여러 나라로 전파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빛의 도시 부산에서 최초로 조명 시위의 빛이 점화되기 시작했다.

2020년 방탄소년단의 노래 <다이나마이트>가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1에 등극하고 2021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를 수상함으로써 전 세계의 팬클럽 아미(ARMY)가 부산을 향해 열광하고 있다. 2030부산세계박람회 홍보대사가 된 BTS 의 멤버 7명 중 도시에서 2명이 나온 것은 부산이 유일하다.

정국(전정국)이 다닌 백양초등학교와 백양중학교, 지민(박지민)이 다닌 회동초등학교와 윤산중학교, 부산예술고의 등굣길을 비롯하여 그들이 다녀간 부산시민공원, 부산시립미술관, 파크하얏트, 광안대교, 다대포 일대는 팬들의 요청에 따라 부산관광공사가 BTS 투어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일몰로 유명한 다대포해수욕장은 지민이 V로그영상을 엮었던 곳이다. 정국의 별명은 부산 갈매기를 뜻하는 씨걸이고 지민은 부산사람들이 즐겨 먹는 망개떡이다.

방탄소년단의 막내인 정국의 23번째 생일인 202091일을 맞아 150만 명의 중국 팬들이 모은 기금으로 경부선 KTX 열차 외부 전체에 정국아 생일 축하해’ ‘19970901’ 문구와 정국의 사진으로 랩핑한 광고를 한 달 간 부착했다. 또한 국내팬클럽은 생일날 밤 해운대 앞바다에 바지선을 띄우고 10분 간 불꽃을 쏘아 올리는 축제를 벌였다.

20196월 부산 아시아드보조경기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의 팬 미팅에 5만여 명이 운집했으며 이들이 다녀간 오륙도, 부산시립미술관, 광안대교, 다대포해수욕장, 횟집 등은 인기 관광지가 되었다. BTS는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20221015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전세계에 생중계되는 글로벌 콘서트를 공연했으며, 2023년 국제박람회 총회의 촤종 경쟁 프리젠테이션에 나서기로 하는 등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거창 출신의 뷔(김태형)가 부산시민공원을 걷다가 우연히 인증 샷을 남긴 평범한 산책로에 방탄소년단 뷔 사진촬영장소라고 표기하여 포토존 명소가 되었다.

미술전시회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방탄소년단의 리더 RM(김남준)은 부산행사 중 홀로 빠져나와 부산시립미술관 별관의 이우환 공간을 찾았다. 이곳은 일본 나오시마에 이어 두 번째로 이 화백이 직접 설계 디자인한 개인미술관으로 점과 선의 작품 13점과 야외 조각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우환의 해외 전시장을 일부러 찾아다니곤 했던 RM잘 보고 갑니다. 선생님, 저도 바람을 좋아합니다.”라고 방명록에 남겼다. 우리나라 미술전시회는 RM이 다녀간 전시회와 다녀가지 않은 전시회로 구분될 정도이며, RM의 관람 소식이 알려지자 부산시립미술관을 찾는 방문객이 4배로 늘었다고 한다.

미술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는다.”RM은 코로나가 한창인 20205, 부산 조현화랑의 이배 개인전과 부산시립미술관의 김종학 개인전을 보고 쉽지 않은 시기, 잘 이겨나갔으면 합니다.”라는 글을 방명록에 남겼다.

그는 자신의 실천에 걸맞게 미술관람 기회가 적은 산간벽지 청소년들에게 미술품을 접할 수 있는 도록 제작비로 1억 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부함으로써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2020년 예술후원대상을 받았다.

부산은 우리나라 어느 지역보다 외지인이 많이 드나드는 대륙의 관문이어서 초량왜관을 비롯하여 청국거리(상해거리), 텍사스거리, 러시아거리 등 외국인들의 활동이 두드러진 곳이다. 지금도 부산 중심지역의 안내표지판에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와 함께 러시아어가 병기되어 있다.

부산역 맞은편에는 1999년 부산시가 상해시와 자매결연한 기념으로 중국인들이 직접 세운 붉은색 상해문(上海門)이 돋보인다. 원래 이곳은 동래부사가 초량왜관을 행차할 때 지나가던 백사청송(白沙靑松)의 바닷가 길목이었다. 부산 차이나타운은 구한말 중국의 조계지였다. 조계지는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독자적 행정권을 휘두르는 치외법권 지역이다. 1884년 이곳에 청국영사관이 설치되면서 중국 상인들의 집단촌인 청관마을이 형성되었다. 청국영사관 주변의 조계지 조성을 위해 초량 앞바다의 모래사장과 송림을 매립, 매축하고 공동묘지도 아미동으로 옮겼다. 용두산 주변의 일본인 마을 왜관거리에 빗대어 이곳을 청관거리라고 불렀다.

1882년 임오군란의 책임을 물어 대원군을 납치할 정도로 오만했던 청나라인지라 중국인들의 행패는 대단했다. 중국가게에 들러 흥정만 하고 물건을 사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으며, 밤이 되면 조선인들은 청관 주변에 함부로 다닐 수가 없었다. 중국인 화교(華僑)가 왜관에 덕흥호라는 가게를 열어 중·일 간 외교 마찰이 일어났는데, 결국 힘없는 조선이 중국에 위약금을 물어주어야 했다. 그러나 청일전쟁으로 일본에 패한 후 중국인들의 기가 꺾이면서 차이나타운은 명맥만 유지하게 되었다.

부산의 차이나타운이 가장 큰 수난을 당한 것은 19316월 만보산 사건 때문이다. 중국 지린성 만보산 지역의 조선인과 중국인 농민들 사이에 농지의 수로 문제로 약간의 다툼이 있었는데 조선인들이 중국에서 박해를 받아 많은 사람들이 살해되었다.”고 잘못 알려져서 중국집 보복습격이 전국적으로 자행되었다. 물론 이것은 일본의 이간질과 일부 언론의 오보로 야기된 것이다.

대부분의 중국 가게들은 불에 타버렸고, 생명이 위급해진 화교들은 초량의 중국영사관으로 피신했다. 청관거리는 피비린내 나는 아수라장이었다. 성난 조선인 군중들은 영사관을 에워싸고 돌을 던지며 행패를 부렸다. 전국적으로 400회 이상의 중국인 습격이 있었으며,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화교는 233명이고 중상자도 546명으로 집계되었다. 가장 피해가 심한 곳은 평양으로 중국인 사망자가 94명이었다.

화교 박해가 심각해지자 동아일보(193179일자)‘2천만 동포에 고함이라는 사고를 통해 중국에 있는 우리 동포들은 모두 무사하고 안전하니 국내 중국 사람들에게 제발 폭행을 하지 말아주세요.”라는 호소문을 실었다.

호떡집에 불났다.”라는 말도 이 무렵 중국음식점 테러에서 생긴 것이다. 만보산사건의 폭동을 주도한 조선인 1명이 사형 당하고 1,011명이 처벌을 받았으며, 갑자기 죄수가 늘어나자 감옥을 증축하기까지 했다. 중국인 배척 광풍이 휩쓸고 난 이후 부산의 화교 수도 절반 가까이 줄었다.

광복에 이어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군과 UN군이 진주해옴으로써 초량 주변은 이른바 텍사스촌이라는 유흥가로 다시 흥청거리기 시작했다. 술에 취한 미군들이 대낮 길거리에서 서로 권총을 쏘면서 싸우는 장면을 목격한 주민들이 서부영화의 카우보이들을 연상해서 텍사스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요즘은 다소 한산해진 외국인 거리에 보따리 장사를 하는 러시아인들이 많이 보인다.

상해거리의 화교중학교 모서리에 있는 낡은 4층 벽돌집은 부산 최초의 민간 종합의료기관인 백제병원 건물이다. 일본 오카야마 의과대학을 나온 김해 출신 최용해는 일본 여성과 결혼, 장인의 지원으로 호화 의료진에 부산 최고시설의 병원을 1922년에 개업한다. 개원 초기에는 병원이 크게 번성하여 부산부립병원과 철도병원을 능가했다. 그러나 행려병자 시신으로 만든 해골 표본들이 사회문제를 일으키면서 환자가 갑자기 줄어 결국 10년 만에 병원 문을 닫았다. 최 원장은 가족과 함께 관부연락선을 타고 야반도주하다시피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인으로 귀화했다.

1935년 동양척식회사로부터 백제병원을 인수한 중국인 양모민은 이 건물을 부산 최고의 중국 요리집 봉래각으로 변신시켰다. 봉래각은 청관거리에 있었으므로 일본인, 한국인, 중국인 손님들로 영업이 번성했다. 특히 근처 영주동의 초량권번에 소속된, 서울과 평양에서 온 기생들이 봉래각에 살다시피 하면서 이곳은 새로운 사교문화장이 되었다. 그러나 19443월 세계대전의 패색이 짙어진 일본이 예기(藝妓) 영업 폐기조치를 내림으로써 권번과 함께 봉래각도 문을 닫았다.

전쟁 막바지에는 이곳이 부산 주둔 일본군의 숙소로 사용되다가 해방 후에는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귀환한 동포들을 위한 학병치안본부가 되었으며, 6.25 전란 중에는 임시로 대만의 영사관과 대사관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내부를 새롭게 단장하여 신세계예식장으로 바뀌었다가 일반 상가로 바뀌었지만 100년을 견뎌온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이었기에 국가등록문화재 제647호로 명성을 빛내고 있다. 고풍스런 벽돌건물 1층에는 브라운핸즈 커피점이 들어섰으며, 창비출판사가 운영하는 2창비부산은 책과 작가를 만나는 아늑한 공간이다.

수정1동 주민센터 옆에 있는 정란각(貞蘭閣)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일본식 2층 가옥으로서 등록문화재 330호로 지정되어 있다. 재력가였던 다마다 미노루(玉田穰)1939년 원래 철도청 관사였던 집을 허물고 전통 일본 무사계급의 저택 양식으로 지었기에 다다미와 창호, 차실 등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해방 후 한동안 정란각이라는 이름의 고급 요정으로 사용되었다.

임시정부 시절 밤의 정치무대가 되었던 요정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옴으로써 부산은 한때 요정의 도시로 변했다. 3만 명의 전쟁고아가 헤매고 다니는 부산 거리에서 경찰이 무허가 요정 1,500곳을 적발했다는 기사가 19516월 신문에 실려 있다. 그 중 정란각, 신성, 심우장 등은 거물 정치인들의 아지트였다.

정란각은 그 후 부산 수정동 일본식 가옥으로 불리다가 문화재청이 매입한 후 문화공감 수정이라는 카페로 문패가 바뀌었다. 대지 660평에 건평 204평의 저택이라 영화 <범죄와의 전쟁><장군의 아들>, 그리고 가수 아이유의 뮤직비디오 <밤 편지>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현재 소유주는 섬유산업의 태창기업이 운영하는 일맥문화재단이며, 최근 주변의 40층짜리 고층아파트 신축공사로 인해 지반 침하가 생겨 3개 건물 중 1개동은 철거했다.

일제는 대륙 침략의 발판을 삼기 위해 부산에 철도나 항만, 물류창고 등 각종 근대시설을 마련했기에 부산을 근대도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재 부산에 남아 있는 일제 강점기의 근대 건조물 219개는 대부분 수탈의 감독기관이나 일본 고관들의 관사, 거주지 또는 여가시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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