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와 투자 계약 시 ‘상환전환우선주’ 여부 반드시 확인해야”
“초기창업자, 시행착오 줄이기 위해 ‘자금조달’ 환경 이해 필수”
“대학기금, ‘예일 모델’ 같은 투자 필요...10·12년 펀드 출시 기대”

[공감신문] 염보라 기자= “정부 주도의 ‘세컨더리 마켓’(2차시장)이 시급합니다.”

카이스트에서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 강의를 하고 있는 백용욱 카이스트 경영대학 부교수는 24일 진행한 공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2014~2015년 무렵 결성된 벤처펀드가 올해 대거 만기를 앞두고 있다. 올해 말 만기 도래 펀드는 총 183개이며, 펀드 규모는 4조9445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대다수 스타트업이 벤처캐피털로부터 ‘상환전환우선주’(RCPS)로 투자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RCPS는 스타트업이 창업 후 초기투자 단계를 벗어나 시리즈A 단계 투자로 나가는 단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용어다. RCPS에서 ‘R’은 상환권(Redemption Right)을 의미한다. 스타트업이 계약 기간 내에 기업공개(IPO) 등 기대한 성과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투자자가 투자금에 이자까지 얹어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백 교수는 “스타트업 입장에서 (RCPS는) 일종의 독소조항”이라고 전제한 뒤 “만기도래 시점에 창업자와 벤처캐피털(VC) 간 법정싸움이 다수 벌어질 건데, 이미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이기 때문에 창업자가 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이어 “올해부터 시한폭탄을 흡수할 준비를 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중간회수 시장인) 세컨더리 마켓을 정부 주도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아가 백 교수는 세컨더리 마켓 형성을 통해 미국처럼 10년 만기, 12년 만기 벤처펀드도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백용욱 교수 / 사진 염보라 기자
백용욱 교수 / 사진 염보라 기자

 

Q.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 과목을 통해 학생들에게 벤처기업의 자금조달 환경을 더 넓게 보는 훈련을 제공하고 계신다. 자금조달 환경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 자금조달 환경을 아는 것은 창업자, 벤처투자자, 정책입안자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다. 창업자의 입장에서 먼저 본다면, 공학적인 백그라운드(배경)가 강한 친구들이 많은 반면, 스타트업이 생기고 성장하는 생리를 이해하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육아에 빗대어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한 번이라도 설명을 듣고 아기를 낳은 사람과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아기를 낳은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있지 않겠는가. 창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는 투자자다. 그러면 그 이해관계자와의 이해관계 또는 그 생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비즈니스 모델을 제대로 설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독자 모델은 소비자가 내는 구독료가 사업자금이 될 수 있지만, 전자상거래의 경우 물건을 선주문해 창고에 쌓아둔 후 고객으로부터 주문이 들어오면 배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별도 투자자금이 필요하다. 그래서 제3자인 벤처캐피털(VC)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할 때는 자금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고려해서 수익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Q. 투자자와 정책입안자 입장에서도 설명해달라.

- VC라는 업의 본질은 LP의 자금으로 피투자기업에 투자하고, 수익을 내어 LP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VC) 심사역은 자금시장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을 (창업자가) 잘 설계했는가 하는 관점에서 (투자 대상을)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책입안자도 마찬가지다. 자금시장뿐 아니라 창업금융, 스타트업의 생리를 이해하고, 기존 대기업과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아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재 정책입안자들을 보면 스타트업 현업에 계신 분들이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모든 기업이 똑같다는 전제로 규제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절대 그렇지(똑같지) 않다.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상 VC라는 자금시장이 생성되고, 스타트업이 성장해 ‘빅테크’ 기업이 된 건 겨우 15년 정도 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규제하고자 하는 대기업 집단은 이미 50~60년 전에 생겼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태어나서 성장하고 오늘날과 같은 기업지배구조가 생긴 것이다.

기존 대기업은 성장과정에서 (VC 같은) 자금시장이 없었기 때문에 오너 위주로 갔다. 반면 지분의 희석에 의해 성장하는 스타트업은 창업자의 지분이 소수에 그칠 뿐 아니라 심사역이 이사회에 있어 영향력이 분산돼 있다. 이렇게 다른 구조의 회사에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가장 문제인 게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오너를 지정해주는 ‘동일인 지정 제도’다. 스타트업들은 이미 이사회 구조를 갖추고 민주주의 방식에 의해 의결이 형성되는 시스템을 갖춰놓고 있는데, 국가가 ‘왕은 이제 이 사람이야’ 하고 강제적으로 오너에게 힘을 실어주는 제도는 모순이 있다고 보는 거다. 

Q. 창업자들이 자금조달 과정에서 입을 모아 토로하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 대부분 창업이 처음이다. 첫 경험이니까 당연히 모든 게 어렵다. 첫 연애가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개념으로 생각하지 말고, 결혼 상대를 찾는 과정으로 생각하라고 한다. 

예를 들어 창업자는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공학 기술만을 어필한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투자자가 원하는 내용은 아니다. VC 입장에서는 사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 사업이 시장에서 하는 역할이 뭐고, 시장이 얼마나 크고, 이 사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 우리가 어떤 역량을 갖춘 팀이고,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고, 수익모델은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중요하다.

결혼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가 남녀 사이에 존재하는 것처럼, 창업자와 투자자 사이에 가치관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자금조달 환경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Q. 창업자들 사이에서는 4~7년 사이가 고비라고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 정부의 정책 지원이 너무 초기지원에 쏠려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자금이 쏟아지니 자생력이 없는 기업이 투자를 받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이런 기업은 결국 (정책 지원이 끝날 때) 다른 투자자로부터 호감과 공감을 얻지 못해 문을 닫는다.

물론 이런 지원이 창업 생태계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은 맞다. 다만 이제는 앞단뿐 아니라 성장단계에서도 골고루 지원을 해줄 때가 됐다는 판단이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을 나몰라라 하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원하는 온전한 아이(기업)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치원, 초등학교(스케일업 단계)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는 거다.

백용욱 교수 / 사진 염보라 기자
백용욱 교수 / 사진 염보라 기자

 

Q. 최근 세미나에서 10년, 12년 만기 벤처펀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어떤 이유에서인가.

- 우리나라의 벤처펀드 평균 만기는 7년으로 비교적 짧다. VC가 이제 막 태동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다만 한창 성장하는 상황에서 VC가 바뀌는 건 회사 입장에서 좋지 않은 일이다. 미국의 경우 펀드 만기가 평균 10년, 12년이다. 일부 VC는 만기 없는 펀드를 운용 중이다. 펀드 만기가 길어지면 기술개발 사이클이 긴 제조업이나 신약개발 등에 대한 투자가 쉬워진다는 이점이 있다.

Q. 해당 세미나에 LP가 투자자금을 편하게 회수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셨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 10년 만기 펀드를 만들려면 일단 엑시트를 쉽게 해줄 필요가 있다. 내가 제안하는 것은 세컨더리 마켓이다. LP들이 투자금을 빼고 싶을 때 다른 LP를 찾기 전까지 중간에서 대신해줄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민간보다는 정부가 맡는 것이 좋다. 중립적인 LP로서 역할을 할 수 있서다. 다른 LP들과 이해관계가 없으니 지분만 들고 있다가 나중에 VC가 IPO나 M&A로 투자금을 회수하면 그 지분만큼 경제적으로 돌려주면 된다. 이런 시장이 형성돼야만 민간 VC가 “10년짜리 펀드를 준비했습니다. 출자 의사가 있습니까” 할 때 승낙할 LP가 많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Q. LP의 엑시트를 수월하게 해준다면 벤처기업 입장에서는 부작용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는가.

- 그렇기 때문에 세컨더리 마켓이 필요한 거다. 지금 구조는 VC와 창업자의 관계가 7년에 묶여 있다. 7년차가 되면 강제적으로 ‘이혼’을 한다. 어차피 7년 뒤 헤어질 사람이니, 서로 업의 본질에 집중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VC는 네트워크와 멘토를 제공하는 등 창업자가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 업의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고, 창업자 역시 어차피 7년 뒤에 돈 내놓으라고 할 사람들이니 잘 지낼 생각이 없다.

기한을 당장 무한대로 푸는 것은 우리나라 성장속도에 비출 때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10년 정도로 늘릴 시기는 왔다고 본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장기화 하는 것이 사용자와 VC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제대로 된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Q. VC 시장 발전을 위해 추가로 제안하고 싶은 내용이 있는지.

- 대학기금에도 VC 투자를 권유하고 싶다. 자산운용업계에는 ‘예일 모델’이라고 있다. 예일대학은 35년 전부터 운용 방식을 대거 바꿨다. 보통 대학기금은 대부분 자산을 안전자산에 묶어두고 5% 정도만 헤지펀드나 VC에 투자하는데, 예일은 20% 가량을 위험자산에 할당한다. 더 오래 기다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거다. 이런 방식으로 35년 전 1조원에 그쳤던 기금이 35조원까지 늘었다. 연평균 수익률을 계산하면 16% 정도다. 국민연금이나 우정사업본부, 생명보험쪽도 예일 모델을 참고하면 좋겠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는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다. 20%까지는 아니더라도 10%까지는 (VC 등 투자 비율을) 늘려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백용욱(오른쪽) 교수와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 염보라 기자
백용욱(오른쪽) 교수와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 염보라 기자

 

Q. 창업자가 VC와 투자 계약을 체결할 때 꼭 체크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 우리나라 스타트업과 VC 간의 계약 조항을 보면 ‘RCPS’를 흔히 볼 수 있다. 상환전환우선주라고 부른다.

우선주는 스타트업이 망했을 때 채권자를 제외하고 우선적으로 남은 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전환우선주(CPS)는 우선주를 들고 있다가 M&A나 IPO처럼 좋은 이벤트가 있을 때 보통주로 전환해서 이익을 나눠가질 수 있는 것이다. 

CPS에 ‘R’을 붙이면 상환전환우선주다. 특정 조건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특정 기한까지 이익을 못 내면 투자자가 상환전환우선주를 회사에 되팔 수 있는 권리다. 창업자 입장에서는 독소조항이다. 그런데 이 부분을 아는 창업자는 거의 없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사인을 한다. 계약을 할 때 꼭 RCPS인지 CPS인지 확인하길 바란다. 물론 CPS로 할 경우 VC에 의결권을 줘야 하는 등 리스크가 부과되겠지만, 막 성장단계에 들어갔을 때 돈을 뱉어내야 하는 리스크는 피할 수 있다.

지금 이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앞서 말씀드렸듯 국내 펀드 대부분 7년 만기이며, 그 시한폭탄이 올해부터 터지기 시작할 것이란 데 있다. 매년 터질 거다. 창업자와 VC 간에 법정 싸움이 벌어질 건데, 창업자가 지는 싸움이다. 지금 당장 시한폭탄을 흡수해야 한다. 그 수단이 세컨더리 마켓이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시행착오는 뒤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건 불필요한 시행착오다. 아는 사람이 있으면 개정해서 막으면 된다. 창업자에게 조언을 하자면 친한 스타트업 전문 변호사와 변리사, 회계사를 만들거나 주거래처를 두라는 거다. 조언 받아야 할 일이 많이 있을 것이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 우리나라가 경제 발전을 하는 데 있어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발전하고 이만큼 성과를 이룬 것도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에 서있다. 일본이 3만~4만 불 시대에서 정체돼 잃어버린 30년을 이어가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지금 막 3만 불 대에 들어왔다.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일은 산업에 역동성을 불어넣는 거다. 창업 생태계가 계속해서 발전하고 혁신을 만들어내며 대기업이 함께 하면서 더 광범위한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책입안자의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생태계에 맞는 개정된 법안들을 준비해주신다면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대담= 전규열 대표이사 겸 발행인
정리·사진= 염보라 기자

백용욱 교수 프로필

- 카이스트 경영대학 경영공학부 부교수
-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대학원 경제학 석사.박사
- 서울대 전기공학부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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