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욱 KAIST 경영대학 교수
백용욱 KAIST 경영대학 교수

[공감신문] 백용욱 칼럼니스트=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기술·산업 구조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이공계 인력이 너무 부족한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더 많은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라’는 지시를 한 것도 반도체 산업에 국한해 생각할 것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과 이공계인력 부족 현상과 같이 보다 넓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혁신을 이끌고 있는 스타트업 생태계나 산업계에서는 수년째 이공계인력 부족 현상을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주요 경쟁국인 중국이나 미국과 같은 경우에는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의 수요에 맞춰 4차 산업혁명과 유관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블록체인, 인터넷보안, 반도체 및 정보통신(IT), 첨단소재·부품·장비, 신약개발 및 생명과학기술(BT), 그래픽 디자인 등 학과의 대학입학 정원을 대폭 늘려가며 기술전쟁에서 앞서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학 정원은 그대로다. 

미래분야 관련 대학정원이 늘지 않고 그대로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전반적으로 학령 인구가 줄어들고 있어 대학정원을 더 이상 늘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소위 말하는 ‘국가균형발전법’에 의해 지방대학의 고사(枯死)를 막기 위해 수도권 대학의 입학정원을 늘리고 싶어도 늘릴 수가 없다는 ‘철칙’ 때문인 것이다.

학령 인구의 감소 문제는 우리가 단기적으로 어떻게 통제할 수가 없다. 물론, 우수한 이공계 외국인 유학생 인재를 유치해 학위 수여 및 국내 취직 후 그들에게 우리나라 영주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확대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수한 이공계 학과에서 많은 인재를 자체적으로 길러내야 지금의 4차 산업혁명에 맞는 경쟁력 있는 산업구조로 변모해 갈 수 있다. 특히, 학부생을 더 많이 교육해야 특정 회사나 특정 산업의 기술에 종속되지 않는 이공계인력을 양적으로 늘릴 수 있다. 따라서 기업체 계약학과와는 달리 우리나라 산업전반에 저변 확대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수도권의 유수의 대학들은 미래분야와 유관한 학과에서 정원을 늘리고 싶어도 늘리지 못하고 있는 반면, 지방의 여러 대학들은 수많은 학과에서 정원미달로 자리를 채우지 못하는 현상이 매년 지속되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문제인 셈이다. 

그렇다면, 대학정원의 수급문제를 소위 ‘대학 미달정원 임대제’와 같은 방식으로 해결해보는 것은 어떨까? 즉, 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정원이 미달된 지방대학의 학과에서는 채우지 못한 빈 자리를 다른 경쟁력이 있는 대학에서 정원을 늘려 미래분야 학과에서 학생을 더 많이 배출할 수 있도록 임대를 해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장은 현재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의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조율과 마중물 역할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더 많은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반도체 산업에 국한해 생각할 것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과 이공계인력 부족 현상과 같이 보다 넓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사진은 윤 대통령이 6월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받은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 사진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더 많은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반도체 산업에 국한해 생각할 것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과 이공계인력 부족 현상과 같이 보다 넓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사진은 윤 대통령이 6월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받은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 사진 대통령실 제공

 

정부는 매년 정원이 미달된 지방대학 학과의 모든 정원 수를 파악하고 풀링(pooling)해 정원이 미달된 만큼 각 지방대학에 상생발전기금 형식의 “임대금”을 지불한다. 가령 4년제 대학의 정원이 미달 되면 4년 임대하고 상생발전금을 지불하는 식이다. 임대제로 해야 각 지방대학은 영원히 정원이 빼앗겼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학생이 오지 못해 채우지 못한 빈자리는 4년제 대학의 경우 어차피 4년 간 빈자리다. 차라리 그 빈자리를 학생이 채우지 못하면 4년치 등록금의 일부라도 대신 채워주게 해주는 것이 바로 그 상생발전금의 역할이다. (다만 임대금이 너무 높으면 도덕적 해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상생발전금의 임대금을 받은 지방대학은 교육의 질적 향상, 경쟁력 제고 및 재학생 복지 향상 등에 투자해 4년 후 그 빈자리가 다시 반환됐을 때 반드시 채워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때도 채우지 못하면 다시 임대 연장해 그 빈자리는 다시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가게 되는 방식으로 하면 된다.

상생발전금은 중소벤처기업부, 산업통상자원부, 스타트업 생태계나 산업계에서 오는 법인세에 의해 정부의 세금으로 조달하면 된다. 또는 대학 미달정원 임대제를 실시함으로써 혜택을 받는 여러 이해관계자가 참여하고 상생발전기금에 기여하면 더 좋다. 

이렇게 매년 모아진 미달정원의 수를 이용해 수도권 및 비수도권의 경쟁력 있는 유수의 대학의 미래분야 학부생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해주거나 KAIST(한국과학기술원), GIST(광주과학기술원),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UNIST(울산과기대), POSTECH(포항공대) 등 5개 과학기술특성화대학에서 교육할 수 있도록 해주면 어떨까 생각한다. 혹은 교통이 편한 지방에 제3의 교육장소를 마련해 경쟁력 있는 대학 혹은 대학 컨소시엄이 거기서 대면 및 비대면 혼합형 교육 커리큘럼을 운영하도록 하면 인재 양성과 함께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일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은 현재와 미래의 노동시장에서 산업환경이 어떻게 변해도 자신의 역량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 역할을 해줄 경쟁력 있는 대학의 학사학위를 원한다. 따라서 경쟁력이 없는 대학에서 정원이 미달되면 경쟁력이 있는 대학의 정원으로 유용(流用)해 교육할 수 있게 해준다면 충분히 매년 전국 단위 대학입학 정원을 고정시켜도 인력의 재배치가 어느정도 해결되리라 본다. 장기적으로는 대학 규제의 개혁, 국가균형발전 및 경쟁력 향상이 필요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이공계인력 부족 현상을 ‘대학 미달정원 임대제’로 해결해보는 것은 어떨지 검토해보자.

글 백용욱 KAIST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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