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환자 문제 핵심 찾아내는 인문학적 소양 갖춰야”
“부정맥 치료의 ‘빅 점프’ 위해 AI 중요… 최적의 치료 프로토콜 만들어 세계적으로 표준화하고 싶어”

[공감신문] 유안나 기자=김영훈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겸 고려대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의료계 BTS’가 나올 수 있도록 K-메디슨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감신문은 지난 9일 부정맥 치료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김영훈 교수(전 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를 만났다. 김영훈 교수는 지난해 3월 정년 퇴임 이후에도 연구와 진료·시술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아시아태평양부정맥학회의 공식 저널 에디터를 맡아 후배들을 위해 좋은 콘텐츠를 전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이날 시술을 마치자마자 인터뷰 장소에 온 김 교수는 AI 시대의 부정맥 치료 현주소를 비롯한 의료계 선배로서의 진심 어린 의견을 전했다.
김 교수는 아시아·태평양부정맥학회를 언급하며, “전 세계에 부정맥학회는 미국, 유럽, 아시아-태평양의 ‘3메가 학회’가 있다”며 “이제는 대한민국이 그런 소사이어티에서의 리더 역할을 하게 된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그 학회 내 공식 저널의 편집장을 맡게 됐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 처럼 좋은 페이퍼가 훌륭한 의학자를 키운다”며 “그동안 내용이 좋아도 다른 모국어 등의 이유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런 좋은 내용을 잘 에디팅하고 훈련해서 세계적인 페이퍼를 내는 생태계를 만드것이 제가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의료인으로서의 목표 중 하나로 “부정맥 분야의 후배들이 세계적인 업적을 낼 수 있도록, 또 그런 비전을 가질 수 있게 제가 조금씩 헌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김 교수는 2003년 아시아 최초로 고려대 의대 병원에 ‘3차원 매핑 시스템’ 장비를 들여왔다. 이 시스템과 더불어 여러 시술법, 안전 확보 등을 통해 지난 30여년간 부정맥 수술 성공률은 20%에서 약 90%으로 엄청난 진화를 거듭했다. 그는 부정맥 분야에 이같은 경험들이 더 많아져야 하고, 그런 인프라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떠나고 싶다고 했다.
최근 의료계에서 AI 활용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김 교수는 의사들의 ‘인문학적 소양’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김 교수는 “지난 수십년 의사들이 말해온 ‘술, 담배 하지 마세요, 짜게 먹지 마세요’는 이제 전 국민 상식이 됐다. 전략적인 치료도 중요하지만, 의사라면 환자에게 어떤 것이 더 이로운지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의사의 눈이 놓칠 수 있는 걸 AI가 체크해 주는 만큼, 의사는 환자와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인문학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며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가 있다면, 좀 더 강하게 손을 잡아줘야 한다. 어떤 환자에겐 실제 형님처럼 끌고 갈 수도, 또 다른 환자에겐 훈육이 필요하기도 하다. 환자마다 문제의 핵심을 건드릴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의사 역할을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Q. 정년 퇴임 이후에도 연구와 진료·시술을 이어오고 계시다.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이사장도 맡고 계시던데.
저는 북한의 의료 문제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계속되고 있지만, 실제 북한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은 대한민국의 30~40년 전 의료 혜택을 보고 있다. 인공 위성 사진을 보더라도 한국은 휘황찬란한 데 비해 북한은 전기가 없어 깜깜하다. 전력이 불안정하면 아무런 의료 시술을 할 수 없다. 북한의 경제는 장마당에 의해 돌아가고 있는데, 약도 거기서 구매한다. 그 말은 항생제 같은 약을 구하더라도 오늘, 내일 먹는 약이 다르기 때문에 내성이 생기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결핵 발생률이 가장 높다. 10만명당 몇 명이냐고 따져보면 약 7~80명 된다.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니라고 볼 수 있지만 1위다. 그런데 북한은 10만명당 600명을 넘어선다. 북한 주민들을 케어할 수 있는 북한 정권의 능력은 점점 없어지고 있다. 만약 북한이 더 이상 의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갑자기 5~10만명의 북한 주민 결핵 환자들이 한국으로 뗏목을 타고 넘어온다고 상상해 보면 원자폭탄보다 더 강력하고, 무서울 것이다.
북한과 우리는 나름대로 휴전선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같은 공기, 하천, 곤충, 등 삶의 터전은 공유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북한 주민이 겪는 병은 우리에게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우리와 후손을 위해서 북한 의료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의과대학과 의사들 뿐만 아니라 치과, 한의사, 간호 분야 사람들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Q. 북한 의료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가 있었는지?
여러 계기가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계기는 미국에 있는 친구다. 해외에서는 인권 등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는다. 오히려 우리나라 국민들보다도 더 크다. 그런데 미국 친구가 저에게 “대한민국 의료계 리더인데, 왜 북한 주민들이 어떤 병이 있고, 그런 병이 어떻고 등등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너는 관심이 없냐”는 말을 들었을 때 뒤 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Q. AI·첨단기술 발전을 통한 부정맥 치료 현황 및 전망에 대해 말씀해 달라.
앞으로 의료계에서도 AI의 역할은 예상처럼 커질 것이다. 부정맥 환자를 어떻게 잘 관리하고, 옛날과는 다른 차원 높은 부정맥 분야의 새로운 걸 만들어 나가는 게 가장 큰 관건이다.
지난 1998년 우리나라에서 ‘심방세동에 대한 전극도자절제술’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성공률은 20%밖에 되지 않았다. 10명 중 8명은 실패하거나 병이 재발한 것이다. 어떤 환자의 수술 시간은 17시간을 넘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어려운 수술이어도 3시간이면 끝나고, 성공률은 90%에 달한다. 이런 시점에서 더 큰 ‘빅 점프’를 위해선 AI가 중요하다.
제가 희망하는 미래의 부정맥 치료 방법은 환자의 디지털 트윈인 아바타를 만들어서 여러 수술 방법을 먼저 테스트해본 후 최적의 방법을 찾아 실제 환자 수술에 적용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아바타를 통해 A, B, C, D, E 방법 중 B 방법이 가장 최적인 걸 찾았다면, 로봇이 B 수술을 정확히 구현해 내도록 사람(의사)는 그 로봇을 조작한다. 그리고 추후 일본, 미국, 독일 등 환자에 대하여 우리만의 표준화된 수술 방법, 프로토콜을 전하는 것이 목표다.
Q. 지금은 어디까지 와있나?
현재는 가상 환자인 아바타를 비슷하게 만드는 정도다. 또, A~E의 이런 다양한 수술기법들이 진짜 효과가 있는지 검증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대해 관련 전공자들과 함께 계속 테스트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제 목표는 아바타를 통한 최적의 치료 프로토콜을 만들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프라가 없는 다른 나라, 전 세계에도 프로그램을 전달해 치료 시술의 결과를 표준화하는 것이다.
부정맥이라는 게 있다가 없다가 하는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 본인이 부정맥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옛날보다는 심장 근처에 USB 칩을 넣거나, 스마트워치 등의 모니터링으로 발견하는 비율이 올라가긴 했다. 예로, 수면 무호흡증이 있었는데 알고 봤더니 엄청 위험한 부정맥을 갖고 있었던 환자도 있다. 이러한 모니터링을 계속하고 있다 보면 데이터가 쌓이는데, 급사하는 사람의 패턴도 알아낼 수 있다. 그래서 AI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AI로 365일, 10년을 계속 모니터링 받다가 1~2년 전 패턴이 이상하게 바뀌어 결국 사망했다고 가정하면 급성 심장사, 소위 말해 관련 예측 지표를 만들 수 있다. 빅데이터로 젊은 나이에, 아프기 전, 죽기 전에 치료가 가능해진다. 환자의 다양한 모니터링도 제가 관심을 갖고 하는 일 중 하나다.

Q. 정부의 의료개혁 추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OECD 가운데 우리나라의 의사 증가 속도가 1등이다. 지난 25년동안 매년 3천여명씩 약 8만명의 새로운 의사가 배출됐다. 앞으로의 우리나라의 의료 미래는 생각보다 더 다양해지고 디지털화될 전망이다. 디지털 헬스케어를 비롯해 AI 로봇, 챗GPT 등이 상용화되는 미래를 대비해 의료계는 △산업화 연계, △기업의 바이오, 헬스케어 산업 등 해외 진출을 위한 어드바이스 △모르는 국가에서의 의료 선발대 등 맡을 역할이 많다.
이러한 여러가지 스펙트럼을 고려해 정부가 의사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도록, K-메디슨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더 큰 비전을 제시하며 ‘퍼스트 스텝’으로 추진하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어떻게 보면 의료개혁은 상당히 파인튜닝을 해가면서, 고민을 해서 나와야 할 정책인데 옛날 프레임에서 낙수효과를 보기 위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Q. 국내 일부 대학의 의사과학자 양성 추진은 어떻게 바라보시나.
대표적인 예로 싱가포르 듀크-엔유에스(DUKE-NUS) 의대가 의사과학자(MD-PhD)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의사과학자(MD-PhD)가 굉장히 중요하다. 의사는 남들이 정해 놓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치료하고 약을 주는 게 아닌, 완전히 물줄기를 바꾸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치료법 개발을 위해선 리서치, R&D는 평생 해야 한다. 고대 의과대학에도 교수들이 약 580명 있다. 이 중 200명, 적어도 3분의 1 이상은 MD-PhD를 양성할 수 있는 교수들이 되어야 한다. 지속적으로 리서치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진정한 의대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에 있는 의과대학이 MD-PhD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Q. 고대의료원이 2028년 설립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의 비전은?
저는 로제타 셔우드 홀 선교사만 떠올리면 가슴이 뛴다. 약 100년 전 로제타 홀 여사는 미국 볼티모어 여자 의과대학 졸업 후 25살 나이에 전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인 조선에 왔다. 조선에서 아들 한 명, 딸 한명 두 자녀를 낳았다. 하지만 의사였던 남편은 청일전쟁 때 환자들을 돌보다가 병을 얻어 죽었고, 딸도 4살 때 이질로 죽었다. 이런 어려움에도 로제타 홀 여사는 63세가 되도록 조선에 있었는데, 조선 말기에는 ‘여자가 건강해야 한다’는 정신으로 여성 맹인을 위해 점자를 만들고 자신의 허벅지 살을 떼어 피부이식까지 했다. 또 ‘여성을 잘 케어할 수 있는 의사를 키워야 한다’며 1928년 고려대 의과대학의 시작인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만들었고, 그 뿌리가 2028년 100주년이 된다. 우리 고려대 의대의 처음 출발점은 이렇다. 로제타 홀 여사가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메디슨 역할을 하고, 의사들을 양성한 것처럼 우리도 그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바꾸는 의료’를 전 세계가 누릴 수 있도록, 고대 의료원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곳에서 굳건한 자리를 지켜야 한다.

대담 = 전규열 대표이사 겸 발행인(경영학 박사)
정리·사진 = 유안나 기자
김영훈 교수 프로필
- 현) 고려대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 현)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 현)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이사장
- 현) 미국 심장학회 및 세계부정맥학회 정회원
- 존스홉킨스 대학병원 교환교수(2019년)
- 대한부정맥학회장
- 고려대 대학원 통일보건협동과정 주임교수
- 고려대 의료원장 겸 의무부총장(2019~2023년)
- 아시아태평양 부정맥학회 회장(2014~2015년)
- 고려대 안암병원장(2014~2015년)
- 고려대 안암병원 심혈관센터장
- 2010년 바이엘쉐링 임상의학상(대한의학회) 수상
- 미국 하버드 대학 부속병원 메사추세츠 종합병원 교환교수(2008년)
- 제1회 아시아태평양 심방세동 심포지엄 조직위원장
- 1997년 젊은 연구자상(미국 심장학회)
- 고려대 내과학 석사·순환기내과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