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의 가장 큰 덕목 중 하나는 이 사회의 불만과 갈등을 조정하고, 순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이 어려울 때 위로하고, 그 마음을 달래 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공감(共感)’이라고 한다.
공감은 남의 의견이나 감정에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행위다. 공감능력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선 타인을 대할 때 자신을 한 단계 낮춰서 우러러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나 정치인에게는 IQ(지능지수)보다 EQ(감성지수)가 필요하다. EQ는 인간의 정서적 능력으로 자신이나 타인의 감정을 인지하는 지수로, 이 사회가 머리‘만’ 좋은 사람보다 감성지능·공감지능이 뛰어난 사람을 찾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기 때문이다.
공감력은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에 매우 유용한 사회적 도구이다. 공감력이 있으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더 깊게 소통할 수 있다. 하지만 공감력이 없으면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기 보다 잘못된 행동으로 이해해 질책하거나 비난의 감정을 갖는다.
비록 공감력은 인간에게만 있는 독특한 능력이지만, 모두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다. 천성적으로 공감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크게 노력을 하지도 않아도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공감하는 데 있어 많은 노력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다.
지난 3월 27일 발생한 경북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영덕 5개 시군을 덮친 산불피해로 많은 주민들이 피해를 봤다. 피해액으로 1조1천306억원이고 산불 피해 규모는 9만㏊로 이는 지금까지 역대 최악으로 불렸던 2000년 동해안 산불 산림 피해면적의 4배 수준이다. 실로 엄청난 피해다.
산불 피해가 날로 늘어 가던 3월 2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청송군을 방문했다. 이재명 대표의 청송 방문은 야당 대표로서 산불 피해가 많은 지역인 안동, 의성, 청송을 둘러보고 산불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을 위로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내놓기 위한 것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 대표가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 중 산불로 피해를 본 청송군민이 이 대표를 향해 “내 집이 불타고 있다. 3일째 타고 있다. 사진 다 찍었으면 불끄러 가자”고 항의성 발언을 했다.
그 주민의 입장에선 자신의 집이, 창고가 3일째 불타고 있는데 유명 정치인이 사진 찍으러 왔으면 얼른 마치고 가서 불을 끄러 가자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게 그 주민에겐 실질적인 도움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 대표의 발언은 정반대였다. 그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이런 현장에서도 저런 정치적인 상황이 발생해서, 얼마나 다급하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고 말했다.
누구의 행동이 정치적인 상황인가? 자신의 집이 창고가 3일째 불타고 있으니 불끄러 가자고 말하는 주민의 발언이 정치행위인가? 아니면 정치인이 피해지역에 와서 방송국과 인터뷰하는 것이 정치적 행위인가?
이 대표의 발언이 놀라운 것은 그의 공감능력 때문이다. 자신의 전 재산이 불에 탄 주민이 하는 말이 어떻게 ‘정치적 상황(행위)’이란 말인가? 누구의 행위가 더 정치적 행위인지 진정 몰라서 하는 말일까?
이어 벌어진 상황도 어이없다. 항의하는 주민의 발언으로 이 대표의 인터뷰가 멈춰지자 옆에 있던 윤경희 청송군수는 이 대표에게 “대표님, 제가 정리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방송 카메라에 잡혔다.
윤 군수의 발언은 이 대표의 발언이 이어지지 못하자 이를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윤 군수의 발언은 자신을 뽑아 준 청송군민이 들었다면 ‘심한 배신감’과 ‘모멸감’을 느끼기 충분했으리라.
청송군은 윤 군수의 발언에 대한 취지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산불로 인한 피해를 보구하는데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오해가 있을 수 있고, 그분을 그렇게 한다는 얘기가 아니고 그 장소를 한다는 얘기일 수 있는데, 말씀을 드려도 자꾸 말이 말을 만들고 그런 부분이 있어 따로 대응하고 있지 않다”고.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오해일 수 있지만 자신의 발언이 타인에게 화살로 와서 꽂혔다면 군을 대표하는 군수로서 적절하지 못한 발언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자신을 뽑아 준 군민에 대한 예의다. 자신의 당적이 어디이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