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직을 임명하는 일은 단순한 절차를 넘어, 그 시대의 정무 감각과 국가 철학을 드러내는 지표다. 그만큼 인사의 품격은 곧 통치의 품격이다. 최근 일부 고위직 인선을 둘러싸고 공론의 장에서 쏟아지는 우려는, 단지 특정 인물의 흠결 때문이 아니라, 그 자리에 ‘어떤 사람’을 세우려 하는가에 대한 국민의 진지한 물음이기 때문이다.
공직은 권한이 아니라 책임의 자리다. 특히 고위 공직자일수록 국민을 대리한다는 상징성과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기에 인사는 단지 내부 조직의 안배나 정치적 이해만으로 결정되어선 안 된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인재인가, 공감할 수 있는 리더인가,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한 인사는 결국 제도의 정당성마저 흔들릴 수 있다.
사람은 위에 설 때 진심이 드러난다. 특히 지위가 높은 이가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단순한 개인의 성향을 넘어 그가 권력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권한 앞에서의 겸손, 권력 안에서의 절제 그 미묘한 균형을 잃은 자는 조직을 해치고, 결국 국민으로부터도 외면받는다.
하지만 때때로 정권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유혹에 빠진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부르기를 강요한 조고처럼, 권력의 판단이 민심을 대체하려 할 때, 사회는 왜곡되고 국민은 등을 돌린다. 사실보다 권력을, 상식보다 충성을 중시하는 인사는 짧은 성과는 낼 수 있을지 모르나,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지금 필요한 인재는 더 화려하거나 더 강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더 듣고, 더 공감하며, 공동체의 눈높이에서 함께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이야기처럼, 무거운 국정을 옮기는 데 필요한 자질은 빠르고 똑똑한 것이 아니라, 묵묵히 옳은 길을 지키려는 태도다.
좋은 인사는 곧 좋은 정치다. 진심과 절제, 그리고 국민을 향한 낮은 시선이 담긴 인사만이, 시대의 무게를 버틸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록위마의 착각이 아니라, 우공이산의 성실함이요, 군자의 통찰이다.
국민은 이미 기준을 높이고 있다. 시대는 권력 내부의 잣대가 아닌, 국민의 눈높이로 사람을 판단하길 요구한다.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인사는 일시적으로 임명될 수는 있어도, 국민의 마음 속 자격증은 발부되지 않는다.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는 인사,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 그것이 이 시대가 보내는 가장 분명한 신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