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은 결국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석방했다. 법원의 판단은 두 가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하나는 ‘체포의 적법성’과 ‘체포 유지의 필요성’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표현의 자유와 인신구금의 최소화 원칙이 형사절차에서 여전히 중요한 기준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둘러싼 몇 가지 사실은 경찰의 체포 집행이 최소한 ‘재고할 여지’가 컸음을 시사한다.
첫째, 체포가 집행된 시점과 방식이다. 면직 처리 다음 날 집행된 체포는 시의성 측면에서 정치적 파장과 결부되어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공직자에 대한 수사는 엄정해야 하지만, ‘시간적·절차적 신중성’이 결여되면 공권력은 곧바로 정치적 도구로 보일 위험이 크다. 법원이 빠르게 석방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 자체가 ‘체포 유지 필요성’이 약했다고 보는 근거가 된다.
둘째, 경찰이 내세운 ‘불출석·시급성’ 근거가 충분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이 전 위원장 측은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고 주장한다. 만약 정당한 사유를 소명할 수 있는 문서적 근거가 있었고, 이를 경찰이 적절히 검토하지 않은 채 곧바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면 절차적 정당성은 크게 훼손된다. 또한 공소시효의 계산을 둘러싼 법적 해석마저 당사자와 수사기관의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즉시 체포’는 과잉 대응으로 보일 소지가 크다.
셋째, 고위 공직자·공적 인물에 대한 형사절차는 일반 사건보다 높은 투명성과 설명책임이 요구된다. 체포·구금은 개인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제약하는 조치다. 특히 표현 행위와 관련된 혐의가 문제인 경우, 형사권 남용 여부는 민주주의의 핵심 사안과 직결된다. 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명시적으로 고려해 석방 결정을 내렸고, 이는 체포 단계에서 충분히 고려되었어야 할 사항이다.
"재발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이 필요하다"
체포 전 문서화·입증 책임 강화: 고위 인사에 대한 소환·불출석 사유는 경찰이 집행하기 전에 명확히 문서로 확인·기록해야 한다. 단순한 “불응” 표시는 체포 정당화 요건이 될 수 없다.
체포의 최후 수단성 원칙 적용: 소환·강제수단·보완적 조사 등 대체 수단이 존재한다면 체포는 최후의 수단으로만 허용되어야 한다.
정치적 사건에 대한 독립적 감독: 정치적 파장 가능성이 큰 사건은 외부의 독립적 감찰기구가 절차의 적법성과 중립성을 점검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수사 과정의 투명성 확보: 체포영장 신청·발부·집행 과정에서의 근거(소환 통지 기록, 불출석 사유서, 시효 관련 법리 검토 등)를 공개해 국민이 절차적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법은 누구에게나 엄정해야 하지만, 엄정함이 곧 과잉의 명분이 되어선 안 된다. 이번 사안에서 법원의 석방 결정은 단순히 한 사람의 신병 문제를 넘어서, 인신구금의 최소화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법적 판단의 의미를 일깨웠다.
경찰은 ‘근거 있는 체포’를 보여주지 못하면 공권력의 신뢰를 잃고, 사회적 분열만 심화시킨다. 정치적 중립과 절차적 정당성은 어느 한쪽의 이익을 넘어 우리 모두의 공동 자산이다. 이번 사건은 그 점을 재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