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종료 후 버티기·점유 이전으로 판결 무력화 속출  
"가처분 없이 소송 제기는 시간·비용 낭비"

엄정숙 변호사(법도 종합법률사무소)
엄정숙 변호사(법도 종합법률사무소)

전세 역전과 상가 경기 침체로 명도소송이 급증하면서, 법원의 승소 판결을 받고도 실제 건물을 인도받지 못하는 임대인들이 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명도소송의 승패는 법정이 아니라 집행 현장에서 갈린다"는 경고가 나온다.

최근 수년간 전국 법원의 명도소송(부동산 인도청구) 접수 건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역전세 확산과 전세사기 여파, 상가 경기 침체 등이 맞물리면서 임대차 분쟁이 소송으로 번지는 사례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서울·경기 등 수도권 법원에 집중적으로 명도소송이 몰리면서 부동산 분쟁의 심각성이 부각되고 있다.

문제는 승소 판결을 받고도 정작 건물을 인도받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한다는 점이다. 명도소송은 단순한 퇴거 요구가 아니라 점유 회복 절차다. 판결문을 받았다고 곧바로 현장을 인도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명도소송에서 가장 큰 함정은 '점유자 변경'이다. 임차인이 계약 종료 후에도 버티다가,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가족이나 제3자 명의로 점유를 이전하면 집행관이 현장에서 "판결문상 피고와 실제 점유자가 다르다"는 이유로 강제집행을 중단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임차인이 점유를 타인의 명의로 옮기면, 그 순간 판결의 효력이 사실상 무력화된다. 이를 막기 위해선 소송 제기 전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가처분 없이 소송만 제기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것이다. 실무에서 가처분 없이 진행한 명도소송의 경우에 상당부분이 집행 단계에서 난관에 부딪힌다.

실제로 한 사례의 경우 가처분 조치 없이 명도소송을 제기했다가 임차인이 점유를 타인 명의로 이전한 사건에서 "원고의 보전조치 미비로 점유자가 상이하여 강제집행이 불가능하다"며 인도집행신청에 대해 집행불능이라는 판단을 하게됐다. 해당 사건의 임대인은 1년 넘게 소송을 진행하고도 결국 새로운 피고를 상대로 소송을 다시 제기해야 했다.

소장 작성 단계부터 집행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도청구 대상 부동산의 표시가 불명확하면 집행관이 현장에서 대상을 특정하지 못해 집행이 지연된다. 주소, 층수, 호실, 건물 구조뿐 아니라 평면도나 현장 사진까지 첨부해 점유 범위를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한다.

특히 다가구주택이나 상가건물처럼 여러 호실이 있는데 해당 호실에 대해 독립된 등기가 없는 경우, 청구 범위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집행 현장에서 혼선이 빚어진다. 예를 들어 101호를 명도받으려는데 소장에 '1층 전체'라고만 기재하면, 집행관이 102호까지 포함되는지 판단할 수 없어 집행에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경우 다시 법원에서 보정명령을 통해 구체적인 범위를 특정해야 하고, 그만큼 시간이 지체된다.

계약 해지 절차도 집행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법원은 계약 해지 통보 시점과 방법을 명확히 확인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내용증명으로 퇴거 의사를 알리고 이를 증거로 첨부하는 것이 분쟁을 줄이는 방법이다. 구두로만 퇴거를 요구했다고 주장하면 임차인이 '통보받은 적 없다'고 반박할 여지가 생기고, 소송이 장기화된다.

법조계는 명도소송 급증의 배경으로 역전세 확산, 전세사기 여파, 상가 경기 침체를 지목한다. 최근 대출규제등으로 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이 없는 임대인과, 보증금을 받을 때까지 버티려는 임차인 간 충돌이 늘고 있는 것이다.

상가 임대차도 마찬가지다. 상가 임대차 종료의 경우 상당수가 임대료와 보증금 문제로 분쟁을 겪었다. 상가 명도는 주거용보다 복잡한데, 권리금 회수 기대권이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 계약갱신청구권이 얽혀 있어 절차가 까다롭다. 특히 임차인이 폐업 상태에서도 점유를 유지하며 권리금 협상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명도소송은 단순한 분쟁이 아니라 자산 회복의 마지막 단계다. 임대인은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절차적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승소 판결은 출발점일 뿐이고, 진짜 승부는 집행 현장에서 난다. 집행관이 현장에 나왔는데 점유자가 바뀌었거나, 인도 범위가 불명확하거나, 동산(가재도구 등) 처리 문제로 집행이 중단되는 경우를 예상해야 한다.

명도소송의 집행 성공률을 높이려면 ▲소송 제기 전 점유이전금지가처분 신청 ▲소장에 인도 대상 구체적 특정 ▲계약 해지 통보를 내용증명으로 증거화 ▲집행목적물 특정의 정확성 확보를 위해 평면도 등 집행 자료 사전 확보 등이 필수적이다.

명도소송은 법정에서 이기는 것보다, 법원 밖에서 제대로 집행하는 것이 승패를 가른다. 소송 전 가처분, 점유자 특정, 증거 확보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대부분 판결선고후 3개월 내 실질적인 점유 회수가 가능하다. 명도소송을 준비하는 임대인들은 '판결'이 아닌 '집행'을 목표로 전략을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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