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지급이 먼저
인도와 말소는 별개 절차
시점 관리가 분쟁 줄여

엄정숙 변호사(법도 종합법률사무소)
엄정숙 변호사(법도 종합법률사무소)

전세금 반환 분쟁에서 ‘의무 이행의 순서’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자주 오해되는 영역이다. 특히 임차권등기 말소 의무가 언제 발생하는지를 둘러싸고 임대인과 임차인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으면서 소송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보증금 지급이 선행돼야 말소 의무가 발생한다는 점이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명확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임차권등기 말소는 임차인이 집을 인도했다는 사실과는 별개의 문제로, 보증금을 먼저 지급해야 말소 의무가 발생한다는 것이 법률상 원칙이다. 이 순서를 혼동하는 바람에 불필요한 분쟁이나 지연이 반복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대차관계의 기본 구조를 ‘보증금 반환과 목적물 인도는 동시이행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임차권등기는 이를 대항력·우선변제권 확보를 위해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장치이기 때문에, 말소 의무는 동시이행 관계가 아니라 보증금 지급이 먼저 이행돼야 하는 선이행의무로 해석된다. 즉 임대인이 보증금을 지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차인에게 등기 말소를 요구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

이 같은 원칙은 최근 분쟁 양상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임차인이 이미 이사를 나가 인도를 완료했더라도, 보증금을 받지 못했다면 임차권등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임대인이 “집을 비워줬으니 등기를 먼저 지워달라”고 요구해 갈등이 커지는 사례가 반복되는 이유도 이 지점이다. 인도가 완료된 뒤라도 보증금 미지급 상태라면 임차권등기를 유지하는 것이 법적 권리다. 임차인이 말소를 먼저 해줄 이유는 없다.

전문가들은 분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시점 관리’가 핵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도·보증금 지급·등기 말소의 순서를 정확히 이해하고 문서로 남기지 않으면, 임대인과 임차인이 서로 ‘먼저 하라’며 대치를 이어가 소송 비용과 시간이 급격히 증가한다. 특히 최근 전세금 미반환 분쟁의 증가 속에서 이러한 선후관계 오해가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무에서는 보증금 지급일과 말소 예정일을 서로 명확히 합의하고, 이를 서면으로 남기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식이다. 순서를 정확히 이해하면 분쟁의 절반은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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