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5일, 광주 조선대학교 벤치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학생 A(20)씨가 응급실 수용을 거부당한 뒤 의식 불명에 빠졌다. 당시 직선거리 100m 떨어진 거리에 조선대병원이 있었지만 “환자를 받을 여력이 없다”는 답이 돌아와 인근 전남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 지난 4일 충북 청주에서는 전세버스에 치여 크게 다친 70대 오토바이 운전자 B씨는 16곳의 병원으로부터 이송을 거부당해 사고 후 4시간 30분 만에 강원도 원주의 상급병원으로 옮겨졌다. B씨는 청주권 병원 4곳에서 “인력이 없다”는 말을 듣고 40분 만에 인근 2차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전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는 과정에서 12곳의 병원으로부터 또다시 이송이 거부됐다.
#. 지난달 4일에는 만 2세 C양이 열경련이 와 위급한 상황에 놓였지만 서울과 경기지역 병원 11곳에서는 “수용이 곤란하다”며 이송을 거부했다. 119에 신고한 지 1시간이 지나서야 12번째 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C양은 결국 한 달째 의식 불명에 빠져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공감신문] 전지선 기자=정부가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의관을 파견했지만, 일부 병원에서 응급실 근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고 복귀 조치를 요구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이에 보건복지부에서는 6일 “복지부, 국방부, 병원이 협의해 문제를 최소화할 방안을 모색 중”이라며 "응급실 붕괴나 마비를 판단할 객관적인 기준은 없으나, 응급실 운영이 어려운 병원은 존재하지만 의료 붕괴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2020년 정부는 코로나19를 겪으며 공공인력 부족을 실감해 10년을 기한으로 총 4,000명의 의사를 추가 양성하는 방향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했다. 2022년 교육부가 보건복지부에 의대 증원을 요청, 2023년 5월 18일 정부는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때부터 의과대학 정원을 512명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정권부터 윤석열 정권까지 의대 정원을 늘리겠는 대안, 현재 ‘응급실 대란’의 원인이다.
의학전문대학원협회와 각 의료계에서는 2020년부터 꾸준히 의료정책 추진 반대 집단행동 등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의사 면허증을 반납하거나, 의대 학생들은 학교에 복귀하지 않는 등 강한 반발이 지속되고 있다. 결국 정부와 의료계의 싸움에 피해는 ‘국민의 몫’이 돼버린 것이다.
정부는 올해 의료 개혁을 위한 의사 확충을 위해 내년도 대학입시부터 오는 2035년까지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씩 늘리기로 했지만, 좁혀지지 않은 입장차이를 보이다 6일 "합리적, 과학적 추계를 갖고 온다면 열린 마음으로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다가오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복지부가 내놓은 ‘응급의료 이용 안내’ 홍보자료에 따르면 경증 환자들의 응급실 이용 자제를 강조한다. 이에 ‘환자 스스로 경증인지 어떻게 판단하냐’는 의문에 "본인이 이렇게 전화를 해서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경증이라고 이해를 하시면 됩니다"는 복지부 발언은 ‘국민을 버리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실제로 경증으로 증상이 시작되는 뇌졸중, 만성 폐쇄성 폐질환, 심근경색 등은 환자가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증상이 나타났을 때, 스스로 경증이라고 판단해 병원을 찾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에 다다를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가장 예민한 것 중 하나가 ‘진상’이다. ‘별거 아닌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았다가, 진상으로 보이면 어떡하지?’라는 위험한 생각을 정부에서 심어주는 것과 다름 없는 이 상황에서, 의료 붕괴가 아니라는 확언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가 온전히 정부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는 '한국 면허로 캐나다에서 의사하기', '미국 의사 되기' 등의 제목을 단 강연이 열렸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 학술대회에는 응급의학과 사직 전공의와 전문의 등 400여명이 사전 등록했다. 해외 진출 관련 세션에는 시작시간 기준으로 100여명이 몰려들어 강연을 들었다.
국내 의사들이 정부의 의료 개혁에 반발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상황임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의사들은 의대를 졸업할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선서에는 의사의 윤리 등에 대한 선서문으로, 희생·봉사·장인 정신이 담겨져 있다. 선서에는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는 내용이 있다.
현재 이어지는 의료계의 파업 등의 소식을 접할 때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열거하며 환자를 위한 의사가 될 것이라는 열정 가득한 수년 전, 그들의 졸업식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와 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국민 목숨을 담보로 잡고 정부와 의료계가 기싸움을 하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